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 학교(L'ecole Maternelle : 프랑스는 3살부터 학교에 입학을 하는데 일종의 '유치원'으로 보면 된다)를 들어가자마자 엄청난 어휘력의 확장을 보여주며 오물조물 작은 입으로 문장을 구사하는 것을 보며 '언제 저렇게 컸나'싶을 정도로 뿌듯하고 대견하다.
뭐든지 혼자 하겠다는 4살,
화장실에 갈 때에도
엄마. 안 따라와도 돼. 내가 이제 할 수 있어!
뒤처리가 100% 깔끔하진 않아도 혼자 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바지도 혼자 낑낑대며 올려 입고 화장지를 변기에 버리고 물까지 쏴악 내린다. 그리고는 칭찬을 들을 때까지 계속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본인이 다 했다고 외고 다닌다.
"그래! 다 컸네 우리 아들"
젖먹이 둘째만 옆에 끼고 있다가 첫째를 바라보면 벌써 어른이 다 되어 버린 거 같다. 훌쩍 커버린 키에 말대꾸도 하고 욕심도 많고 자기주장도 엄청 강하다.
저녁 8시 둘째 잠을 재우고 엄마품이 그리웠던 첫째가 '엄마~엄마'하고 쪼로로 달려오면 '그래. 얘도 그래 봐야 아직 어린 아기지.' 생각한다.
키만 좀 컸지 아직도 품에 쏙 안기는 큰 아기다.
둘째가 태어남과 동시에 엄마를 온전히 뺏겨버린 첫째는 아빠에게 찰싹 붙어서 하루 종일 떨어질 줄 모른다. 아빠마저 둘째에게 뺏겨버리면 세상을 다 잃은 기분일 거다 아마. 그래서 가끔 내가 첫째를 혼내기라도 할 때면 콧방귀에 씨알도 안 먹히는데 아빠가 야단을 하면 별일 아닌데도 세상 떠나가라 닭똥눈물을 쏟는다. 그리고 둘째가 울면 혹여나 아빠가 아기를 안아 달래줄까 봐 부엌에서 저녁 하는 나보고 아기 우는데 얼른 가서 아기 안으란다.
재택근무가 요즘 80% 이상인데, 가끔 남편이 사무실 근무를 하러 갈 때면 내가 둘째를 안고 첫째 학교를 데리러 가야 되는데 내 얼굴을 보자마자 아빠가 아닌 걸 알고 눈이 씰룩씰룩하다.
"Pas toi!(엄마 말고)"
아빠가 아니라 엄마가 학교에 온 게 못마땅한 모양.
학교 복도에서 그렇게 소리치면 정말 쥐구멍에 숨고 싶다.
'저 계모 아니거든요... 얘 친모 맞거든요.'
둘째 영입기는 아마 많은 엄마들이 공감할 것 같은데 가장 큰 이유라고 하면 첫째에게 평생 친구 같은 존재를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다. 둘째를 갖기 전 놀이터에서 혼자 놀고 있는 첫째를 물끄러미 바라보니 그 뒷모습이 뭔가 애잔했다. 체격은 또래에 비해 큰 편인데, 친구들 놀이에 끼지 못하고 그들이 하는 것을 한동안 오래 멍하니 지켜보았다가 혼자 사부작사부작 따라 하는 것이다. 같이 가서 어울리면 좋은데 그럴 용기는 안나는 모양이다.
내 유전자는 활동성 100% + 리드성 100% 여서 여자아이인데도 엄마 말이 흡사 동네 골목대장 같았다고 했다. 치마를 입고도 벽 타고 담 넘고 하다 보니 매일 무릎이 까져오고 동네에서 자전거를 타다 내리막길에서 얼굴로 넘어지는 바람에 아스팔트에 얼굴반을 다라라라 갈아오기도 했다. 얼굴 반은 퍼런 멍이며 시뻘건 딱지가 앉아 자는 사이 내가 손으로 긁을까봐 엄마가 일주일간 밤에 내 옆에서 보초를 섰다는 레퍼토리는 25년이 넘은 지금까지 듣는 이야기다.
내가 10살 즈음인가, 1월 엄마 생일을 앞두고 엄마 전화 기록부에 적힌 모든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생일에 초대한다고 선물사 오라고 했던 일화는 그래도 그나마 귀여운 일화이다.
우리 집 아파트로 오는 길에 50미터 정도 담장과 하얀 벽이 쫙 늘어서 있는데 정원에 5월 장미가 탐스럽게 피어있다. 장미 꽃잎을 꺾어다가 장작 50미터 되는 하얀 벽에 온갖 그림칠을 했다. 그날 밤, 엄마한테 큰 빗으로 몇 대 맞고 엄마는 하얀색 벽을 다시 깨끗하게 덧칠하느라 진땀을 뺐다고 했다.
아름다운 남천동
이런 나의 똘끼가 이 아이에게도 분명 전수가 되었을 테인데, 어찌 저리 우리 아들은 이리 신중할고? 친구들도 같이 어울리고 놀면 좋을 텐데 적극성이 별로 없다. 쭈뼛쭈뼛 변두리만 돌고 있는 아들이 이상하면서도 약간은 답답하다.
'어쩌면 좋을까?'
되려 신중하면 좋지.
아들이라 다치는 일이 다반사인데 남들 하는 거 좀 지켜봤다가
따라 하게 되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잖니.
우리 아들이 소심하고 신중해서 가끔 낯설다는 나의 푸념에 시아버님은 손자 편을 드셨다.
그런가.. 내가 또 괜한 걱정을 하나?
안 그래도 혼혈에, 학교에서도 멀리서 보면 눈에 띄는 마스크인데 혹여나 잘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까 봐 학교 들어가기 전에 내심 걱정이 많았다. 그래도 다행히 잘 적응하고 친구들도 사귀고 오는 거 보면 역시 괜한 걱정이 맞나 보다.
내 속으로 낳았데도 가끔은 이해가 안 가는 아들을 보며, 나도 아들을 열심히 알아가는 중이다.
모든 부모에게 '첫째 아이'라는 존재는 부모에게도 그 모든 경험을 처음으로 안겨주는 이이기 때문에 신기하면서도 새롭고 때론 당황하고 낯설기도 하고 그런 거 같다. 첫걸음마, 학교 첫 등굣길, 첫 사춘기 그리고 아들의 첫사랑 등등.
둘째도 제법 크고 했으니 이젠 첫째한테 신경을 좀 더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