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가 되어 날아오를래.
3년 전 팀장이 되고 난 이후였다.
리더십이 부족한 내향인, 나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았다.
한 단계 높아진 시선에서 조직 내부를 좀 더 깊게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사십여 년 평생 해 본 적 없는 인생 고민에 빠진 지 3년이 흘렀다.
달라진 건 없다.
여전히 불편한 마음을 어쩌지 못하며 일하고 있고, 지시받고 회의하고 보고하는 일터도 그대로다.
울며 겨자 먹기 인생은 조금도 달라진 것 없이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변한 것이 있다.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오랜 기간 방치되어 있던 자아를 찾아 그 마음을 위로하고 돌보게 되었다.
내가 뭘 좋아하고 원하는지 찾아 나섰고, 그 탐색 활동은 내게 꿈과 희망이 담긴 미래를 선물로 주었다.
조직은 일개 조직원이 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 이어져 내려온 관료제 안에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오직 나 자신뿐.
난 이전과는 다르게 살고 싶어졌다.
시키는 일을 하며 지금의 위치에 안주하기보다, 다소 안정적이지는 않더라도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일은 20년이 넘도록 해오던 일이 아니었다. 없던 사명이 갑자기 생길 리도 만무하다.
우물 밖으로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어 본다.
새로운 세계가 존재한다.
그 세계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어떤 이는 눈앞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며 그들의 속사정을 지레 짐작하고 정신 차리라는 말과 함께 혀를 차기도 하지만 난 저들 이면의 모습이나 번뇌에 휩싸인 채 살아가는 반대편 부류는 보지 않기로 했다.
본인이 직접 해보지도 않고 걱정과 불안만 부추기는 그들의 말은 한 귀로 흘려버리기로 했다.
그 말을 듣는다는 건 나를 지금의 자리에 완전히 주저앉힐 핑계밖에 되지 않을 것을 알기에...
'내가 저런 삶을 누릴 수 있을까?' 보다 '나도 저런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끝까지 버텨 60세가 넘어 조직밖을 나오더라도 무엇이 되었든 '일'을 계속해야 한다. 물론 여가를 즐길 수도 있겠으나, 축적해 놓은 자산이 없다면 경제활동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나에게 그 어떤 의미 없이 조직 안에서 10여 년을 더 버텨야 한다는 사실은 너무 가혹하게 느껴진다. 여생 걱정이 없을 정도로 축적해 놓은 자산도 없으니 어쨌거나 '일'은 해야 한다.
'어차피 계속 일해야 하는 거, 더 나이 들기 전에 조직밖으로 나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어떨까?'
생각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지는 퇴직이나 그 속엔 두려움과 불안도 공존하기에 그 준비는 보다 철저해야 한다.
사십 대 중후반의 나이, 학령기 아이들 셋, 연로하신 부모님까지 퇴직 이후의 성공여부는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구상하고 있는 것들을 어떻게 현실적으로 구체화시켜야 하는지는 모른다. 한마디로 막연하다는 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명예로운 퇴직을 준비하기로 했다. 보험과도 같은 조직 안에 있는 동안 조직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철저히 준비하고 완성시켜 놓겠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가치가 있으면 어디에서든 일할 수 있고,
가치가 없으면 어디에서도 일할 수 없습니다.
당신을 지켜주는 것은 없어요.
가족은 물론 그 누구도 나를 못 지킵니다.
내가 나를 지켜야 해요.
부아 c_'회사 없는 세계에서 살아남기' 중
퇴직을 처음 머릿속에 떠올렸을 땐 '현실 회피 수단'으로 삼은게 아닐까 하는 마음에 괴로움이 앞섰다.
'네가 팀장의 위치에 올랐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어떻게든 제 역할을 해낼 노력을 해야지 도망칠 궁리를 해?'
'잘 생각해. 여기서도 못 견디면 밖에서도 못 견디는 거야! 아무 경험도 없는 사람이 뭘 어쩌겠다는 거야?'
내 안에서 울리는 외침의 메아리에 다시금 마음잡길 여러 번, 하지만 시간이 흘러 삼 년이 지나도 내 생각엔 변함이 없었고 오히려 더 강하게 바깥세상에 끌리고 있었다.
내가 좀 더 노력해서 리더다운 리더가 된다면 지금의 조직생활에 만족할 수 있을까?
아니, 만족하지 못할 것 같다. 조직 선배님들을 보면서 난 확실히 저렇게 살고 싶지 않아 졌거든...
60에 가까운 나이, 점점 더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는 조직의 선배들은 대단한 사람들이다. 물론 그들도 30여 년을 근무하는 동안 마음에 부침도 있었을 것이고 그만두고 싶을 상황도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은 모두 견뎌내고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이 사실만으로도 그들은 대단한 사람들임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난 그렇게 대단하게 살고 싶지 않다. 짧은 팀장 생활을 하는 동안 보고 듣고 느끼고 했던 것들에 대해 '조직이 원래 그런 거지', '다른데도 마찬가지야', '다 거기서 거기야'라는 말로는 견딜 수가 없을 것 같다.
조직은 감사한 존재다.
조직생활이 아니었으면 평생 내 안에 숨겨진 욕망을 깨닫지도 못한 채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조직을 등에 업고 일을 할 때보다,
조직의 배경 없이 오롯이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쓸 때 더 재미있고 보람차며 충만한 감사를 느낀다.
그러니 일단 지금 부족한 나의 능력을 개선하자. 그리고 확장시켜 보자.
우물 같은 조직 안 말고, 정글 같은 조직밖에서...
지금까지 잘해왔다. 앞으로도 잘할 것이다. 조직 안에서 처럼 밖에서도 난 잘 될 수밖에 없다.
제22화 에필로그를 끝으로 <조직생활 20년 만에 깨달은 것> 연재를 마칩니다.
평범한 조직원의 삶에 관심 가져주시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인적인 성향 상 '나'를 공개적으로 노출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이 매우 컸지만, 그동안의 공직생활을 정리해 보고 싶기도 했고, 보건소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극히 일부지만 알리고 싶기도 한 마음에 연재를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한 20화 정도 예상했는데 쓰다 보니 22화로 좀 더 길어지며 오늘 마무리에 이르게 되었네요.
'매주 연재를 어떻게 해?' 하며 걱정했던 첫 브런치 북을 거의 5개월 동안 한 주도 빠짐없이 연재를 할 수 있었던 건 독자님들의 라이킷 응원 덕분이었습니다. (내향인도 적당한 관심이 고프긴 한가 봅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