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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철 Oct 19. 2022

체력

30살이 되다니








  그런 때가 있었다. 여덟 시간을 일하고 두 시간 자고 여섯 시간을 놀던 때가. 어느 날은 한숨도 자지 않고도 생활을 했다. 물론 나의 불면증 때문이기도 하겠지만은, 체력이 됐다. 20대 중반까지도 그럴만한 체력이 있었는데. 오, 이제는. 잠을 안 자면 살 수가 없다. 살려면 자야 했다. 잠이 오지 않으면 어둠 속에서 눈이라도 감고 있어야 했다. 방 밖에서 들리는 소음에 미칠 것 같으면 조용히 욕을 읊조렸다. 

  충분히 쉬지 않으면 생활이 힘들었다. 쉴 수 있을 때 무조건 쉬었다. 일이라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여섯 시간을 자야 했고, 실수를 하지 않고 잘하기 위해서는 여덟 시간은 자야 했다. 열 시간을 자고 나면 아, 이렇게까지 잘하고 싶지는 않은데. 일이 너무 잘 됐다. 그런 날엔 직장에서의 피로도 덜해 하루가 상쾌했다. 그러다 깨달았다. 엄마가 쉬는 날 내내 쉬었던 이유를. 나랑 놀아줬으면 했는데, 이래서 그랬던 거구나. 

  마침 월급날이었고 엄마가 좋아하는 치킨을 사서 들어갔다. 아빠는 친구들과 술을 먹으러 나간 참이었다. 앞에 산더미처럼 치킨을 쌓아놨는데, 엄마는 습관처럼 닭 목을 집었다. 그 앞에 다리 두 개를 밀어주었다. 엄마는 양손을 저으며 다시 내 앞으로 밀었다. 너 먹어. 


  이래서 엄마도 내게 그렇게 화를 냈던 걸까. 사는 게 힘들어서. 퇴근 후 가족들에게 짜증을 내는 내 모습이 싫었다. 도저히 웃을 기운이 안 났다. 나 좋아하는 거 하자는 말에도 아무거나 하지 뭘, 하고 대답하게 됐다. 쉬고만 싶었다. 가족들 마음을 생각해서 몸을 일으켜도 짜증만 났다. 좋다고, 예쁘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별로라는 말만 나왔다. 그런 내가 싫어서 또 화가 나고. 기분이 좋은 날에만 선심 쓰듯 맛있는 거 사서 들어가 생색 내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귀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면서도 실행하는 게 어려웠다. 친구들 만나서 술이나 마실까, 싶은 것이다.     

  술을 좋아했다. 친근하고 좋지만 결국엔 내게 좋은 영향을 주지 않다는 점에서 사랑까지는 아니었다. 아주 많이 좋은 정도. 가끔 안 봐도 되지만 아주 못 보게 된다면 슬플 만큼. 그런 내가 술을 못 먹게 되는 것은 심각한 사건이었다. 예전처럼 마실 수가 없어졌다. 주량이 줄어 울적하게 있었더니 엄마가 아직 건재하다며 짜증을 냈다. 서른이면 적당히 먹을 때가 됐다고. 소주도 제발 한 병씩만 먹으라고. 와인도 한 병씩만. 위스키는 반 병만.     


  “제발 적당히 좀 마셔. 뒤질 때까지 쳐 마시지 말고.”     


  나는 때로 숨이 넘어가도록 술을 마셨다. 가장 좋아하는 일정은 낮 11시에 만나 시작해서 밤 11시에 헤어져 끝내는 술자리였다. 그래야 지하철 타기도 좋고 집에 들어가도 열 두시 밖에 안 된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 술자리가 네 시간을 넘어가면 미칠 것 같다. 집에 가자. 가서 하루를 마무리 하자. 몸이 지치니 누군가와 이야기를 할 기운도, 어디를 갈 기분도 나지 않았다. 쉬고만 싶어졌다. 예전처럼 시끄럽게 노는 것도 지겨웠다. 적당한 소음과 적당한 어둠이 있는 곳에서 조용히 술을 마시는 게 좋았다. 공황 장애 치료로 비상약을 수시로 먹게 되면서부터는 술을 마실 수가 없었다. 마셔도 너무 금방 취해버려 재미가 없었다.


  술을 줄이게 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약속도 줄어들었다. 술값에 안 쓰면 돈이 남을 줄 알았는데 남는 게 없었다. 어디 흘린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돈을 모으고 사는 걸까. 애초에 많이 버는 건가. 생활비, 정기 지출금을 제외하고 휴일을 즐길 돈과 체력이 있는 건가. 그런 여유가 있다면 사는 게 조금 재미있을까?

  인생은 당장 끝나지 않는다. 시작한 것과 같이 서서히 끝이 난다. 그럴 때를 대비해 비상금 계좌를 만들어뒀다. 틈이 나면 조금씩 모아두기로 했는데, 틈이 안 났다. 여유라는 것은 생길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끊임없이 쓰기만 했다. 3년간 겨우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며 제대로 된 직장도 없이 방에 틀어박혀 있던 내게 주는 보상 같은 거였다. 의도적으로 사치를 조금 했는데, 그때 돈의 맛을 느꼈다.     


  휴일 이틀은 내리 쉬어야만 5일을 출근할 수 있는 정도의 체력이 충전된다. 모임은 최소한으로. 집 밖으로 나가는 것도 힘들어서 배달 음식만 시켜 먹었다. 다른 정보와 소음으로부터 나를 완벽하게 차단하고 싶었다. 휴일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정 아무것도 안 하자니 흘러가는 세월이 아쉬웠다. 젊은 날에 이렇게 허송세월을 해도 되는 것인가. 뭐라도 해야 되지 않을까. 아쉬움에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서니 바로 집에 들어가고 싶어졌다. 결국 주말 번화가가 다 똑같아 어디를 가도 사람에 치였기 때문에 그것도 지겨웠다. 기운이라도 있으면 부대끼면서 놀겠는데.

  마음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그거대로 괴로웠다. 조금 더 걷고 싶은데, 앉을 곳이 보이면 나도 모르게 그리로 갔다. 볕 아래서 노곤하게 몸을 풀었다. 어릴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는 어르신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저 아이들 노는 것을 보시려고 그러는 가보다, 했다. 하지만 이제 알 것 같았다. 햇볕과 앉을 곳. 사람을 보고 바람을 맞고.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금방 지쳤고 또 하루가 빨리 끝이 났다. 기운차게 웃는 학생들을 보면 아이고, 그때가 좋지 싶었다. 


  그렇다고 내가 늙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하지만 쉽게 지치는 것을 보면 그리 어린것 같지도 않았다. 집 밖으로 나갈 힘은 있지만 돌아다닐 힘은 없었다. 세상을 아는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다. 노력하지 않아도 될 것은 안 하고 싶고, 돈으로 때울 수 있는 것은 그렇게 하고 싶었다. 술자리에 나가도 기가 빠지게 노는 것보다는 잠깐 하하, 웃다가 집에 가고 싶었다. 서로의 신변을 주고받으면서 한 달에 한번 가벼운 만남을 가지는 정도가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정도였다. 

  앉아있다 일어나면 돌아다닐 기운이 생긴다. 조금은 쉬어 줘야 움직일 수 있다. 먹고, 자는 것이 소중해졌다. 아무거나 먹고 아무렇게나 살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좋은 거 먹고 잘 자야 했다. 시간이 나면 걷기도 좀 하고. 인생은 결국 내가 하기 나름이었고, 나 스스로를 반려견 돌보듯 해야 했다. 좋은 거 먹이고, 산책 꼭 시키고, 깨끗하게 씻기고, 잘 재우고, 사랑을 듬뿍 줘야 했다.     


  괜찮다, 고 생각하며 지내니 정말 모든 게 괜찮은 것 같았다. 무릎이 조금 아프면 어때, 걸을 수 있는 게 감사하지. 소화가 잘 안 되면 어때, 꼭꼭 씹어 먹으면 되지. 누가 내게 앓는 소리를 해도 그럴 수 있지, 했다. 사실은 포기하는 마음이었다. 내가 바꿀 수 없는 문제에 힘을 쏟지 않으려는 노력. 무던하게, 흘러가는 대로 살려는 노력. 그러려면 내 감정을 감당할 수 있는 긍정이 필요했고 그걸 위해서 갖춰야 할 체력이 중요했다. 

  돈을 가진다고 친절해지는 게 아니다. 있으나 없으나 늘 한결같은 태도를 가꿔갈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했다. 사람인지라 늘 같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노력은 해볼 수 있을 테니까. 때로는 내 친절, 감정이 좌절되어도 이겨낼 수 있어야 할 테니까.


  누군가의 의견에, 힘에, 마음에 지는 것이 내가 약해서가 아니라는 사실이 필요했다.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 물러나는 것. 이기고 지는 게 아닌, 양보하며 얻는 것. 우리의 관계가 누군가 이겨야만 유지될 수 있는 거라면 그만두겠다는 결단력 같은 것이 있어야 했다. 너는 계속 이겨, 나는 그만할게. 라는 말을 할 용기가. 그 말을 나 자신에게도 할 수 있어야 했다.     


  뭐든 싸우려 하지 말고, 이기려 하지 말기. 내가 내 기준에 차지 않는 날이 있는 반면 과한 날이 오기 마련이었다. 삶은 일관된 수치나 궤도대로 흘러갈 수 없다. 계단식으로 이어진다. 차츰 나빠졌다가 차츰 좋아진다. 내가 거기서 할 수 있는 일은 너무 급하게 내려가거나 올라가지 않게 조절하는 것이었다. 아주 나빠지지는 말기. 나를 포기하지 않기. 미워하더라도 싫어하지는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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