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면 먼 대로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날 힘들게 하는...
보건소 회계 계약 업무를 2년간 하면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익혔다.
지금까지의 조직 생활 중 모든 사업에서 두루두루 활용되고 기본이 되는 예산과 지출에 대해 알고 있으니 팀원이 모르는 것에 조언을 하는 것에도 자신이 있었고 관련 업무를 대함에 있어서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복직 초기에는 남편의 육아휴직으로 야근을 하며 업무를 어렵사리 익혔지만 회계계약 용어에도 익숙해지고 억 단위 금액도 차츰 눈에 익으며 근무시간에 초집중하니 특별히 당장 보고해야 할 건이 생기지 않는 한 칼퇴가 가능해졌다.
그렇게 1년 반이 지나고 남편의 복직 시기가 다가왔다.
"출퇴근이 너무 오래 걸려요. 남편도 이제 복직하는데 애들 등하원도 걱정이고요."
내가 속한 조직은 교통난이 심각한 지역에 위치해 몇 년이 지나도 개선되기는커녕 통행량이 점점 증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왕복 40km, 출퇴근 시간은 아침저녁으로 1시간 이상이 훌쩍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당시 아이들 연령은 3,6,9세로 두 아이는 등학원을 시켜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남편이 복직하며 차량 한 대를 더 구입했고, 마침 육아장려로 유연근무 제도가 활발하게 사용이 되던 시기였던지라 나는 1시간 일찍 출근, 남편은 1시간 늦게 퇴근하며 아침저녁으로 나누어 등하원을 담당하게 되었다.
어쨌거나 선배들이 아이 키우던 시절 보다 복지제도가 많이 좋아져서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있었던 건 참 감사한 일이고, 일과 가정의 양립 측면에서 봤을 때 여자 직업으로 공무원은 꽤 괜찮다는 것에 반박하기 어려운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만 2년이 다 되어 가던 시점의 어느 날 과장님이 부르셨다.
"남편 복직했다며? 이제 좀 도와주나?? 애들은 아직도 손이 많이 가지?"
"네~ 아침저녁으로 나눠서 등하원 시키고 있어요. 예전처럼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어요."
"○○지소 주무팀 차석이 보직받아서 나갈 거야. 이번 인사에 그쪽으로 보내주려고 하는데 어때??"
"정말요?? 전 그럼 너무 좋죠.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예요."
"그럼 자네 후임자 한 명 찍어! 자리 채워 놓고 가야지."
"네?? 다들 이 자리 기피하는데 제가 누굴 어떻게 찍어요? 전 못해요."
"예산, 회계, 계약은 아무나 못 시켜. 잘할 것 같은 직원으로 찍어와~"
"......"
아니 왜 인사를 나보고 결정하라 하시는 건지, 내가 누군가를 찍었다가 나중에 그 사실이 알려지면 무슨 욕을 먹으라고!! 자기네들이 해야 할 일을 나한테 미루는 거야, 뭐야?
그 뒤로도 몇 번 복도에서 마주칠 적마다 후임자에 대해 물으셨지만 난 대답할 수 없었다.
내가 뭐라고 누구를 이 자리에 앉히면 좋겠다는 의견을 낸 단 말인가. 내가 뭐라고...
두 달 뒤 의외의 인물이 후임자로 정해지고 난 드디어 집 가까운 곳으로 발령이 나게 되었다.
"집에서 가까워져서 너무 잘됐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친하게 지냈던 언니가 축하를 해주었다.
"고마워~ 언니. 근데 김주무관이 내 후임이더라. 어떻게 그렇게 됐나 몰라. 너무 의외라서 놀랐어."
"아~~ 과장님이 나한테 물어보시길래 내가 추천했어. 얘기하지 마~"
"아~~~~ 그런 일이 있었어!!"
인사발령이 나고 팀장님께서 인수인계에 대해 한 말씀하셨다.
"○주무관~ 김주무관이 행정업무가 처음이니까 일주일은 이쪽으로 출근하면서 인수인계 좀 해줘."
"네?? 일주일이 나요??"
"이제 집 가까운 데로 가잖아~ 일주일만 좀 해줘."
"아니 저.. 그럼 그쪽 자리가 비는데요. 거기 업무는 어떻게... "
"그건 내가 그쪽 팀장한테 얘기할게. 그러니까 그냥 좀 해줘."
발령일자가 정해지지 않았으면 모를까 이렇게 발령이 났는데 인수인계를 일주일이나 해달라고 당당하게 요청받는 건 또 처음이라 적잖이 당황했지만 평소에도 막무가내 팀장님이었던지라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후임자는 나에게 1년 동안 업무에 대해 전화로 물어보았고, 올챙이 적을 생각해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며 길고 긴 인수인계를 마칠 수 있었다.
새로 맡은 업무는 부서의 살림살이를 도맡아야 하는 '서무'였는데 여기는 '회계'업무도 함께 가지고 가야 해서 새롭지만 새로울 것도 없었다. 살림꾼 체질이 아닌 난 서무가 맘에 들지 않았지만 집에서 가까운 것으로 모든 것이 상쇄되었다.
'역시 조직은 가까운 곳이 최고야.'
조직생활의 대부분을 출퇴근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곳에서 했던 지라 가까우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장땡이며 다른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당시는 다른 생각을 하지도 않았을 때이기도 하지만 후에 또 하나 깨달음을 얻은 것이 있다면, 아무리 집에서 가까워도 역시 일은 사람과 하는 것, 사람과 맞지 않으면 가까운 거리도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