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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공 Jun 07. 2022

서울에서 가덕도까지, 12시간

부산 가덕도 백패킹

동서울터미널에서 해운대로 향한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부산 가덕도. 결론부터 말하면 버스를 여러 대 갈아타고 걷고 또 걸어서 가덕도에 도착하기까지 꼬박 12시간이 걸렸다. 아침 7시에 집을 나서 저녁 7시 해 질 녘에 박지에 도착한 것이다.

해운대에 도착해서 우선 식사를 했다. 터미널 근처 보리밥집으로 갔다. 지방에는 채식 식당이 많지 않기도 하지만, 있다 하더라도 채식 어플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채식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이런 부분 때문에 여행에서 끼니때마다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리밥집이라는 묘수를 알게 된 것이다. 비슷한 예로 메밀 집과 두부집도 채식 메뉴가 가능하다. 비건 식사는 육수나 양념 때문에 어려울 수 있지만 채식으로 한 끼가 가능한 게 어디인가.


1011번 버스를 타고 다리를 7개나 건넜다. 광안대교, 부산항대교, 남항대교, 을숙도대교, 신호대교, 가덕도대교, 눌차대교. 콘크리트에 막혀있던 시야가 다리를 건널 때마다 시원하게 트였다. 창 밖에 펼쳐진 풍경은 다리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멋진 노선을 매일같이 달린다니, 1011번 기사 아저씨가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줄지은 다리를 건너 버스정류장에 내렸다.

버스를 한 번 더 갈아타야 했는데, 40분을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기다려 버스를 타도 5분 가서 내린 후 한 시간을 넘게 더 걸어야 한다. 그는 도보시간을 확인했다. 우리가 내린 경제자유구역청 정류장에서 가덕도 박지까지 2시간 40분이 나왔다. 우리는 그냥 걷기로 했다. 이 좋은 날씨에 40분을 버스정류장에서 가만히 보내는 것보다 걸으면서 거리를 보는 것이 더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걷는 길에는 갈맷길이라는 표지판이 있었지만 사람은 거의 없었다. 길가에는 따뜻해진 기운에 갓 피어난 꽃들이 줄지어 있고, 땅에는 부지런한 개미들이 집을 짓고 있었다. 구석구석 우거진 수풀에서는 다양한 새소리가 들렸다. 운 좋게 컨테이너를 선적하는 물류터미널 근처에 편의점이 있었다. 거기서 아침에 먹을 과일과 기운을 충전해줄 시원한 음료를 한 병씩 샀다.


드디어 가덕도 마을로 들어섰다. 버스를 탔다면 이쯤에서 내렸을 것이다. 이제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박지에 도착하면 해가 질 것 같았다. 시계를 보니 7시가 다 되어 갔다. 아침 7시에 집에서 출발했으니 결국 박지에 도착하기까지 꼬박 12시간이 걸린 것이다. 12시간이 걸린다는 걸 미리 알았어도 우리는 이 여행을 선택했을까? 아마도 밀어붙였을 것이다. 가기로 정한 이상 우리는 끝을 보는 여행을 하기 때문이다. 가는 길에 해가 져서 예상치 못한 데서 자게 된대도, 이 여행은 이런 결말이었구나 생각하며 더 이상 갈 수 없을 때까지 왔다는 것에, 끝을 보았다는 것에 기뻐할 것이다. 여행에 예기치 못한 결말을 보는 것 또한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그런 마음으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이 길이 맞는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아도 우리는 계속 걸었다. 걸음을 재촉하지도 않았다. 길녘에 있는 것들에 하나하나 눈길을 주며 추억을 만드는 걸음을 걸었다.


박지까지는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이 걸어야 했다. 해안가를 지나 산을 올랐다. 걸음걸음 조금씩 지쳐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산과 바다가 이어지는 풍경이 재미났다. 다만 숲으로 걸을 때마다 이 길이 맞는 것인지 조금씩 불안해지곤 했다. 그래도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12시간 만에 드디어 멀리 박지가 보였는데 이미 텐트로 가득했다. 실망했지만 어쩌겠나. 자연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이런 것인걸. 아직 박지 바로 뒤에 있는 데크에는 자리가 있어 그곳에 텐트를 치기로 했다. 텐트를 치는 동안 해가 완전히 넘어갔다. 우리는 헤드랜턴을 꺼내 쓰고 집을 지었다.

출출해져서 과자를 한 봉지씩 뜯었다. 해가 지니 벌써 기온이 쌀쌀해 텐트 안으로 자리를 옮겨 잠시 휴식했다. 걸어온 시간에 대한 수다도 떨고 달달한 과자로 체력도 채웠다. 해가 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특히 헤드랜턴을 쓰고 돌아다니기를 좋아한다. 밤에 보는 풍경은 낮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헤드랜턴 불빛을 따라 좁아진 시야로 보는 자연은 마치 현미경으로 확대한 듯 낯선 모습이 되어 있다. 우리는 조명으로 가득한 밝은 밤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것이 아닐까? 밤하늘에 이렇게 많은 별이 우릴 비추고 있는데도 말이다.

숲을 등지고 바다를 마주해 있어서 그런지 공기가 쾌청하여 잠이 오지 않았다. 공기가 상쾌한 것도 문제가 될 수 있구나. 눈을 뜨고 침낭 속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온갖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파도가 끊임없이 바위에 부딪쳐 부서지는 소리, 도시에서는 들을 수 없던 특이한 풀벌레 소리. 멀리 고라니는 왜 갑자기 한 번씩 우는 것일까. 우리 들으라고 하는 것일까? 바깥 풍경을 끝없이 머릿속에 그리게 되어 텐트 밖으로 한 번 나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너무 곤히 자고 있으니 가만히 상상할 밖에. 그렇게 아침이 왔다.


일출을 난생처음 봤다면 믿겠는가. 일출을 보려고 시도한 적은 있었으나 매번 구름 낀 날씨에 동그란 해의 모습을 보지 못했더랬다. 나는 이 날 처음으로 주황 빛깔 구슬처럼 동그랗게 떠오르는 태양의 얼굴을 보았다. 떠오르는 태양 빛에 노랗게 물들며 세상이 잠에서 깨어났다. 밤 중에 도착하여 제대로 보지 못했던 텐트 주변의 풍광을 이제야 마주했다. 우리 이런 곳에서 잠에 들었구나. 바닷물과 만나는 바위 해안의 모습에 시선을 빼앗겼다.


등산객이 오기 전에 일찌감치 텐트를 철수하고 박지를 떠났다. 우리가 지나온 길은 아침의 개운함으로 이제 막 깨어난 모습이었다. 오직 산새 소리만이 들렸다. 돌아오는 길에 나무옹이에서 다람쥐가 숨겨놓은 도토리를 발견했다. 벤치에 앉아 나뭇가지에 숨은 새들도 찾아보았다. 멀리 해변의 불규칙한 반짝임을 넋을 놓고 바라보기도 했다.조용한 해변을 따라 걷는 아침이 좋았다.


해안길을 따라 걷다 보니 길녘에 카페가 하나 있었다. 아침마다 커피를 마시는 습관이 있는 우리에겐 작은 카페가 오아시스처럼 느껴졌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느긋이 앉아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씩 마시며 조금 남아있던 잠도 마저 깨우고 나왔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바다로 흐르는 잔잔한 물이 있었다. 그곳에 새 두 마리가 수면에 고개를 박고 휘적휘적 대고 있었다. 넙적한 부리가 특징인 저어새였다. 탐조할 때 새로운 종의 새를 발견하는 것을 종추(종 추가)라고 한다. 전부터 보고싶었던 저어새를 종추하는 기쁜 순간이었다. 쌍안경으로 한참동안 새를 바라보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해서도 1시간을 기다려 버스를 탔다. 점심은 우리가 부산에서 가장 좋아하는 연잎밥 집에서 먹기로 했다. 밀고기와 나물반찬이 맛있는곳. 다시 와도 여전히 맛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갑자기 붐비는 인파 속을 걷게 되니 우리가 도시로 돌아왔다는 것이 실감났다. 우리는 도시 풍경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부산 서면을 걸었다. 그렇게 부산, 경남 여행의 첫번째 목적지였던 가덕도에서의 백패킹을 마쳤다.



300mm - https://youtu.be/KiNklNAF18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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