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합니다. 제겐 그런 거 없는 것 같아요.
부서의 살림을 도맡아 하는 '서무'는 두루두루 세심하게 챙기는 스타일이 아닌 나와 잘 맞지 않았다.
살림꾼이면 이것저것 잘 챙겨야 한다는 나의 신념에 반해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나의 성향은 마음속 심각한 내적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갈등은 노심초사 불안으로 다가왔다.
'이건 내가 나서서 직원들 챙기고 해야 할 것 같은데, 내가 주도하고 나서는 건 못하겠어. 하~~ 어떡하지?'라는 고민이 꼬리표처럼 붙어 다녔다.
거기에 더해 세 개의 팀 중 우리 팀을 제외한 나머지 두 팀의 팀장님들이 하필 보통이 아니신 분들이셨고 나의 이런 부족한 능력에 혹여나 잔소리나 참견이 더해질까 싶어 부담은 점점 커져만 갔다.
급기야, 매일 밤 출근하기 싫어 병에 걸리고 말았다.
"아~~ 어떻게 해. 내일 가기 싫어. 아 정말 싫어 어떻게 해."
"가까우니까 참고 다녀야지 뭘 어떻게 해. 그 사람들이 뭐 오래 있겠냐? 당신보다 먼저 다른 데로 가겠지."
그렇게 1년을 꾸역꾸역 울며 겨자 먹기의 시간을 보내던 시기, 날 이곳으로 보내주셨던 이전 부서의 과장님께서 이쪽으로 오시게 되었다.
"이제 서무회계는 젊은 직원 배우라고 넘겨주고 인허가 업무 담당하는 게 어때?"
"네? 그게 낫.. 겠.. 죠오? (아싸~)"
다시 또 의약무관리 업무였지만, 그 두 팀장님들의 참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 서무만 아니라면.. 그 어떤 업무라도 하겠다 마음먹었던 때라 과장님의 제안을 냉큼 받아들였다.
당시 근무 지역은 신도시가 조성되고 본격적인 입주가 시작되었던 시기라 신규 등록하는 의약무시설이 줄을 이었다. 기존에 조성된 시설들이 없으니 이용 불편 민원보다는 상대적으로 처리가 명확한 개설 인허가가 주가 되어 수월한 편이었다.
무엇보다 좋은 건 단독 개별 업무라 누구의 참견과 간섭도 받지 않는다는 것.
그 두 팀장님께 완전히 질려버린 뒤라, 내부 직원에게 협조를 구하지 않아도 되는 외부 민원처리 업무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얼마 후 조직개편으로 나의 업무가 분리되어 다른 보건소로 흡수되며 근무지 이동이 있었고 그 곳에서 새로운 팀을 구성하게 되었는데, 담당팀장이 하필 그 두 명 중 한 명이더라.
세상일은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이어 코로나19 터지며, 그 화려한 서막이 올랐다.
십여 년 이상을 근무하며 각종 비상근무에 투입이 되어왔다.
대부분이 가축전염병으로 구제역 때는 2교대로 돌아가며 그 추운 겨울 도로 옆 간이 천막 안에서 밤낮으로 지나가는 차량 소독업무를 했고 조류인플루엔자가 퍼지면 새벽에 집결하여 닭장 안으로 들어가 그 안에 있는 닭을 다 자루에 집어넣어야 나올 수 있었다. 같은 직종에 있는 남편의 경험을 더하자면 방목하는 닭의 경우 뛰어다니면서 닭을 잡아야 했고 마찬가지로 모두 잡아야 방목형 닭장에서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을 조직원을 투입시켜해 왔으나, 몇 해 전부터 서서히 용역을 주는 것으로 개선되었고 더 이상 추위와 싸워가며 가축을 매립 처리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가축전염병은 관련 부서의 일에 협조하는 차원이었지만 인체 감염병은 보건소가 전담이다.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에 이어 2020년 신종감염병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사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전 감염병과 크게 다를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선임보건소 강당에 간단하게 비상근무지가 꾸려지고 지원 근무를 나간 날 우리나라 첫 사망자가 발생했다.
간소했던 비상근무지는 코로나19 확산세에 따라 점점 그 공간과 인력이 확장되었고 보건소에 이어 시 전체 직원이 투입되며 팬데믹으로 치달았다. 보건소 대부분의 업무가 중단되고 오로지 코로나19 대응에 매달리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담당하고 있는 인허가 업무는 중단 대상이 아니라 평소 업무를 똑같이 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은 야간근무를 지원해야 했고 그와 별개로 간헐적으로 선별진료소나 역학조사에도 투입이 되어야 했다.
조직 차원에서도 이런 사태는 처음 겪는지라 시행착오는 덤으로 따라붙을 수밖에 없었다. 조직 내부도 바깥세상도 아비규환이 따로 없던 시절이었다.
조직개편으로 더 넓은 권역을 관할하게 된 나의 업무는 기존 병의원 및 약국 민원에 더해 감염병 수칙 위반 신고 민원까지 보태졌으며, 하필 옆 직원이 차출되는 동시에 코로나19 검사 키트 판매가 호황기를 맞으며 의료기기 판매업 신고가 급증하며 그 일까지 나에게 넘어왔다. 민원접수함이 비워질 틈이 없었다.
평소엔 두 사람의 몫을 해내야 했고, 야간근무에 투입이 되면 밤새도록 걸려오는 코로나19 콜센터 전화를 받으며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나는 물론이고 보건소 나아가 시 전체 조직원이 겪어본 최악의 상황이었을 것이다.
비단 이 조직뿐이랴 전 국민을 공포와 불안으로 몰아넣었던 시간이었을 테지.
한번 경험해 봤으니 또 다른 감염병이 발생하면 잘 대응해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하지만 내가 근무하는 동안에는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은 부족한 직업의식 탓일까?
『대한민국헌법』제7조 제1항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난 과연 진정한 봉사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