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 같은 조직원끼리 그러지 맙시다.

이젠 다시 만날 일 없는 오팀장

by 달림

두번째 육아휴직을 끝내고 반은 떠밀려 반은 자의적인 복직을 했다.


5살, 2살 아이를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각각 떼어 놓으며 출근해야 하는 마음은 편치 않았지만 여전히 빚을 갚고 있었기에 한 사람의 월급만으로는 빠듯한 살림인지라 떠밀리 듯 복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3년 전 복직의 경험은 오히려 일터가 육아에서 벗어나 작게나마 한숨 돌릴 수 있는 숨통이 되어 주는 역할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느꼈기에 절반은 육아 전쟁의 도피처로 선택한 복직이었다.


출근 이전 퇴근 이후에 따라붙는 또 다른 전쟁인 아이 두명을 따로 등하원을 시켜야 하는 일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게 함정이라면 함정. 그해 초겨울, 어린이집 안가겠다며 옷도 안입고 버티며 우는 둘째를 이불 째 둘둘 말아 차로 실어 어린이집에 던져 주듯 건네고 출근한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사정을 얘기하고 좀 늦게 출근하면 어때서...난 왜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을까?




두번째 복직 시점은 8월, 정기 인사 시즌도 아니고 어디에 날 갖다 넣기 애매한 시점이었다.


두 아이의 엄마라는 점을 배려해 준건지 아님 그곳이 비어 있어서 였는지는 몰라도 감사하게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비교적 가까운 보건지소로 발령을 내주셨다.


하지만 난 간호사가 아니기에 예방접종을 위해 옆 동네 보건지소의 직원이 매주 1회 지원을 나와주어야 했다.


남들은 보건지소가 애 엄마로서 근무여건이 좋다고 희망하지만 간호사가 아닌 난 그리 편한 곳이 아니었다. 나로 인해 매주 지원을 나와야 하는 직원에게도 미안했고, 지소에 방문하는 어르신들은 당연히 날 간호사로 알고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물어보시는데 의료인이 아닌 난 대답해 드릴 수 없기에 송구스러웠다.


"엥? 아니 보건지소에 근무하면서 그런 것도 몰라?"

"아.. 네.. 어르신 죄송해요. 저는 간호사가 아니라서요."


"진료받는데라 간호사만 오는 줄 알았는디, 아닌가보네~"

"^^;;;"


그나마 좋았던 건 지소에 근무하는 직원이라고는 공중보건의사와 나뿐이기에 둘째가 수족구 같은 질병으로 어린이집에 못 가게 될 때면 데리고 출근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일터에 아이를 데리고 오면 안되지만 어린이집 말고 의지할 곳이 없었던 워킹맘은 어쩔 수가 없었다.




간호사가 아니었기에 그 곳에서 길게 근무할 수 있을거라곤 기대하지 않았고 역시나 4개월 뒤 난 본소로 발령을 받아 자리를 옮겼다.


이번에 맡은 업무는 암환자의 의료비를 지원 해주고 암검진 홍보와 안내를 하는 일.


전임자는 다른 지역으로 전출 예정인 직원으로 일주일간 인수인계를 받을 수 있었고, 담당 팀장은 첫 보직을 받은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었으며, 그 외 두명의 팀원이 더 있었다.


무사히 인수인계를 마치고 전임자는 다른 지역으로 떠났다.


그리고 한 2주 되었을까? 행사를 준비해야 했다. 다른 팀에서 주관하는 행사에 한 꼭지로 들어가게 되는 거였는데 전년도에 도우미로 지정된 사람들을 초대하라고 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이번에 암검진 사업을 맡게된 ○주무관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도우미로 지정되어 있으시잖아요. 저희가 이번에 행사를 진행하는데 참석해 주셨으면 해서요."


"네?? 제가 지정이 되어 있다구요?? 내가 그런 걸 했었나???암튼 전 참석 못할 것 같아요. "


전화를 돌리면 돌릴수록 본인이 도우미로 지정된 사실조차 잊고 지내던 사람에게 그런 부탁을 한다는 게 과연 의미가 있는건지 의문이 들었으며, 당연히 그들은 참석을 희망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전임자가 지정만 해놓고 그들을 활용한 사업을 진행한 적이 없었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팀장님~ 도우미 분들이 다들 참석이 어렵다고 하시는데.. 어떻게 할까요?"

"야~ 좀 적극적으로 와달라고 요청을 해야지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2~3명 정도는 와줘야 하는데."


그들이 못오겠다는데 낸들 어떡하라고...


우리가 주관하는 행사도 아니니 그들이 못 오겠다면 말아도 될 것 같은데 결국 팀장님은 도우미가 아닌 본인의 올케 두분을 불러 자리를 채우셨다. 실제 행사 당일에 가보니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표시도 안나는 자리였다.



또 한번은 검진 장소를 협조받아야 할 일이 생겼다.


농촌지역이라 차량이 와서 출장 검진해 줄 장소를 물색하는데 농협이 적격이었다. 아무리 관공서와 지역사회에 협조하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농협의 입장에서는 외부인이 드나들어야 하는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을 것이다.


"여보세요. 네 안녕하세요. ○○보건소 암검진 담당잡니다. 예전에 검진장소로 협조 받은 적이 있다고 해서요. 혹시 다음달에도 협조가 가능할지 여쭤보려고요."


"아~~ 그거 주말에 화장실도 내어드려야 하고 이런 저런 문제로 좀 어려울 것 같다고 내부적으로 결정을 해서요. 이번엔 안 될 것 같습니다."


"아~~ 그래도 그쪽 동네가 농협이 사람들이 좀 많이 모일 수 있는 곳이고 거기 말고는 할만한 곳이 없어서 그러는데요. 한번만 더 검토해 주시면 안될까요?"


"죄송합니다. 어려울 것 같아요."


적극적이지 못한 성향의 난 어쩔수 없음을 직감하고 팀장님께 이 사실을 알렸다.


"야!! 너 내가 그러지 말라고 했지!! 어떻게 해서든 허락을 구해야지 그냥 알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다는거야!! "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나에게 소리를 빽 질러대는 사람이 나의 팀장이었다.


'이게 이렇게 직원들 보는 앞에서 내몰리며 혼 날 일인가?'


눈물이 났다. 누구한테도 그런식으로 혼난 적이 없는 나였다.


원래 이런 어려운 협조는 오히려 팀장급이 나서서 해결해 주어야 할 일 아닌가?


결국엔 팀장과 함께 그 농협의 과장을 거쳐 조합장까지 만나 머리를 조아리고 우는 소리를 하고 나서야 장소 협조를 받을 수 있었던 건이었다.


윗 사람에겐 고상한 척, 아랫사람에겐 큰 소리치는 팀장에게 정내미가 똑 떨어지고 함께 일하기 싫어졌다. 그렇게 혼난 이후 몇날 몇일을 퇴근하는 차안에서 울며 불며 운전했던 기억이 난다.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때였던 것 같다.


조직생활 9년차, 웬만하면 좋게 지내려는 무던한 성격탓에 동료들 사이에서 힘든 점이 없었던 난 조직원으로 인해 힘들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일이 힘든 것보다 사람이랑 안 맞을 때 더 힘든게 조직생활이라는 것을.



이후 팀장과 데면데면하고 서먹서먹하면서 냉랭한 분위기 속 또 하나의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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