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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브라운 Sep 22. 2023

가을이 온다

오랜만에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오늘은 때 이른 찬 공기에 새벽부터 눈이 떠졌다. 여느 날처럼 베란다 창문과 거실 문을 열어놓고 잤는데 밤이 깊어지면서 기온이 떨어져 찬 공기가 집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하루 만에 기온이 이렇게 떨어진다는 게 참 신기했는데 낮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기온이 훌쩍 올라갔다. 이렇게 가을이 오고 있나 보다.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이렇게 글 쓰는 시간을 가져본다.

가장 최근에 글을 썼던 게 6월 말이었으니 그새 3달이나 지나버렸다.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썼던 글인데 지난 세 달은 그럴 여유가 없다. 뭐 대단한 일 한다고 잠깐 글 쓸 시간도 내지 못했을까. 그만큼 내겐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지난 3개월이었다.


그간 내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직장이다. 매일 왕복 3시간 넘게 140km를 오가던 회사를 나와 이제 집 현관에서 사무실 자리까지 30분이면 갈 수 있는 회사로 옮겼다. 이게 7월 말쯤이었는데 나이를 먹고 이직을 하니 새로운 회사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문화, 새로운 시스템. 곧 이직한 지 두 달이 되는데 아직도 신생아처럼 매일매일 새로운 것들을 배워가고 있다. 지금의 내 모습을 보니 한 10년 전쯤 다니던 회사에서 만났던 과장님이 생각났다.


박 과장님


당시 난 대리였고 내 위로 경력직으로 입사하신 과장님이 한 분 오셨다. 아마도 과장님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쯤이지 않았을까 싶다. 다니던 회사는 ERP시스템이 무척이나 잘 갖춰져 있었는데 이 ERP라는 게 참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고 또 안 써본 사람은 적응하는데 시간이 꽤나 필요한 시스템이다. 새로 오신 과장님은 ERP시스템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으셨고 그래서인지 시도 때도 없이 나를 불러서 ERP 사용법에 대해 물어보곤 하셨다.


처음엔 나도 하나하나 친절하게 알려드렸다. 나 역시 신입으로 입사해 이 프로그램에 적응하기까지 꽤나 시간이 걸렸으니까. 하지만 웬걸, 이 양반은 몇 번을 알려드려도 항상 헷갈려하셨다. 어디에 좀 적기라도 하시지 알려드릴 땐 이제 혼자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하시다가 또 며칠 있으면 불러서 물어보시고 이것저것 실수도 많이 하셔서 나 혼자 뒷수습을 하기에 바빴다.


'아니 이게 이렇게 어려운 거야? 왜 맨날 헷갈려하는 거야 도대체..'


혼자 속으로 얼마나 과장님을 욕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너무 어리석었다. 지금의 내가 딱 그 과장님 모습이다. 처음 사용해 보는 이 회사의 물류 시스템은 사용할 때마다 정말 헷갈린다. 이게 이거 같고, 저게 저거 같고. 같은 실수를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고 왜 항상 똑같은 게 기억이 안나는 걸까. 과장님을 욕했던 내 모습이 너무나 부끄럽고 민망하다.


나이를 먹으며 기억력이 떨어지는 건지 이해력이 떨어지는 건지 조금 씁쓸한 마음을 뒤로 한 채 이리저리 부딪치며 새로운 곳에 적응해 가고 있 중이다.


그렇게 여름 무더위가 시작될 때쯤 이직을 해 정신없이 회사에 적응하다 보니 여름이 가는 줄도 몰랐다.

뭔가 아쉽다. 물론 더운 건 질색이지만 이번 여름 기억에 남을 만한 추억 하나 없다는 게.


아니다, 하나 있다.

이직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아내와 강원도 고성으로 여행을 갔는데 예쁘다고 해서 찾아간 카페에서 배우 이엘씨를 만난 것이었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보면서 이엘씨 팬이 되었는데 막상 바로 앞에서 보니 너무 떨렸었다. 하지만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있으랴. 아내를 통해 사진 한 장 부탁드렸더니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후후. 내가 너무 오징어 같다고 친히 얼굴을 가려준 아내가 조금 얄밉긴 했지만 그래도 올여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지 않을까 싶다.


가을이 온다


핑크뮬리, 단풍의 계절 가을이 온다.

확실히 요즘 하늘을 보면 여름과는 다른 뭔가 더 높고 청명한 가을 하늘이 보인다. 아침, 저녁으론 꽤나 선선해졌고 낮에도 숨 막힐 듯했던 더위는 이제 느껴지지 않는다. 역시나 시간은 흐르고 결국 또다시 가을을 데려왔다. 맞다. 시간은 반드시 지나간다. 그런데 가끔 잊고 사는 것 같다. 특히나 힘들고 막막할 때면 더더욱. 그럴 땐 유난히 더디게만 느껴지는 시간. 하지만 시간은 언제나 같은 속도로 흐른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


금요일 밤, 혼자 카페에서 따뜻한 페퍼민트 차를 마시며 오랜만에 글을 쓰는 이 시간도 더디게 지나갔으면 좋겠다. 사람들의 대화소리, 그 사이를 비집고 들려오는 클래식 음악 그리고 종종 들려오는 커피머신 소리. 그냥 모든 게 잘 어우러 늦여름의 금요일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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