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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철 Oct 19. 2022

6월

30살이 되다니






  30살의 나는 뭘 하고 있을지, 언제나 궁금했다. 20살의 내게는 좋은 소식일 수도 있고, 나쁜 소식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일을 하고 있었다. 계속. 그런데 언제까지 해야 할까. 갑자기 무서워졌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아득한 시간이 나를 관통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10년, 혹은 20년, 30년까지. 그보다 더 오래 할 수도 있겠지만. 다가올 미래의 무게가 나를 짓눌렀다. 그런 날엔 가슴이 답답했다.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도 나를 긁는 것 같았다.

  약을 포장하려면 기계가 돌아야 한다. 처방에 맞춰 설정대로 약이 나온다. 기계는 총 3대. 그게 동시에 돌아가고 바빠지는 때가 오면 조용히 미칠 것 같다. 거기서 정신을 차려야 실수를 하지 않는다. 윙, 찰칵. 윙, 찰칵. 동료의 말소리가 아득히 멀어진다. 소리는 점점 날카로워지고, 강해진다. 윙, 윙. 찰칵. 찰칵. 조용한 교실 안에서 누군가 볼펜을 딸깍이는 것처럼. 독서실에서 누군가 다리를 떨어 탁, 탁 의자와 부딪히는 소리가 나는 것처럼.

  어느 날은 벽면 가득 찬 약이 내게 쏟아질 것만 같았다. 깊게 숨을 쉴 수가 없어 접시물에 코를 박고 있는 것 같았다. 물이 얕아 죽지는 않으나 호흡이 힘들어 서서히 질식당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가슴이 답답해져 공황발작 비상약을 먹었다.     


  그럼에도 출근이 싫지는 않았다.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그런 때. 내 실수를 참을 수가 없을 때,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밖에 못 했을 때, 동료의 말에 밝게 대답하지 못할 때, 라벨이 틀어진 병을 보고 그것을 고쳐놓고 싶을 때. 라벨을 뜯어 다시 붙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꾸 거슬렸다. 날짜 확인이 쉽게 뒷면으로 진열된 약이 있었다. 가끔 그것들을 하나씩 앞으로 돌려놓았다. 이름과 앞면이 보이게. 뒤에 계시던 약국장님이 웃으며 얘기하셨다.     


  “자신에게 좀 관대해져 봐.”     


  그 말이 충격처럼 다가왔다. 왜 여태 아무도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을까? 나 자신에게 관대해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무례함과 솔직함 사이의 경계가 모호한 것처럼 무책임과 관대 사이에 있는 경계를 알 수 없었다. 실수를 해도 괜찮다, 라는 것은 그동안 무책임한 거라고 생각해왔다. 실수는 언제나 일을 망치는 것이고, 나를 망치는 거였기 때문에. 실수할 거면 하지 마. 제대로 안 할 거면 하지 마. 똑바로 못 할 거면 하지 마. 완벽하게 해. 엄마의 가르침이 사실은 틀렸던 걸까?


  퇴근길 SNS 피드를 넘기다가, 반가사유상 사진을 봤다. 차분히 앉아 여유롭게 다리를 접고 볼에 살며시 손을 댄 체 미소 짓는 모습. 어두운 청동색으로 빛나는 깊음을. 은은한 미소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고요와 평안. 같은 실수를 두 번 이상 하면 괴로웠다. 완벽하게 해내지 못했으니까. 그 실수 한 번 때문에 나와 내가 한 일 모두가 망가졌으니까. 왜 나는 아직도 이 정도일까. 조금씩 시작하기로 했다. 한 번에 나를 놓을 수는 없으니, 차근차근 관대해지기로. 실수를 하더라도 또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직장을 다니면서 주말에 쉬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곳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토요일에 낮잠을 잤다. 평일에 조용한 집에서 혼자 휴일을 보냈었는데, 가족들이 쉬는 날 함께 있으니 참을 수가 없었다. 엄마가 화를 내는 소리가 싫었고, 점심부터 술을 먹고 계속 같은 소리를 하는 아빠가 미웠고, 조카가 보는 유튜브에서 악을 쓰는 것도 듣고 싶지 않았다. 축구를 하는 방송에서 무자비한 환호 소리가 들렸고 무작정 집 밖으로 나갔다. 지하철 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어차피 나갈 계획이었지만 조금 더 빠르게 움직였다. 박물관에 가려고 마음먹은 상태였는데, 이 기분이라면 도저히 즐거울 것 같지 않았다. 술을 마시러 갈까 망설이다가 결국 4호선을 탔다.   

 

  6월에도 한 여름처럼 더웠다. 역에서 내려 박물관까지 올라가는 길도 버거웠다. 입구에 있는 호수를 잠시 봤다가 햇볕을 견디지 못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방문의 목적은 사유의 방이었으나 1층 전시부터 차근차근 관람하고 그 모든 감상을 끌어안은 채 마지막으로 감동을 받고 싶었다. 전시의 흐름을 따라 걸으면서 나를 지나쳐가는 사람들 사이를 거슬러 올라갔다. 천천히 길을 따라 올라가다 마침내 사유의 방 앞에 도착했다.     

  검은 벽에 얕은 조명, 그 아래 자리한 문구.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 안으로 들어섰다. 짙은 어둠 속으로. 천장에 있는 작고 푸른빛이 촘촘히 별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복도 옆면에는 커다란 스크린으로 고요한 소리와 함께 끊임없이 흐르는 연기가 재생되고 있었다. 동굴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기도, 우물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코너를 돌아 드디어 전시실이었다.

  반가사유상과 둥근 전시대가 있었다. 걸음이 느려졌다.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없는 기운이 나를 덮쳐왔다. 무표정인 듯 싱긋 웃고 있는 불상 둘. 커다란 렌즈를 끼운 카메라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 틈에서 잠시 감상했다. 일부러 사진을 찍지 않았다. 한 겹 렌즈로, 액정으로 이 불상을 보는 것이 어쩐지 아까웠다. 잠시 서 있다 어지러워져 얕은 턱의 전시대를 따라 돌았다. 앞으로, 앞으로 걸어도 같은 자리였고 불상의 뒷면과 옆면, 앞면, 또다시 옆면을 차례대로 감상했다. 그러다 천장을 보았다. 너무 밝지 않은 조명이 무한궤도를 그리고 있었다. 다시 불상을 보며 느리게 걸었다. 승려들이 말을 멈추고 탑 주위를 빙글 돌 듯이, 깊은 사유 안으로 가라앉듯이. 가라앉고 가라앉고, 또 가라앉고. 아주 깊은 곳까지 내려가서 나를 내려두듯이. 내가 끌어안고 있던 고민들이 수면의 부표처럼 위로 떠올랐다. 파도도 치지 않는 그곳에 남은 것은 나뿐이었다. 사유를 위한 사유. 생각을 위한 생각. 걱정을 위한 걱정. 이런 고요함만을 끌어안고 싶었다. 

  둥근 공간을 걷는 것은 끝이 없었다. 걷다가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아챘다.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바깥으로 밀려났다. 카메라 셔터 소리, 장난을 치는 아이들의 목소리, 감탄을 하는 어른들의 말소리. 공간이 점점 좁아졌다. 적당한 어둠이라고 생각했던 얕은 조명이 답답했다. 눈앞이 하얗게 죽고 몸이 저리며 어지러웠다. 서 있을 수도 없이. 사람들이 나를 불편해하던, 밟고 가던, 걱정을 하던 그럴 땐 주저앉아야 한다. 비명을 지르고 싶어 진다. 눈물이 나고 죽고만 싶다. 일을 하다 발작이 오면 화장실로 도망쳐 벽에 머리를 박았다. 사람이 너무 많다. 어쩌자고 여기를 왔을까. 급하게 전시실을 나왔다. 빛이 있는 넓은 공간으로 나오자 이명이 들리면서 조금씩 숨이 쉬어졌다. 난 이걸 취사가 됐다고 표현한다. 밥솥처럼. 삐- 소리를 내며 뜨거운 김을 뿜는 게 똑같아서. 잠시 뜸을 들이다 건물 밖으로 나갔다.


  담배가 피우고 싶어 헤매다 안내 요원분께 길을 물어 갔다. 작은 흡연실은 박물관 바깥쪽 구석에 있었다. 가방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다 비상약이 딸려 나왔다. 두 알을 잠시 보고 있다가 도로 넣었다. 담배를 피우면 몸이 무거워지는 약 기운이 사라진다. 커피를 마셔도 그렇다. 그래서 나는 늘 커피와 담배를 달고 살았는데. 무거운 몸에 멀쩡한 정신은 사람을 더 힘들게 만든다. 커피를 다섯 잔 씩 마시고 담배를 한 갑씩 피우면서도 몸이 아프면 이상하다, 싶었던 내가 진짜로 이상한 거였다. 거기다 술까지 마시고 다시 약을 먹고 잤으니. 그게 이제는 내 습관이 돼 늘 가지고 다녀야 했다.

  꽁초를 버리고 건물 중앙으로 갔다. 광장처럼 넓은 공간에 여러 사람들이 있었다. 가족, 연인, 친구끼리 앉아 음료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때로는 나처럼 혼자인 사람들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 중에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이 없었다. 같은 신발을 신거나, 같은 가방을 들거나, 같은 머리 모양을 한 사람이, 단 한 명도. 모두 다른 목소리로 말하면서 웃었다. 가까이 가면 이야기가 들릴 것 같아 사람들이 모여 앉은 곳을 빠져나왔다.

  익숙한 것은 있을지 몰라도 같은 건 없다. 그럼에도 나는 왜 타인이 나와 같기를 바라 왔던 것일까. 나부터도 다른 이들과 다르길 원하면서. 엄마 말대로 이기적인 생각이었을까.     


  바깥에 앉아있고 싶었으나 햇볕이 뜨거웠다. 그럼에도 숨을 쉬기에는 수월해 손으로 그늘을 만들어 눈을 가렸다. 진정이 되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지만, 불상 주변을 돌던 때의 마음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무교이지만 굳이 종교를 가져야 한다면 불교가 좋을 것 같았다. 스스로 성불을 할 수 있는 믿음이 필요했다. 나는 그럴 수 있을까?

  성불하라, 는 말에 잔잔히 미소 지을 수 있을까.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승에 놓고 온 것들에 미련을 두지 않을 수 있을까. 끝내지 못한 일이 떠오를 텐데. 두고 온 사람이 그리울 텐데. 하지 못한 말들이 하고 싶을 텐데. 그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좋았다고, 재밌었다고 웃을 수 있을까. 살아있어서 다행이었다고, 그래도 사랑했다고. 많이 아프기도 했지만 모두 다 고마웠다고.


  성불을 하려면 일단 오늘 할 일을 해야 했다. 미루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떠오르는 곳에 당장 가거나, 생각나는 사람과 만나거나. 박물관을 나서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맛있는 것을 먹는 일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 가서 아주 맛있는 것을 즐기는 거. 그때 먹었던 감자튀김은 내 인생의 맛이 됐다. 책을 조금 읽고, 많이 걷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었다. 하늘을 보며 눈을 찡그리고, 구름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 통화를 하며 지나갔다.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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