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업무를 대하는 자세.

조직생활 하는데 유용한 업무는 취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by 달림

2015년 여름, 계획에도 없던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다자녀를 둔 엄마들이 대부분 그러더라, 셋째는 계획에 없었다고... 나도 마찬가지.


아이 둘과 셋은 또 차원이 다른 육아월드였다. 공교롭게도 세 살씩 터울이라 살만하다 싶으면 다시 리셋, 이제 좀 살만하다 싶으면 또다시 리셋이었다. 삼십 대 중반, 연달아 계속되는 리셋육아가 참 버거웠다.


육아휴직을 하며 혼자 세 아이를 골고루 잘 챙기겠다는 것은 욕심이었음을 깨달았다.


첫째 아이가 초등1학년이 되니 나도 처음 학부모가 되어 신경을 써야 할 것이 많았다. 막내아이는 6개월로 여전히 손이 많이 가는 아가일 뿐, 가운데에 낀 5살 둘째는 거의 신경을 못 써주고 있었다.


방치 아닌 방치, 자유 같지 않은 자유로움 속에 커서 일까? 세 아이 중 가장 독립적이며, 무던한 성격을 자랑하는 아이로 크는 중이다.


늘 내 맘속 짠함이 향하는 둘째, 만나는 선생님마다 마음씩 고운 아이라며 해 준 것도 없는 엄마를 칭찬받게 만들어 주는 아이, 미안하면서도 참 고마운 아들이다.




육아휴직 1년 즈음, 남편이 큰 결심을 했다.


"셋째 아이부터는 아빠가 육아 휴직하면 수당을 더 길게 준데. 당신 복직하는 시점에 내가 휴직할까?"


출생률이 줄어들며 아빠들의 육아휴직을 권고하는 정책이 하나 둘 나오던 때였다. 이번 기회에 아빠와 아이들이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았고 나 또한 숨통이 트일 것 같았기에 적극 찬성했다.


그동안 육아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던 남편은 아이들 학교, 유치원, 어린이집 보내놓고 운동을 하거나 자기 시간을 누리는 자기 계발의 목적도 있었다. 하지만 난 그런 속내는 차치하고 출퇴근할 때 등하원 시키는 일에서 만이라도 벗어날 수 있다면 너무 감사한 마음이었다.



남편 덕분에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복직을 위한 출근을 했다.


빈자리가 없었는지, 내 자리에 대해 조직에서는 고민이 되었나 보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오후 4시가 다 되어가도록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종일 할 일 없이 언제까지 이렇게 기다리라는 거야? 미리 정해놨어야 하는 거 아닌가?'


5시가 될 무렵 내가 갈 자리가 정해졌다며 사무실로 오라고 한다.


"○주무관은 주무팀으로 배정되었어. 회계업무 하면 돼. 담당 직원이 신청한 파견근무가 결정이 됐다네."


이때까지도 나에겐 '회계'라는 것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 없었다. 입직하기 전 작은 회사에서 경리회계 업무를 해보긴 했으나 사회초년생에겐 그냥 일이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입직 후 해왔던 업무라고는 지도점검과 의료비 지원 그리고 잠깐의 서무이력이 전부였던 터라, 예산이나 계약을 다루는 회계와는 거리가 멀었었다.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게 조직원의 인생사> 아니던가.


전임자의 파견 발령일이 남아 있었기에 다행히 일주일 간 밀착 인수인계를 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그 간의 조직개편으로 조직이 나뉘었으나, 당시엔 하나의 보건소에서 시 전체 국도비 사업의 예산을 관리했고 전체 계약 건 또한 회계 담당자의 몫이었다.


토목이나 건축 쪽에 비하면 보건소의 예산은 미미할 수 있겠으나 그쪽은 커다란 덩어리의 사업이라면 보건소는 아주 자잘하고 다양하게 나뉘어 사업의 개수로 따졌을 땐 결코 적지 않았다.


복직한 시점은 9월, 다음 해의 본예산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였지만 시스템 사용법도 서툴렀고 무엇보다 회계, 계약 용어에 익숙하지 않았던 점이 업무 속도를 더디게 했다.


'읽어봐도 뭔 말인지 모르겠네. 이게 다 대체 무슨 소리야? 문해력이 딸려서 일을 못하겠네.'


낯선 용어들을 네이버 국어사전을 검색해 가며 두 번 세 번 읽어야 머릿속에 개념이 들어왔고, 여러 국도비 사업들은 다시 또 여러 개의 통계목으로 쪼개져 예산을 편성하고 총합을 다시 맞추는 일로 머릿속은 온통 숫자로 가득했다.


물론 각 사업 담당자들이 1차적으로 예산 작업을 하긴 하지만 내가 총괄로 취합하고 오류가 없도록 검토해야 했다. 나도 잘 모르겠는데 사업 담당자들에게 알려주면서 하려니 쉽지 않았다.


가급적 초과근무를 하지 말자는 주의인데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업무량에 복직 초반 몇 달은 야근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퇴근 시간 이후 나만 기다리고 있을 남편과 아이들 생각에 웬만하면 야근을 하지 않으려고 한 석 달을 종일 자리에 앉아 점심시간에도 쉬지 않고 모니터만 쳐다보며 일을 했다. 또한 야근을 하게 되더라도 조금이라도 빠른 귀가를 위해 저녁도 먹지 않고 일을 했었다.


어느 날인가부터 두통이 시작되었다.


원래 편두통이 종종 있었던 터라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진통제를 먹었는데 전혀 듣질 않고 종일 머리가 멍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나아지겠지 하며 버티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병원을 찾았다. 일반적인 두통으로 생각하고 가정의학과를 찾았더니 약으로도 소용이 없고 급기야 머리에 진통 주사를 맞기에 이르렀다. 제법 큰 주사기로 머리 군데군데 주사를 맞는 일은 무서워서 피하고 싶었지만 일단 통증완화가 먼저였다.


몇 번을 맞아도 그때뿐 통증은 또다시 계속되었고 어느 주말 눈이 빠질 것 같은 극심한 두통으로 몸을 일으킬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이 정도면 아무래도 다른 이유가 있지 싶어 신경외과를 찾아갔다.


"손 저림 같은 건 없으세요?"

"아.. 최근에 젓가락질할 때 손이 좀 저리긴 했어요."


"목디스크가 의심이 되네요. 보통 손 저림 증상 동반하기도 하고 신경을 누르면 두통이 오기도 합니다. 이건 일반 두통과는 달라서 그냥 진통제로는 소용없어요."

"어쩐지 통증이 목 뒤부터 머리 쪽으로 타고 올라오는 느낌이었어요. 나중엔 눈까지 아프더라고요."


일단 물리치료를 받아 보기로 하고 소염진통제를 먹으며 견인치료에 들어갔다.


한 달 정도 견인치료를 받았을까 머리가 서서히 맑아오며 두통도 많이 줄었다. 이제야 좀 살 것 같았고 드디어 통증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이렇게 병까지 얻어 가며 조직에 충성하는 게 맞는 건가?'라는 생각은 해볼 틈이 없었다. 월급을 받으니 일을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였고, 그로 인해 얻은 목디스크는 그저 운이 안 좋아 생긴 불편함이었을 뿐, 통증과 함께 비판적 사고는 싹이 날 새도 없이 날아가 버리고 흔적도 없었다.




이후 업무에 완전히 적응을 하고 나니, 지침을 봐도 한 번에 이해를 했고 시스템 사용법도 능숙해져서 나의 업무 철칙과도 같은 '초과근무 안 하기'를 지킬 수 있었다. 대신 9 to 6 엔 여유 없이 풀로 노동을 해야 했다.


"아니 회계업무 하면서 어떻게 야근을 안 해?? 전임자들은 숨 쉬듯 야근했는데. 대단하다. 대단해."


그렇게 2년을 근무하며 회계에 대해 많이 배웠고 그것들은 지금도 나의 업무역량을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다.


조직 내에서 무슨 업무를 하든 예산은 따라다니기 마련이고 아는 만큼 더 잘 보일 수밖에 없다. 이는 팀장으로서 업무를 검토할 때 많은 도움이 되어주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후배들에게도 늘 강조한다.


"회계업무가 어렵고 힘들긴 하지만 한번 배워두면 무슨 업무를 하던 아주 유용해. 기회가 되면 꼭 해봐."

"예? 아무리 봐도 웬만하면 피해야 할 업무 같은데... 꼭 해보라고요?"


"조직생활 오래 할 거면 한 번쯤은 해보는 것도 좋아. 큰 도움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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