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허리, 중간관리자가 되다.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by 달림

코로나 시국.


보건소에서 근무하며 맞이한 역병의 시대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감염병 부서에 근무하지 않았으니 다행이지 전담 부서에 있었으면 나도 내가 어떻게 되었을지 알 수가 없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늘 퇴근이 늦어졌던 직원의 아이들은 방치되고 인스턴트 음식만 먹다 건강을 해쳤고, 가정에 신경을 쓰질 못하고 집에 들어가기 힘든 상황을 이해 못 하는 남편과 이혼 위기에 처한 직원, 해결되지 않는 민원 폭주에 마음의 병을 얻은 직원 등 일터가 아닌 각자의 개인 생활에도 위기를 맞이했었다고 한다.


그 당시 조직에서 돌아가는 시스템은 시간 여하를 막론하고 확진자가 발생하면 그 동선을 파악하고 현장을 찾아다니며 CCTV를 확인 후 접촉자를 선별하고 그들을 선별진료소로 보내 검사 후 결과에 따라 확진자를 찾아내 또다시 반복되는 사이클이었다. 그뿐인가 확진자 이송과 소독을 위한 앰뷸런스와 방역도 24시간 대기조였으며 자택 격리 중인 확진자의 약과 생필품 배송은 덤이었다.


전 직원이 투입되어 2, 3교대 근무로 24시간 근무 체계를 갖춰졌다. 그에 따라 초반에 여기저기 불려 나갔던 나는 중단할 수 없는 인허가 업무 담당이었던지라 나중에는 콜센터 야간근무조에 고정 투입되었다.


콜센터라 함은 코로나에 대한 종합적인 안내와 민원을 접수하는 일원화된 창구역할을 했던 곳으로 코로나 검사와 결과 문의부터 접촉자 해당 여부, 거리두기 미준수 신고, 자택 격리자의 고충 상담, 확진자 응급실 확보 등 각종 민원 응대와 확진자 생활치료센터 및 전담병원 이송을 담당해야 했다.


코로나 확산이 절정에 달했을 무렵에는 이 콜센터에도 다수의 직원이 투입되어 근무했지만 확산세가 좀 주춤할 무렵엔 야간근무를 혼자 하기도 했었다.


업무 지침이 있긴 하지만 정말 어떻게 해결해 줄 수 없는 전화가 걸려올 땐 난감하고 불안했다.


"혼자 시골집에서 격리 중인데 갑자기 격리되는 바람에 먹을게 아무것도 없어요. 너무 배가 고픈데 여기 주변에 배달하는 곳이 없어요. 잠깐 나가서 사 와도 되나요?...... 안되면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야?!!!$#!$#$%!$#"


"가족끼리 격리하고 있다가 다툼이 있어서 집을 나왔는데 저 어디로 가야 해요? 숙박업소 가도 돼요?...... 안되면 어디로 가라는 거예요!! 생활치료센터를 보내주든가!! 새벽에 밖에 나와서 몇 시간째 있는데 얼어 죽겠다고!!."




콜센터 야간근무를 하며 가장 어렵고도 겁이 났던 건 발열환자가 갈 수 있는 응급실 확보가 되지 않을 때였다. 발열 증상은 거의 99% 코로나 확진으로 이어지기에 얼마 되지 않는 음압 격리병실이 있는 곳으로 가야 했다.


일반 성인이야 해열제로 버티다 다음 날 진료 가능 병의원으로 가라고 할 수 있다 쳐도 고령의 어르신이나 어린 아기의 경우 심야시간 비어 있는 응급실을 확보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거기에 더해 불안에 떠는 보호자를 안심시키는 일도 쉽지 않았다.


"우리 아기 어떻게 해요? 지금 열이 40도를 오르내리는데 어디로 가냐고요. 갈 수 있는데 좀 찾아주세요."


내가 병실을 확보해 주지 못했다가 혹여나 그들이 잘못되거나 그랬을 때 그 화살이 나에게 올까 두려웠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밤새 콜센터로 오는 전화 민원을 해결하고 때론 두려움에 떨며 응급실에 전화를 돌렸다. 그러다 급히 이송해야 할 건이 생기면 핸드폰으로 착신을 걸고 이송하면서 콜센터 전화를 받아야 할 때도 있었다.


그렇게 야간근무를 일주일에 한 번씩 하고 나면 생체리듬이 엉망이 되었고 체력을 회복할 즈음이면 또다시 일상업무 퇴근 후 야간근무 이어가기를 반복해야 했다.


다행히 점차 확진자가 줄어들고 야간근무 주기가 점점 길어질 무렵 인사발령이 떴다.


첫 보직을 받다.


6급 승진을 하고 '팀장'이라는 보직을 받기까지 짧게는 1년 길게는 수년이 걸리기도 하는데 10개월 만이었다. 운이 좋았던 걸까. 팀장님 한 분이 명예퇴직하시고 한분이 1년 질병휴직에 들어가면서 자리가 났던 것이다.


내가 이끌어야 할 팀은 팀원이 무려 7명이었고, 코로나 확진자들이 주로 재택치료를 이어가던 시점에 환자를 관리하는 전담팀이었다. 원래는 다른 팀이었으나 보직을 받음과 동시에 코로나 재택치료 TF 부서로 3개월 파견 근무를 명 받은 것이다.


이 시기에 감염병 전담 부서라니, 하지만 다행인 건 코로나 확진자 그래프가 훅 꺾이던 시기였다는 것이다. 그 이전엔 파견 근무 첫 3개월이 6개월이 되고 9개월이 되기도 했는데 타이밍이 좋았는지 3개월 근무를 끝으로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땐 조직생활 18년 차, "팀장님~"이라는 말이 이렇게까지 오글거리는 단어였던가.


18년 동안 불러만 봤지 내가 들으려니 왜 이리 낯설고 오글거리는 건지 팀원이 날 부를 때마다 흠칫!


실무자인 주무관으로 기안문을 작성하다가 팀장 직위를 달고 이제 문서작성이 아닌 검토 후 결재를 주로 하다 보니 체감하는 업무량은 줄었건만 어째 어깨가 더 무겁고 뭔지 모를 공허함도 느껴졌다.


무릇 팀장이라면, 팀원들을 이끌면서 보다 넓고 깊게 볼 줄 아는 시야와 날카로운 판단력으로 빠른 결정을 내려 주는 리더십이 탑재된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팀장에 대한 나의 신념이 과했던 걸까?


난 팀원을 이끄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소심하고 타인의식이 강하며 뼛속까지 내향적인 사람이 나다. 팀원들이 죄다 코로나 시기에 입직한 조직원들로 한참 어린 후배들이었으나 낯가림도 심해 말 한마디 걸기를 망설이는 팀장이 나였다.


내 머릿속에서 팀장은 이렇게 해야 하는 거라고 하는데, 행동은 그렇게 따라가지 못하는 인지부조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걸 내색할 수도 없는 일, 시간이 갈수록 마음속 불편함이 점점 그 자리를 넓혀 나가기 시작했다.


'이걸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할까?'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적어도 그땐 그랬다.


극복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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