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넘어 산이로구나.
의료비를 지원해 주는 업무는 민원인들에게 보탬이 되는 사업이기에 반응도 좋고 일 또한 보람된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경제적인 사정도 어려운 상황에 나라에서 치료비를 준다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럴수록 나랏돈이 적정 대상자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그 지급과정을 철저히 검토해야 하니 일에 대한 보람은 있지만 부담은 높은 편이다.
당시 암환자 의료비는 국가암검진 최근 2년 이내 수검여부와 1월 건강보험료, 지급상한액 초과 등을 기준으로 치료비 지급 가능여부가 나뉘었다. 시스템을 통해 확인하고 자동분류가 된다면 좋았겠지만, 몇 개의 시스템을 통해 거르고 거르며 대상자를 추려내야 했다.
담당자 눈으로 확인하고 걸러내야 하기에 자칫 실수를 할 가능성이 있기에 수차례 확인 작업을 거쳐 대상자를 선정하곤 했는데 꼼꼼하게 체크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급하면 안 될 대상자에게 치료비가 지급되어 버리는 일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지급이력이 없던 신규 환자이기에 초기 항암 치료비가 많이 나온 당시 60세 정도 되셨던 위암환자였다.
치료비를 지급하고 시스템에서 확정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던 걸로 기억을 한다.
<<지급불가대상자입니다.>>
'뭐... 뭐... 뭐라고??' 이미 160만 원이 그분 통장으로 입금된 후였다.
"(하아~~ 진짜 미치겠네. 이걸 어쩐담) 팀장님~ 의료비 지급 오류건이 생겨서요.. 이걸 어찌해야 할지..."
"무슨 소리야??"
"아.. 이분이 건보료가 변경되었는데 그걸 놓쳐서요. 지급대상이 아닌데 의료비가 벌써 입금처리 되었어요."
"뭐?? 그걸 또 왜 놓쳐!! ○주무관이 책임지고 처리해!!"
그래도 팀장님의 도움을 좀 받을 수 있을까 했던 나의 기대는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혼자 끙끙 앓기 시작했다.
'어떡해야 하나. 일단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달라고 하면 그래도 주시지 않겠어?'
"안녕하세요. ○○○보건소 암환자 의료비 지원 담당 잡니다. 아... 다름이 아니라 얼마 전에 암환자 의료비 지급받으신 건 때문에 연락드렸어요. 음... 제가 확인하다 보니 건보료가 변경되셔서 지급 대상이 아니시더라고요. 네~ 제 착오로 잘못 입금이 된 거라서요. 정말 죄송한데 환급조치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
"뭔 소리예요?? 대상자가 아녔음 주질 말았어야지 줘놓고 다시 달라는 게 말이 돼??!!"
"아 네.. 제가 업무 맡은 지 얼마 안돼서요. 조금 착오가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난 그런 거 모르겠고. 당신들이 잘못한 건데 난 되돌려 줄 수 없으니 그리 아쇼."
어찌해야 할지 난감했다.
'젠장,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며칠을 고민해도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더라.
"○주무관, 지난번에 지급 오류 난 거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 거야??
"아.. 저.. 그게... 환자분께서 제가 잘못한 거라 못 주시겠다고....."
"그래서 어떡할 건데?"
"아... 네...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요. 음... 어.. 쩌.. 죠? 팀장님"
"집에 찾아가서라도 받아내야지 어떡하니. 으휴~ 주소 확인해 봐."
".... 네에... "
그렇게 팀장과 둘이 두유 한 박스를 사들고 암환자 댁을 방문했다.
노부부는 소파에 앉아계시고, 팀장과 나는 무릎을 꿇고 두 분과 마주 앉았다.
"죄송합니다. 아프신데 제 착오로 의료비까지 잘못 지급되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근데 제가 환급받지 않으면 안 되어서요. 정말 죄송한데 받으신 의료비 반납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니 대체 이런 경우가 어딨소? 응? 진짜 암 걸린 것도 서럽고 항암치료도 힘들게 한 사람한테 저들이 잘못해 놓고는 다시 돌려달라는 게 말이 되냐고? 엉?"
"네.. 죄송합니다. 제 불찰로 번거롭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이 직원이 애 둘 키우고 있어요. 지금 셋째도 임신한 상태라 아주 힘들게 일하는 직원이에요. 저희가 실수하긴 했는데 이거 처리 못하면 이 직원 징계받을 수도 있어요. 애가 둘이나 아니 이제 셋 될 건데 딱하잖아요."
내 사정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었는데, 왜 이 사람은 남의 개인사를 호소하며 봐달라고 읍소를 하는 것인지..
"당신이 팀장이야? 의료비 지급하는 것도 당신이 결재했겠구먼. 그럼 당신 잘못도 있는 거 아녀??"
불똥은 팀장에게로 튀고, 우린 한참 그렇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사정사정하여 답을 얻고 돌아왔다.
"당신네들 잘못도 있으니, 난 다 못 줘. 절반만 돌려줄 테니 나머진 당신네들이 알아서 하쇼!"
그렇게 80만 원을 돌려받고, 나머지 80만 원은 개인 부담하며 환급처리를 완료했다.
집까지 찾아가 무릎 꿇고 빌어서 돌려준 건지, 아님 나를 불쌍하게 얘기한 팀장님 덕분인 건지, 무슨 연유로 환자분이 마음을 바꾸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절반이라도 돌려주신 것에 감사해야 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팀장님은 다른 곳으로 전보받아 가셨고 새로운 팀장님이 오셨다.
무섭기로 정평이 나 있던 분이셨지만 일처리에 있어서는 맺고 끊는 게 깔끔하셔서 오히려 좋았다. 하지만 본인이 아파도 출근하는 편이니 만큼 팀원의 복무에도 똑같은 잣대를 적용하셨다.
"팀장님~ 저 셋째 유도분만 해야 한다고 해서요. 다음 달 3일로 날을 잡았거든요. 후임자 정해지면 인수인계 하겠습니다."
셋째 또한 출산 전일인 2일까지 일을 하고 다음 날 입원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후임자는 좀처럼 정해지지 않다가 4일을 남기고서야 후임자라며 발령을 내주었다.
4일 동안 모든 것을 인수인계 하고 충분히 해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주무관~ 유도분만이니까 진통이 와서 출산하러 가는 게 아니잖아. 내가 간호사라서 더 잘 알고 애도 둘 낳아봐서 다 알아. 하루 미뤄~"
"네?? 이미 예약했는데요.."
"다음날 간다고 하면 되지~ 내가 불안해서 그래. 하루만 더 봐줘~"
'...... 인수인계 다 했는데, 하루를 더 한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다른 직원들은 출산 한 두 달 전부터 들어가기도 하는데, 난 왜 미련 맞게 꾸역꾸역 출근해서는 정해진 출산일까지 미룬단 말인가.
조직에 이렇게 충성한다고 해서 나한테 돌아오는 게 뭐라도 있었던가??
'말 잘 듣는' 조직원이라는 수식어는 조직의 배려보다는 어렵고 과중한 업무로 돌아오는 걸 그땐 몰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