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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 Nov 25. 2023

말린 꽃잎에 적힌 비밀

기발표작


엄마가 물을 갈아준 투명한 화병에

깨끗한 물이 찰랑대고

곧은 줄기들이

계곡물에 두 다리를 담근 것처럼

시원해 보여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 꽃들은

고개를 푹 숙이기도 하고

연주황색 장미꽃잎 테두리는 거뭇거뭇

불에 탄 종이처럼

바깥으로 말리는데

나는 거기에 중요한 글자가 적혀 있기라도 한 것처럼

계속 들여다보게 되는 거야


엄마가 할아버지 이부자리를 살펴봐 드리면서

매일 햇볕에 말린 새 요로 바꿔줄 때

할아버지가 꾹 다문 입꼬리를 움직이며

엷게 웃었던가 말았던가,

앙상한 팔이며 다리를

내가 주물러주었던가 말았던가,

하는 것들 말이야


나는 궁금해

꽃이 시들어갈 때쯤이면

엄마는 매일 화병 물을 갈면서

왜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 건지




 제 77호 《동시마중》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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