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담 조셉 Oct 15. 2020

(부모가 되고 나서)비로소 느끼는 것들

일상으로의 회귀

카페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한잔 여유롭게 마시는 일.

고소한 쿠키를 굽는 일.

쇼핑하는 일.

새로 개봉한 영화를 보러 가는 일.

주말에 훌쩍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는 일.


모든 일상이 달라졌다.

위에 나열한 일들은 아기가 생김과 동시에 거의 불가능해지는 일이다.

첫째를 낳고 갑자기 생긴 이런 변화는 자유로운 삶을 살던 나로서는 쉬이 받아들이기 힘든 것들이었다.

아니, 어느 날 갑자기 하던 것을 다 멈추어 놓고 24시간 밤낮으로 해야 할 다른 일이 생긴 것이었다. 더구나 밥을 먹는 일, 잠을 자는 일과 같은 기본적인 것들 조차 여유롭게 시간을 가지고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아기를 낳기 전 시절,

유모차를 끌고 커피숍에 앉아있는 엄마들을 보면서

'집에서 애나 볼 일이지. 왜 커피숍으로 굳이 유모차를 끌고 오나' 했다.

아기가 없어서 가능한 질문이었다 손 치더라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내가 많이 모지리였구나 반성이 된다.


그랬던 내가 요즘 자주 커피숍에 유모차를 끌고 다닌다. 햇살이 내리쬐는 노천카페에 앉아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이면 마치 그 10분 동안은 잠깐 내가 엄마라는 걸 잊는다. 일종의 달콤한 일상으로의 회귀라고나 할까.


재작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었다.

어린 시절 프레디 머큐리를 좋아했던 나에게 이 영화 관람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다.

한밤 중에 영화를 보러 돌을 갓 지난 아들을 동행할 수도, 그렇다고 다 쌍쌍이 연인끼리 오는 영화관을 나 홀로 보러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참을 유튜브 짤만 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다가 남편이 시어머니께 부탁하여 하루 저녁 아들을 맡기고 영화관 데이트를 깜짝 선물로 해주었다. 그 감동의 쓰나미란..



둘째를 낳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빵을 굽는 거였다. 

만삭 때도 그랬듯 아기를 낳고도 아침에 갗 모닝빵을 구웠다. 따끈한 김이 올라오는 모닝빵에 버터 한 입이면 온 피로가 날아갈 듯하다.  늘 해오던 일이, 나에게 주는 소소한 일상이 아기를 낳았더라고 계속 이어졌으면 했다.

커피숍에 앉아 사람 구경을 하는 일은 수월한 둘째 덕분에 어느새 가능한 일이 되었다. 쇼핑은 내가 입을 원피스보다 아이들 옷에 가장 눈이 먼저 간다. 멋 부리기를 시작한 첫째는 불편해도 셔츠 입는 것과 벨트 매는 것을 좋아해서 첫째 옷이 가장 심도 있게 골라야 할 품목이 되었다. 


당분간 여행을 떠나는 일은 그래도 요원할 듯하다. 

훌쩍 목적 없이 떠나는 여행은 아기가 있는 집에서는 상상할 수가 없다. 기저귀, 여벌 옷, 젖병 등등. 어마어마한 아기 짐도 짐이지만 코로나 때문에 어린 둘째를 데리고 어딘가를 간다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잠시 접어두어야 한다. 

내년이나 후 내년에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두 아들과 캠핑카를 몰고 이태리 여행을 가야지. 탁 트인 바닷가에 앉아 햇빛을 즐기며 젤라또를 먹어야지. 맛있는 맛집을 찾아서 이태리 시골 곳곳을 누비며 아들들에게 피자의 고향이라고 설명해줘야겠다. 

그리고 한국에 할머니 할아버지도 보러 갈 것이다. 태권도 도장에 데려가서 헛둘헛둘 태권도를 배우게 해 줘야지. 광안리 앞에서 조깅도 같이 하고 회도 먹고 밀면도 먹고 - 생각만으로도 웃음이 난다. 

나의 버킷리스트는 어느덧 아이들과의 함께 하는 리스트가 반 이상이 되었다. 


커피 한잔 여유롭게 먹지 못해도, 갗 개봉한 영화를 보지 못해도 아쉽지만 지금은 괜찮다. 

시간이 다 지나갈 것이라는 것을 아니까. 

그리고 나중에 중2병 걸린 아들을 보면서 내 품에서 까르르 웃던 지금 아들의 모습을 그리워하겠지. 

엄마 엄마 졸졸 따라다니는 아들이 너무 빨리 클까봐 무섭다, 가끔은. 


이전 17화 오랜 육아 생활이 내게 남긴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