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간 조직에서는...

어서 와, 기다리고 있었어.

by 달림

첫째 아이 출산휴가 90일에 더해 1년간 육아휴직을 했다.


휴직 들어갈 때만 좀 죄송했을 뿐 전입 후 근무기간이 두 달뿐이었던 조직이라 그 미안함은 금방 걷혔다.


당시엔 몰랐지만 첫째 아이 하나 육아하는 것은 쉬운 편이었다. 여자아이였고 한 명에게만 집중하면 되었으니 육아시기 중의 황금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30만 원 정도 되던 육아휴직 수당은 3개월 뒤 끊겼고, 외벌이로 아파트 대출까지 갚으니 1년의 휴직이 끝나갈 즈음 경제적인 문제로라도 복직이 당연한 것이 되었다.


14개월 아이를 단지 내 가정 어린이집에 한 달간 적응시키며 복직 준비를 하고 2010년 12월 크리스마스이브에 출근을 했다.



"이 주무관이 맡을 업무는 의약팀 의무시설관리야."


신규자 시절 4년을 지도점검 업무를 했는데 또 지도점검 파트로 던져졌다. 단속 대상이 식품이나 공중위생업소가 아닌 병의원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전임자가 임신 중이었는데, 민원에 시달리고 있어 임산부 배려 차원에서 복직한 내가 그 자리로 가게 된 것이다. 인수인계를 받는데 전임자의 표정은 세상 어둠을 다 가진듯한 얼굴로 어디 한 군데 밝은 구석이 없었다.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되고 걸려오는 민원 전화를 응대했다.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화'가 깔려 있으며, '불평, 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 본인들이 어떤 부당한 일을 당했는지 구구절절 설명하며 (본인기준) 병원의 잘못에 대해 '엄벌'을 내려주길 원한다.


원하는 대로 해 줄 수 있다면 더 이상 싸울 일이 없지만, 우리나라 의료법이 그리 호락호락하지가 않은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민원 내용의 대부분이 처분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건이었다.


여기부터 업무강도가 높아지기 시작한다.


"뭐 처벌 못한다고? 그런 거 처벌 못하면 뭘 하겠다는 거야? 명백한 병원 잘못인데 왜 처벌을 못해?!!"라는 말로 시작되며 병원과의 유착관계를 의심하는 건 다반사, 당신의 세금과 나의 월급을 연결 지으며 그러면 안 된다는 말과 함께 클라이맥스로 치달으면 결국!#!%$#!%@$#@%$#!#@!%#$!%#@$


"선생님~ 욕은 하지 마시고요. 선생님의 상황을 이해는 하겠는데요. 의료법에 처벌 기준이 없어서 어쩔 수가 없습니다. 법에 기준이 없는걸 제 맘대로 할 순 없잖아요."


당시만 해도 조직원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없었기에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욕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다.


지금이야 시대가 변했고 조직에도 변화가 찾아와 전화기에 녹음 기능도 부여되어 몇 차례 고지 후 끊어버릴 수 있지만 그땐 그러지 못했다. 조직생활 6~7 연차였음에도 소심했던 난 민원 전화가 늘 어려웠고 늘 쩔쩔맸다.


환자나 보호자의 민원은 의료와 관련되어서 인지 위생업소랑은 또 차원이 달랐다. 의사들은 어찌나 권위적이고 생각이 확고한지 자기 병원에 문제를 제기한 민원인과 전혀 타협하려 하지 않았다.(좋으신 의사분들도 많았다. 오해 마시길)


죽어나는 건 그 사이에 낀 우리, 아무 잘못도 없는 조직원.




거의 매일 이런 전화와 사투를 벌인 지 1년이 지나가고, 늘 그렇듯 민원을 접수하고 처리하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접수되던 민원 중 하나로 시작된 건이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민원인은 20대 초반의 여성으로 병원 측 얘기를 들어 본 결과, 소위 교통사고 나이롱환자로 추정되었다. 민원 접수한 내용을 확인했지만 의료법 위반 사실은 발견치 못했고 그녀의 아버지까지 통화하고 병원에 거듭 확인하였지만 그들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 발단이 되었다.


그녀는 날 '직무유기'로 경찰서에 고발하였다.


내가 민원 사실을 확인 안 한 것도 아니고 병원에 두 차례나 방문하여 확인한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난 직무유기로 경찰서 조사를 받게 된 것이다. 그것도 그 부녀지간과 삼자대면하에...


내가 혐의점이 없자 그녀는 날 조사했던 형사를 '직무유기'로 또 고발하였고 동시에 해당 병원 사무장을 본인에게 거친 언행을 했다는 이유로 명예훼손 고발하였다.


20대 초반의 여자가 세명을 고발했다. 그리고 경찰서 홈페이지 게시판에 우리 셋의 부당함을 알리는 글로 도배를 했고 경찰서는 발칵 뒤집히며 난 보건소로 찾아온 경찰서 정보과(?) 직원들에게 또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며칠 뒤, 누구나 볼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 그녀의 글이 하나 올라왔는데, 형사님과 나의 실명을 공개하며 우리의 잘못을 주장하는 글이었다.


"주무관님, 지금입니다. 명예훼손과 무고죄로 맞고소 갑니다."


거침이 없던 그녀는 경찰과 법의 힘을 간과했고, 그 결과는 구치소 수감으로 이어졌다.


겁 없이 질주하던 그녀의 가족들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을 것이다. 셋 중 제일 만만하다고 생각했는지 그녀의 모친은 매일 같이 사무실로 날 찾아오기 시작했고, 집으로는 구치소에 수감된 그녀의 반성문이 우편으로 날아들었다.


찾아오는 것이 불편하고, 그녀가 우리 집주소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불안했다.


"형사님~ 저 힘들어요. 그냥 합의해 주면 안 되나요?"

"힘드신 거 압니다. 근데 지금은 아니에요. 조금만 더 버텨주세요."


세 명이 맞고소를 했기에 합의를 하더라도 세 명이 함께 해야 했다. 난 그때 둘째 임신 5개월이었고 이 사건에 더해 '보이스 피싱'까지 당했던 시기로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업무로 인해 고발을 당하고 경찰서 조사를 받으며 사무실로 찾아오는 그녀의 모친을 상대해야 했던 나의 노고를 알아주거나 날 도와줄 수 있는 조직의 힘이나 배려는 없었다. 그저 안타까움의 눈빛만 건네주었고, 이건 극히 개인적인 문제일 뿐이었다.


나 또한 조직원으로서 그런 사실을 이상하게 느끼지도 않았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런 것에서 조차 서운함을 느끼지 못할 만큼 조직과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었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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