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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공 May 03. 2022

이게 백패킹이냐 물으신다면

나의 0 번째 백패킹 - 하나개 해수욕장

우리는 한 시간째 바닷길을 걷고 있다. 버스를 타고 해변까지 들어갈 수 있다는 우리 계획은 틀어졌다. 해수욕장이 운영하지 않는 시기인데도 인천 하나개 해수욕장으로 들어가는 차들은 끝이 없었다. 외길이라 더 붐비는 것 같았다. 하나개 해수욕장으로 가는 도로에 들어선 차들은 이미 돌이킬 수 없어 직진하는 수밖에 없었다. 유턴도 할 수 없다. 끝까지 가서 돌아 나와야 하는 길이었다. 때문에 버스는 정해진 정류장까지 들어갈 수가 없었다. 기사님이 여기서 내려야 한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인도도 없는 도로에 내려 걷기 시작했다. 재작년 10월의 일이다.

하나개 해수욕장에서 해안을 따라 걸어 들어가면 인기 있는 자연 암벽이 있다. 우리는 클라이밍을 하러 그곳에 가던 참이었다. 무거운 등반 짐을 이고 한참을 걸었다. 드디어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고 미리 알아둔 길로 방향을 틀어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주 오던 아주머니께서 말씀하신다.


- 물 들어오니 더 가면 안돼. 물 들어온다, 물.


밀물 때였다. 분명 밀물, 썰물 시간을 확인하고 오긴 했다. 하지만 확인하면 뭐하나 그 시간에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언제쯤부터 들어갈 수 없는 것이고 어디까지 물이 들어오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는데 말이다. 발에 찰박찰박 바닷물이 밟혔다. 그래도 일단 더 걸었다. 이번엔 마주 오는 경찰 아저씨가 말을 거신다.


- 곧 물 들어와요. 어디 가시는 거죠?


마침 물어보는 경찰 아저씨 어깨너머로 멀리 클라이밍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직 등반할 수 있는 거였다. 등반지까지는 물이 차지 않는 게 아닐까 기대가 되었다.


- 저쪽에 클라이밍 하러 가요.

- 이제 밀물이라 조심하셔요.

- 저분들은 계속 계신대요?

- 뒤로 돌아 나오는 길을 아신다고 해서 그냥 나왔어요.


그렇구나. 역시 선배님들-클라이밍을 먼저 하신 어른들을 보통 선배님이라고 부른다-은 다 알고 계신다. 밀물이 들어와도 돌아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안 이상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일단 가서 여쭤보자. 그렇게 암벽에 도착했다. 급하게 장비를 풀고 우리도 등반을 시작했다. 첫번째 루트를 등반하는데 웬걸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결국 철수했다. 퍼붓는 비는 아니었지만 등반할 수 있는 수준의 비도 아니었다. 짐을 다 싸고 선배님들 뒤를 따랐다. 바위를 맨손으로 기어 올라가면 호룡곡산 등산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무사히 등산로까지 올라온 후 안내해 주신 분들께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그렇게 천천히 출발하려는 찰나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막걸리 한잔하고 가지?


돌아보니 선배님들은 등산로 옆 데크에서 간단한 안줏거리와 함께 막걸리를 따고 계셨다. 어차피 비가 와 아무도 올라오지 않으니 편하게 잠시 쉬다 가실 요량인 것 같았다. 우리도 흔쾌히 그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빈손으로 와 얻어먹는 게 죄송했지만 끄물끄물한 날씨에 막걸리 맛이 좋았다. 선배님들의 등반 경험도 전해 듣고 여행이야기도 끝없이 이어졌다. 내일 새벽엔 해루질을 하러 나오실 거라 했다. 등반을 잘하는 것보다 재밌게 노는 것이 중요하다 하셨다. 그렇게 막걸리 몇 병을 금세 비우고 우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같이 단체사진도 하나 찍고 연락처도 교환했다. 잠깐이었지만 즐거운 대화였다.


등산길을 따라 내려와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등반은 못했지만 이것도 재밌는 경험이라 생각되었다. 자연을 벗 삼으려면 감수해야 하는 부분 아닐까. 정류장에는 일행으로 보이는 두 분이 버스를 기다리고 계셨다. 우리도 그 옆에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벤치에 앉았다. 그런데 뭔가 불길했다. 버스가 여기까지 들어오질 못했었는데, 과연 나가는 버스가 오긴 하는 걸까? 그제야 옆에 계신 분께 버스를 얼마나 기다리셨냐고 물어봤다. 2시간째 기다리고 있다고 하셨다. 우리는 잠시 고민하다 배낭을 둘러멨다. 걸어가기로 한 것이다. 정류장에 계시던 두 분은 버스정류장을 나서는 우리를 향해 파이팅을 외쳐주셨다.

돌아가는 길은 더 멀었다. 하나개로 들어올 때는 버스가 절반 이상 태워줬으니 당연하다. 인도가 없어 도롯가를 걸었다. 나가는 차들도 끝없이 줄지어 있었다. 우리가 걷는 속도나 차가 진행하는 속도나 매한가지였다. 차가 너무 막혀 거의 멈춰있다시피 했다. 그 옆을 우리는 뚜벅뚜벅 걸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걷는 것이 무엇이길래 이리도 기분이 좋을까. 멀리 바닷소리가 들리고 길녘에는 잡풀이 무심히 자라 있다. 우리가 걷는 속도에 맞춰 천천히 표정을 달리하는 풍경에 지루할 새가 없었다. 간간이 시골개들이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등반을 하지 못했다는 것은 애저녁에 잊어버렸다. 이렇게 재미나게 걷고 있는데 무어가 더 필요하리. 이날 깨닫게 된 우리의 두 가지 취향으로 말미암아 백패킹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첫째는 밖에서 머무는 게 좋다는 것, 둘째는 무한정 걷고 싶다는 것이다.


밖에 있는 게 너무 좋다. 지붕 없는 곳이 좋다. 뙤약볕 내리쬐는 물가에 있다 보면 실내로 들어가기가 싫어진다. 등반 여행을 다니며 여러 날 같은 심리를 느꼈다. 안으로 들어가기 싫었다. 등반을 마치고 식당에 자리를 잡을 때도 가능하면 야외 테이블로, 그도 안되면 밖이 보이는 자리를 잡곤 했다. 그렇게 우리는 끊임없이 밖으로 나가길 원했다. 바깥의 바람, 온도, 소리, 냄새 모든 것이 좋았다. 콘크리트 안에 박혀 있기 싫었다.


밖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하고 질리지 않는 놀이는 걷는 것이다. 걸으면서 보는 풍경은 끊임없이 변화무쌍하다. 지루하려야 지루할 수가 없다. 눈에 밟히는 것들을 모두 들여다보고 이야기 나누고 기록하려면 걷는 속도가 가장 좋다. 걷는 속도에 이미 익숙한 뚜벅이 여행자인 우리는 차창으로 지나는 재빠른 풍경에 혼이 쏙 빠진다. 보고 싶은 것 원 없이 보고, 마음에 드는 곳에 머물며 놀기 위해 우리는 걸어야 한다.


이 두 가지 이유로 우리는 백패킹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우리의 백패킹이 어떻게 시작했는지를 회상하다 이 날의 이야기를 풀어놓게 된 것이다. 등반 여행을 가서 한참 걷기만 한 것이 어찌 백패킹이냐 하겠지만, 지금에 와 생각해 보면 이날 처음으로 백패킹의 공기를 조금이나마 맛보았다. 나는 이날의 기억을 우리의 0 번째 백패킹으로 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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