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전쟁터임은 매한가지.
명예훼손과 무고죄로 맞고소를 했던 세 명이 머리를 맞댔다.
경찰서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괘씸죄까지 더해진 그녀는 이제 겨우 스무 살, 이제 막 화려한 인생을 펼칠 시기에 빨간 줄(전과기록)을 긋게 하기는 안타깝다는 심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드디어 합의 결정!!
"형사님, 상대측이 제 민원인인데요. 제가 돈을 받기엔 좀 그런데 합의금을 안 받으면 안 되나요?"
"주무관님, 합의금은 합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당연한 수순입니다. 받으셔도 아무 문제없고 당연히 받으셔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 합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거예요."
그렇게 세 명이 나누어 받은 합의금은 삼백만 원 남짓, 보이스 피싱으로 날아간 액수와 비슷하게 일치.
'하~ 그 돈이 이렇게 메꿔지는 건가.'
그제야 그녀 모친의 사무실 방문, 집으로 날아드는 반성문이 자취를 감추었고 내 마음속의 불안도 사라졌다.
그러고 나니 삼 개월이 흘러있었고 거의 막달에 접어들기 시작할 무렵 팀 내 업무 조정으로 의무시설 관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병의원 관리에서 벗어났을 뿐, 새로 맡은 업무는 소독의무대상 시설관리로 과태료 부과가 복병이었다.
행정처분과는 조금 성격이 다르지만 민원인들이 느끼기에는 차이가 없다. 어차피 처분이기에...
당시 (구) 전염병예방법에 따라 다수인이 거주 또는 이용하는 시설은 정기적으로 소독을 해야 하는데 모르고 있는 곳이 태반이었다. 일일이 안내를 하고 1차적으로 기한을 정해주고 그래도 이행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하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독받지 않은 업소가 발생했다.
이 정도까지 했음에도 소독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곳은 대표자의 관리가 소홀하거나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두 가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대표자가 자리를 자주 비워 관리가 소홀한 업소는 찾아가도 종업원들 뿐이라 모르쇠로 일관하여 확인서를 받아내는데 애를 먹었고, 중요성을 미처 인식하지 못한 곳은 뒤늦게 따지고 들기 바빴다.
"소독 한번 안 했다고 무슨 과태료야?? 너거들이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는데!!"
"사장님~ 전염병예방법에 그리 규정이 되어있고요. 그래서 앞서 수차례 안내문도 보내드렸잖아요."
"난 그딴 거 보지도 못했는데 무슨 소리야? 야 이!#@%$%$#%$#%$^"
"........."
물론 영세상인들이기에 몇십만 원의 과태료가 적지 않은 돈이라는 건 이해하지만 난 무슨 죄로 이리 욕을 먹어야 하느냔 말인가.
이런 경우 어떻게든 부과까지 진행했다 쳐도 열이면 열, 백이면 백 과태료를 받아 낼 때 또 비슷한 일을 치르게 된다. 그들이 순순히 내어 줄리 없으므로...
겨우 부과까지 진행을 하고 난 둘째 출산에 들어갔다. 과태료를 받아 내야 할 후임자가 염려스러웠지만 그도 나처럼 조직원으로서 그저 해내야 할 일이니까 어쩔 수가 없다.
이번에도 90일의 출산휴가에 더해 1년의 육아휴직을 계획했다. 다행히도 3년 전보다 육아휴직을 내는 데 마음의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조직 내 분위기가 당연한 것으로 바뀌어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휴직을 낼 수 있었다.
"아고~ 애기가 크네요. 예정일까지 기다리면 4kg 넘겠는데. 좀 일찍 낳으셔야 할 것 같네요."
출산일을 미리 정해 놓기도 했고, 출산 이후 하루라도 아이와 함께 해야겠다는 마음에 둘째 아이 또한 출산일 직전까지 일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미련한 것 같기도...)
이미 우량했던 둘째는 밖으로 나오기가 싫었던 건지 아침 일찍부터 입원을 하고 촉진제를 맞았건만 종일 아무 소식이 없다가 의사 선생님이 퇴근하고 나서야 진통이 걸려버렸다.
밤에라도 언제든 오시겠다고는 했지만 아기가 좀처럼 내려오질 않아 결국 20시간에 가까운 진통을 하고 다음날 대낮이 되어서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여보~ 큰애는 낳자마자 똘망똘망 눈을 뜨고 있었는데, 왜 얘는 계속 눈을 감고 있지?"
"그러게. 갓 태어난 강아지처럼 눈을 못 뜨네. 나오기 싫어하는 애를 억지 낳은 건가?"
미처 몰랐다. 아이 하나와 둘의 차이를...
애가 둘이면 두배로 힘든 게 아니라 세배 네 배는 더 힘들다는 것을 그땐 몰랐다.
집으로 돌아오고 육아전쟁의 서막이 열렸다.
휴직을 하고 두 아이를 거의 독박육아하게 되면서 처음 알았다.
나도 헐크 같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포효에 가까운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나도 모르는 폭력성이 깊숙이 내재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엄마 그리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끝없는 인내에 인내를 더해 사랑으로 승화시킬 줄 알아야 하며 종국에는 그 사랑이 아이가 무엇을 해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이 되어 기다릴 줄 아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함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나를 붙들어 준 것이 책이었다. 육아서를 읽는 동안에는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아이들에 대한 마음이 차분히 다스려졌다. 읽지 않으면 또다시 반복되는 화와 죄책감 사이에서 오직 육아서만이 불안한 나를 잡아주었다.
둘째는 복직 시기가 한 여름이라 신학기에 맞춰 어린이집에 입소시켰다. 만 10개월의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큰애가 다녔던 어린이집이라 원장님께 부탁해서 첫 한 두 달은 하루에 한 시간씩 천천히 적응시키기로 했다. 엄마로서 그나마 미안한 마음을 좀 덜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엄마로서의 성장통을 겪으며 1년의 육아휴직 기간을 보내고 역시나 예정된 경제적인 이유로 당연한 복직을 하며 다시 조직세계로 합류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