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도 저런 일도 떄론 시간이 약이다.
조부모나 친척 어르신들이 돌아가셨어도 자주 왕래하지 않던 사이였기에 가까이에서 뵌 적이 없었고 아직 그리 많은 나이는 아니라 주변에 누군가가 생을 달리 한 경험을 접한 적이 없기에 나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그저 막연한 것이었다.
지침에 따르면 현장응급의료소는 환자를 분류하고 이송하며 근처에 임시영안소를 설치하는 것까지가 임무다. 이후 사망자로 분류된 이들을 장례식장으로 보내는 일은 별도의 부서가 있으나 모두가 처음 경험하는 재난상황에 네 일 내 일 따질 수는 없는 노릇, 다 함께 힘을 모아 상황 정리를 최우선으로 해야 했다.
전소된 건물을 뒤로하고 소방대원들이 희생자를 수습해서 나오고 있었다. 소사체로는 신원 확인이 어렵기 때문에 나오는 순서대로 과학수사대에서 유전자를 채취한다. 이후 지자체에서는 미리 확보된 장례식장으로 순서가 바뀌지 않도록 체크하며 분산시켜 보낸다.
물론 소방대원들이 현장에서 시신이 노출되지 않도록 잘 수습해서 나오기에 직접적으로 볼 수는 없지만 코앞에서 수습한 희생자를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당시엔 나와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기에 그저 안타깝다는 감정이 전부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안타까움은 슬픔의 감정을 더해 커져갔다.
앞으로 닥칠 일은 모른 채 각자의 위치에서 일하고 있던 사람들,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희생자가 되었다. 그들은 평소처럼 출근했지만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그 가족들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 사실을 전해 들어야 했다.
나는 단지 그들의 수습 과정에 있었을 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CCTV를 보고 난 뒤, 점점 그들에게 깊게 감정이입이 되고 말았다. 이런 걸 '트라우마'라고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사무실에서 갑자기 울음이 터진 나로 인해 직원들도 적잖이 놀랐을 것이다. 소장님께서 이 같은 상황을 보시더니 현장에서 함께 근무했던 나와 동료를 관내 정신건강의학과 병원 진료를 볼 수 있게 해 주셨다. 병원에 가는 동안에도 진료실에 들어가서도 그들의 모습이 상상이 되며 자꾸 울음이 터져 나왔다.
"현장에서 장례식장으로 보내드린 분들 중에 분명히 CCTV속에 있던 사람들도 있었을 거예요. 살아있던 사람들이었는데, 분명히 화면 속에서 살아있었는데... 소사체가 되어 나왔어요. 그들이 너무 안타까워요. 수시로 그들이 떠올라요. 화면 속 당황하던 모습과 현장에서 수습된 희생자가 자꾸 겹쳐져요. 마음이 너무 아파요."
"현장에 있었으니 충분히 그런 마음 들 수 있어요. 하지만 팀장님이 잘못한 건 아니니 너무 마음 아파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꾸 떠올라서 괴롭기도 하겠지만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도록 두는 것도 방법입니다. 일단 잠을 제대로 못 주무시니까 약 드시면서 경과를 지켜보죠."
진료를 본 뒤 그 길로 병가에 들어가게 되었고 집에서 약을 먹고 휴식을 취하며 증상이 호전되길 기다렸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정신과 약은 사람을 종일 무기력하게 했고 잠이 쏟아지게 했다.
"선생님, 약을 먹어서 그런 건지 잘 모르겠는데 몸이 축 늘어져서 뭘 할 수가 없어요. 원래 이런 건가요?"
"그동안 자꾸 상황이 떠올라서 잠도 못 자고 그랬잖아요.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 상황을 떠올리지 않고 쉬게 하기 위해 쓰는 약이에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게 오히려 힘들다면 양을 좀 줄여가도록 하죠."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지 몰라 불안했던 상황은 2주가 지나자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기 갔기에 출근을 준비하려 했으나 소장님께서 감사하게도 일주일 더 쉬라고 배려를 해주셨다.
나 없는 3주간 팀원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 눈에 훤했기에 미안한 마음이 컸다. 병가를 마치고 출근하니 역시나 사무실은 혼돈의 연속이었으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안정화되어 가고 있어 다행이었다.
이제 우리 팀만의 일이 아니었다. 환자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직원을 파견하여 24시간 교대 근무하며 환자와 보호자가 불편한 사항이 없는지 살펴야 했고 부상자 치료 경과를 수시로 파악해야 했으며 그 외에도 유족에 대한 의료지원과 마음건강까지 보건소의 많은 직원이 투입되어야 했다.
재난 사고 수습은 비단 몇몇의 부서뿐만이 아닌 조직 전체의 대응으로 이어졌으며 수많은 조직원들이 투입되고 각자의 분야에서 대응에 최선을 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종결되기까지는 이후로도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이 일을 겪고 난 후 우리 팀은 더 기피 대상이 된 것 같았고 팀원들도 언제 또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불안함을 안고 근무를 해야 했다.
"선생님 저 이제 가슴 두근거리는 것도 괜찮고 잠도 잘 자는 것 같은데 약은 언제까지 먹어야 하나요?"
"지금 약 때문에 괜찮다고 느껴지시는 거예요. 갑자기 약 끊으면 증상이 다시 시작될 수 있으니 조금씩 줄여나가야 합니다. 약 챙겨 먹기 불편하시더라도 임의로 끊으시면 안 됩니다. 대신 2주에 한번 오시죠."
그로부터 3개월 뒤 약을 끊고도 괜찮아졌고, 시간이 약이 돼 듯 서서히 평소의 분위기를 되찾아갔다. 평소와 다름없이 새롭게 밀려드는 일상 업무도 처리하고 또 다른 화재 사고 현장에도 출동하며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어? ○팀장 발령 났네? 오~ 축하해."
1년 6개월 만이었다. 이번에 근무하게 될 곳은 건강증진 사업부서.
'아.. 또... 이런!!! 그래도 여기보단 낫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