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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조셉 Dec 02. 2020

오랜 육아 생활이 내게 남긴 것

육아맘이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야 할 때

인생을 두 번으로 나눌 수 있다면,

내가 처음으로 나란 존재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고 그리고 두 번째는 내가 엄마로 태어나게 된 것이다. 임신 10개월 동안 다양한 몸의 변화를 겪으며 차례차례 엄마가 될 준비를 하고 우여곡절 끝에 출산을 하고, 밤낮으로 육아에 매달리며 '나'라는 한 인간의 자아를 잠깐 접어두고 엄마로 온전히 태어나는 시간.


밥을 먹다 말고 우는 아기에게 가슴을 내어주고 다 식어버린 국에 밥을 훌훌 털어 말아먹고

백화점 코너에서 내 얼굴에 바를 화장품보다 아기 옷 세일 품목에 기웃거리고

한밤 중에 열이 올라 퍼렇게 우는 아이를 데리고 혼비백산 응급실을 뛰어가고

처음으로 한 이유식을 오물조물 잘 받아먹는 아기가 대견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장을 보러 다니고

그러는 동안 아기는 점점 자라난다.

아기는 다리 뻗어서 기기 시작하고

그리곤 앉아서 헤헤헤헤 웃기 시작하고  

힘겹게 벽을 잡고 일어서서 자기 보라면서 자신감에 소리 지르고

그러다가 한발 한발 걷기를 하고

"엄마, 엄마" 병아리처럼 말을 하고

그렇게 아이는 커가고 나는 엄마가 됐다.


누워있던 아기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때까지 1년이란 시간은 아기에게 가장 많은 변화가 있는 1년임과 동시에 나는 나를 잊어버린 1년이기도 했다. 꽃이 피는 봄에 아기를 낳아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가을 낙엽을 밟으며 유모차에 태워 함께 산책을 하고 겨울을 맞아 아기에게 씌워 줄 겨울 모자와 조그만 장갑을 샀다.


그리고

내년 봄, 따뜻한 내리쬐는 햇살 아래 알록달록 봄꽃이 피면 나는 다시 직장으로 복귀를  것이다.




첫째는 내가 14개월을 홀로 키웠다.

아침 아기가 먹을 이유식을 만들어 11시 반쯤 아기 먼저 먹이고 얼굴이며 두 손 가득 이유식을 뒤집어쓴 아기를 씻기고 기저귀와 새로운 옷으로 깔끔하게 갈아입히면 오전이 후딱 지나간다. 그리고 어질러진 식탁에 앉아 식은 밥 한 끼 뜨기 시작했을 때, 아들이 그 5분을 참지 못하고 안아달라며 엉금엉금 기어서 의자로 오는데 그걸 그저 물끄럼이 바라만 보고 놔두었다가 아기가 이마팍을 의자에 찍어 푹 파일 정도로 상처가 났다. 얼른 안아 올려 세상 떠나가라 우는 아기를 안고 '하느님 잘못했어요. 제발 살려만 주세요.' 하고 빌고 또 빌었다.

그것은 분명 엉엉 우는 아기를 살려달라는 뜻이기도 했지만 또 나를 위해서 나직하게 하느님께 읊조리는 소리기도 했다.


매일이, 그렇게 반복되는 하루가 때론 너무 고됐다.

남편에게는 월화수목금토일이 나에게는 그저 월월월월요일만 존재하는 거 같았다.


그러던 중에 이력서를 보고 헤드헌터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며칠 후 전화 면접 날짜가 잡혔다.

아기를 맡길 때가 없어 양해를 구하고 주저리주저리 읊은 면접은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 '아하. 망했다.' 하는 감이 머릿속에 탁 떠올랐다. 독일어와 프랑스어로 진행되는 면접이었는데 우는 아이 얼러가며 얼렁뚱땅으로 무슨 질문에 어떤 대답으로 끼워 맞췄는지 기억도 안 난다.


망연자실.

이제 정말 엄마라는 호칭으로만 불려야 되나 보다.

내 이름 석자 그리고 그 누구의 인생은, 그 누구의 커리어는, 그 누군가의 미래는 00 엄마라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인가 보다.


하아. 난 아직 하고 싶은 것이 이렇게 많은데.. 돈도 벌어야 되는데.

이대로 내 미래를, 내 모든 것을 희생한다는 미명 하에 아이를 키웠다간 나중에 아들이 내게 작은 실망이라도 안길라치면 아들을 휘어잡을 몹쓸 어미가 될 거 같았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 란 말을 족히 골백번을 하고도 남을 서슬 퍼런 엄마가 되어 내 못다 한 꿈을 아들에게 투영해서 자기 꿈을 찾아 훨훨 날아갈 아이를 못 가게 잡아 둘 엄마로 남을 게 뻔했다.

그럴 내가 무서웠다.

난 내 길을 찾는 게 결국은 나를 위해서든 우리 아이를 위해서든 맞는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엉망진창 전화 면접 이후 두 번의 다른 면접을 거쳐 다행히 다른 곳에 취직을 하게 됐고  결정에는 일말의 후회도 없다.


이제 둘째를 낳고 내년 복귀를 앞둔 시점에 첫째 아이를 키우며 했던 여러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오랜 육아로 젖병을 타고 아이를 달래는 스킬은 업그레이드됐겠지만, 문득 두렵다.

엑셀 파일 기능들이 다시 기억이나 날까.

무수한 비밀 번호와 보안 시스템을 거쳐 회사 이메일에 제대로 접속이나 할 수 있을까.

'어떤 프로젝트' 하면 딱 떠올리던 그 빠릿빠릿함이 다시 예전처럼 반짝하고 돌아올까.

내 자리였지만 그게 과연 제자리가 맞긴한건가.


막상 다시 돌아가면 멘붕으로 몇 달을 버티다가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다시 일상으로 복귀를 하겠지. 매주 불금을 기다리고 월급날에 활짝 웃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돌아갈 테지만 그런 삶이란 것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일까. 지금처럼 하루 온종일 정신없는 육아 사투나중에는 다시 그립지 않을까.


무수한 물음표에 마침표를 찍지 못했어도 어쨌든 하루가 간다.

모든 물음에 지금 당장 답을 내릴 필요는 없는 것이기도 하다.


설레지만 다시 두렵고 - 기쁘지만 다시 약간 슬프고,

무슨 감정이라 해야 할까.

그냥 지금 당장 당면한 일들만 해보자. 너무 멀리 보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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