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님 감사합니다.
내 평생 누군가에게 고발을 당할 거라고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기 그리고 심지어 성인이 되어서도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하지 말라는 일은 하지 않았고 소심한 성격 탓에 섣불리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도 어려웠기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될 만한 행동은 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런 날 '직무유기'로 고발하다니 어이도 없고 정신도 없었다.
경찰서에서 그 부녀지간과 함께 녹취된 내용을 들으며 조사를 받았다. 무슨 말인지 정확하지도 않았고 들리는 내용 또한 직무유기와는 상관이 없었다.
"형사님 들으셨죠? 이거 봐요. 이 여자 말이 이렇게 바뀌었다니까요. 병원에 잘못이 있다 해놓고 나중엔 아닌 것처럼 말하잖아요!"
"이 주무관님, 들으신 내용 본인 맞으세요? 왜 그러셨어요?"
"네?? 저 맞는 것 같긴 한데... 어... 음... "
경찰서 형사님 앞, 그들은 두 명이 합세해서 날 몰아붙였고 형사님 또한 나에게 추궁하듯이 물었다.
말주변도 없는 데다 형사님까지 뭐라고 하시는 것 같아 어찌 대답해야 할 바를 몰랐다. 그들은 신나서 진술하고 나는 우물 쭈물하다 조사가 끝났다.
형사님은 그들을 먼저 보내고 내게 말했다.
"아까는 그 사람들이 있어서 말을 좀 세게 했어요. 그래야 그들이 수그러들 것 같아서. 너무 걱정 마시고 조심히 돌아가세요."
다행이다 싶은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다. 조사도 받았으니 이제 곧 이 상황도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주무관님~ 조서 마무리 해서 검찰로 넘겼습니다. 혹시 검찰청에서 전화 갈 수도 있어요. 증거 불충분이나 무혐의 나올 거예요. 너무 걱정 마세요."
형사님께서 전화로 진행상황을 알려주셨고, 빨리 이 사건이 완전히 종결되길 기다렸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퇴근 시간이 가까워 올 무렵 핸드폰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여보세요."
"이○○님 되십니까? 여기 ○○검찰청인데요."
"네? 검찰청이요?? 무슨 일이신데요??"
검찰청이라는 말에 형사님이 알려주셨던 내용이 떠올랐고 사건과 관련되었을 거란 생각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 이○○님 통장이 대포 통장으로 사용되어......!$ㅉ@%$^@#$#!@#@!ㅍ%ㅎ$#"
여기까지 듣고서 알아차려야 했지만 그러질 못했다. 세상에 내가 이 흔해 빠진 수법에 당할 줄이야...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전화를 내려놓질 못하고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 지시에 따르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 인근의 은행 인출기에서 나의 다른 통장으로 계좌이체를 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자칭 검사라고 하는 사람의 말에 따라 인터넷 주소를 쳐보니 검찰청 홈페이지가 떡 하니 나타났다.
아무 의심도 하지 못한 채로 그 사람이 가르쳐 주는 순서에 따라 클릭하니 보안카드 입력화면이 나오고 번호를 입력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건 더 큰돈이 들어있던 보안카드는 집에 두고 온 것.
전화기 속 검사님은 전화를 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나중에 옆의 직원이 하는 말이 내가 아주 이상했다고 한다. 전화 통화는 퇴근하고 집으로 가는 내내 이어졌고 중간에 수차례 문자를 받았는데...
[귀하의 인증서가 삭제되었습니다.]
[귀하의 인증서가 새로 발급되었습니다.]
[귀하의 인증서 비밀번호가 설정되었습니다.]
뭐지?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이 검사놈은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큰 아이 픽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고 아이를 데리고 나와 궁금한 마음에 급히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해당 번호는 해외....]!!!!
때마침 걸려온 남편의 전화, "왜 이리 계속 통화중이야?"
"여보~ 나 아까 검찰청에서 전화 왔었는데 다시 걸어 보니 해외전화래."
"야!! 이 멍충아. 그거 보이스 피싱이잖아!!"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서둘러 집에 들어가 인터넷 뱅킹에 접속해 보니 조금 전 통장에 들어있던 돈 삼백만원 전액이 빠져나간 뒤 였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바보같이 내가 보이스 피싱을 당하다니, 뉴스에도 연신 보도되는 그 뻔한 수법에 이렇게 쉽게 당하고 돈을 털리다니. 4살 큰 아이가 보거나 말거나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해 엉엉 울었다.
다음 날 퉁퉁 불은 눈을 하고 남편과 함께 인근 파출소에 가서 신고를 했다.
"접수되셨고요. 저희가 경찰서로 보낼 거예요. 경찰서에서 담당자 정해지면 연락이 갈 겁니다."
그리고 며칠 후. '직무유기' 고발 담당 형사님이 전화를 주셨다.
"이 ○○씨 맞습니까?"
"어? 형사님.. 네 저예요. 잘 지내셨어요?"
"에?? 이○○씨가 그 보건소 이○○씨예요??"
"네?? 저요.. 왜 그러시는데요??"
"아니 어쩌다 보이스 피싱까지 당했어요?? 나 이 사건 맡아서 확인 차 전화드린 건데.."
하... 이런 우연이!!!
"아.. 그게요... 검찰청이라고 해서 제 사건이랑 연관된 건 줄 알고.... 그만.... "
창피했다. 어수룩한 사람임이 들통난 것 같아 부끄러웠다.
"아유~ 속상하시겠네. 걱정 말아요. 내가 꼭 잡아줄게요."
따뜻한 형사님의 말에 또 눈물이 핑 돌았다. 사람 울리는 재주가 있으신가... 힝...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부분 보이스피싱 사건이 그러하듯 CCTV로 범인은 확인이 되었으나 얼굴은 다 가리고 있어 확인이 안 되고 돈은 진즉에 해외로 빠져나가 돌려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담당 형사님께서 미안한 목소리로 결과를 알려주셨고 어차피 받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기에 담담히 받아들였다. 당한 사람이 잘못이지 누굴 탓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에야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이 해프닝을 당시 사무실에서는 말도 못 꺼냈다. 보이스피싱 당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창피했고 날 바보 같다며 비웃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훗날 털어놓으니 놀라긴 했지만 아무도 날 비웃지 않았다. 소심했던 내가 왜곡된 생각을 했던 시기였나 보다.
내 인생에 길이 남을 두 가지 사건을 맡으며 따뜻한 말로 위로와 도움을 주셨던 형사님께 감사를 전한다.
원래 이 사건을 이렇게 길게 다룰 계획이 아니었는데, 형사님과의 인연을 풀다 보니 길어지며 한 꼭지를 차지하게 되었다. 내가 조직에 몸 담지 않았으면 만나지 못했을 감사한 인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