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의 녹턴 — 말하지 못한 마음이 머무는 자리

by 마음뚠뚠

밤이 되면
리듬이 조금 달라집니다.


낮에는 분명했던 생각이
어딘가 느슨해지고,
정확했던 판단이
조금 늦게 도착합니다.


그래서 저는
밤의 제 모습을
조금 더 믿게 됩니다.


프레데리크 쇼팽의
〈Nocturne〉을 들으면

차분하게 진정이 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여러 녹턴 중에 제일 유명한

Op.9 No.2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8YhDR2fOUg&list=OLAK5uy_mztrcZNG2yg5lIFAz2Xp-_H6_45NhKNEI

[ Maurizio Pollini의 녹턴 연주 ]


24년 봄에 82세로 우리 곁을 떠난

Maurizio Pollini의 연주입니다.


그의 연주는 항상 일관된 구조 속에서

자로 잰듯이 연주되어

정말 교과서적인 연주로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도 정말 담백한 연주를 듣고 싶을 때

지금은 세상에 없는 사람들이 떠 오를 때

정말 오롯이 느껴지는 차분함이 있습니다.


녹턴을 듣다 보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멜로디가 아닙니다.
리듬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루바토입니다.


루바토는
박자를 지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박자를 잠시 늘이고
잠시 늦추는 방식입니다.


같은 악보의 곡이

연주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겉으로 보면
흔들리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자기만의 질서가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질서는
흔들리지 않음에 있습니다.


일정한 속도,
일정한 태도,
일정한 감정.
그게 단단함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쇼팽의 녹턴을 들으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흔들림은
불안의 증거가 아니라
호흡의 증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멜로디가 잠시 늦어질 때,
왼손은
조용히 박자를 유지합니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그 화성이
음악을 무너지지 않게 붙들고 있습니다.


저는 이 구조가
이상하게 오래 남았습니다.


삶에서도
겉으로 보이는 멜로디는
제 감정이고 선택입니다.
기쁘기도 하고,
예민하기도 하고,
조금 늦게 도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아래에는
늘 보이지 않는 왼손이 있습니다.
습관,
루틴,
말없이 지켜주는 사람들,
그리고 제가 반복해 온 작은 태도들.


그 왼손이
무너지지 않는 한,
멜로디는
조금 흔들려도 괜찮다는 것을
녹턴은 조용히 말해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BydUC6GhNI&list=RDsBydUC6GhNI&start_radio=1

[ 임윤찬의 녹턴 연주 ]


실은 임윤찬의 녹턴을 들을 때
그 루바토가 더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그는 리듬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늘이고 늦춥니다.


마치
흔들리는 것을 숨기지 않는 사람처럼.


왼손보다 멜로디의 흐름에 집중하고

밀고 당기는 음이 훨씬 크게 느껴지고

템포를 극단적으로 늘려도 자연스럽게 들립니다.


그의 연주에는
녹턴의 “젊음”이 살아 있습니다.


크게 과장하지 않지만,
감정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음악이 완성된 결과라기보다
지금 막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그의 녹턴은
조금 덜 안정적이지만
조금 더 생생해서

차분함에서 즐거움 쪽으로

자연스럽게 이동되는 느낌을 받아

다른 연주자의 연주보다

요즘 좀 더 많이 찾는 것 같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TGEo3scnq8&list=RDtTGEo3scnq8&start_radio=1

[ 조성진의 녹턴 연주 ]


조성진의 연주에서는
왼손의 균형이 더 또렷하게 들립니다.

멜로디가 어디로 가든
아래에서
조용히 받쳐주는 힘이 있습니다.


왼손의 단단함이

Pollini보다 강하네 느껴져


마음이 많이 흔들릴 때
그의 연주를 찾습니다.


단정한 템포가

안정적인 숨을 돌려 줍니다.


다 정리되지 않지만

빠른 위로의의 효과가 있습니다.



쇼팽을 생각해 보면

그는 평생 건강하지 못했습니다.
약했고,
쉽게 지쳤고,
삶은 길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약함이
그의 음악을 얕게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흔들림이
더 깊은 여백을 만들었습니다.


녹턴의 루바토는
어쩌면
그의 호흡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짧고,
불안정하고,
그래서 더 섬세했던.


저는 그 사실이
이상하게 위로가 됩니다.


강해야만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약함을 숨기지 않아도
깊어질 수 있다는 것.


녹턴을 듣고 나면
듣자마자 제 마음이 바로 완전히 정리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흔들리는 상태 그대로
있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듭니다.


밤은
정확한 박자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조금 늦어도,
조금 빨라도,
결국은
자기 호흡으로 돌아오면 됩니다.


이 연재에서는
이렇게
음악의 구조 속에서
제 삶의 태도를
하나씩 꺼내 보려 합니다.


오늘은
흔들리는 리듬을
조금 더 믿어보기로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pyYxCPDId4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