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살 때, 5년 동안 다니던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치대를 가겠다고 준비하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을 붙는다 해도돈문제가아마도 풀기 힘든 숙제였을 거다.
IMF 칼바람을 정통으로맞아선 우리가족이 다시 일어나기까지 10년이란 시간이 필요했었는데 이제 겨우 살만해진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늦깎이 공부명목으로 돈을 따박따박 받기란건 참으로 입이 안 떨어지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모아둔내 잔고는 어림잡아2천만 원남짓이었는데 소솔 하게 치를미래의웨딩자금으로 남겨두었던 것이었으니 공부이나 결혼이냐 선택의 기로 앞에나는있었다. 결국 허망하게 치대 진학이 무산되는 바람에 나는 그때 사귀던 지금의 남편과 부산에서 하우스 웨딩식을 올리고 프랑스에 살게 되었지만 그 선택에 대한 후회는 지금도 결코 없다.
그렇게 치대를 간답시고 실업급여를 받던 시절, 같은 직장에 다니던 언니도 남편이 베를린으로 단기 파견이 결정 나는 바람에내가 일을 그만둔 몇달 후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우린 꿀맛 같은 휴식기를 같이 보냈다.
우리가 없으면 빡빡하던 업무가 어떻게 돌아갈까하던 그런 걱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담담해졌다. 우리 일은 누군가로 자연스럽게 채워지고 회사 간판은 여전히 프랑크푸르트 중심가에 보란 듯이 건재하고 있었다.
예쁘지 이 튤립? 길 가다 사봤어 너무 예뻐서.
언니와의 점심 약속.
멀리서 걸어오는 언니두손 가득 노란 튤립 한 다발이담겨있다. 그래봐야 30유로-40유로도 안 되는 금액이었을 텐데 일주일이면 시들어버릴 꽃이 무슨 소용이라고 - 언니가 너무 납득이 안 가지만 한편으로 부러운.. 뭐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멍함이었다. 이 사치가 지금 웬 말이냐.
먹고사는 문제가 급선무인 나로서 지금생각해 보면 언니에 대한 묘한 질투였던 거 같다.
한동안 노란 튤립이 햇빛을 받아 하늘거리고 언니의 해맑게 웃는 모습이 잔상으로 머리에남았다.
오래오래.
2023년 2월 실직이결정되고내가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식물을 사서가꾸는 일.
근처 꽃가게에 들어 10분을 서성이며 어떤 식물이 나의 첫 반려 식물이 될까 고민하다가 "칼라테아(Calathea)"라는 얼룩말 무늬 식물을 골랐다. 비교적 기르기도 쉽고 무엇보다 기도하는 식물이라는 별명이 마음에 들어서다.
저녁이 되면 하늘을 치솟을 듯이 입사귀를치켜세우는데 이는 물을 잘 빨아들이기 위한 것이라는데 마치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며 내게 하이파이브를 하자고 하는 거 같다.
칼라테아 이후 하나 둘 식물을 모으다 보니 벌써 7그루 반려 식물이 생겼고 분갈이도 해주고 바나나껍질을 곱게 갈아서 천연 비료도 뿌려주니 지금까지 죽은 녀석 없이 잘 자라주는 게 마냥 행복하다.
그 동네 꽃집은 점심 한 끼 뚝딱하고 마실 가는길에 그냥 들르는 산책 코스가 됐다. 식물마다 성격이 다르니 자주 가서 조언도 구하고 구글에서 식물에 관한 글도 찾아보고 이젠 나도 초보 식집사가 됐다.
아침에 식물을 들여다 보고 물을 주고.
참으로 행복한 순간이다.
아마 그런 것이었을 거 같다.
식물이나 꽃을 사면서 나는.. 그래 나는 이렇게 잘 살고 있다고. 푼돈에 전전 긍긍하지 않고 당장의 행복에 투자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고 말이다.
그때 언니의 튤립 한 다발이 자그마치 7여 년이 흘러 이제야 이해가 되다니.
왜 지금은 알 거 같은 것들이 그땐 도통 이해가 안 됐을까.
그때의 나도 나고 지금의 나도 나지만 돈에 한해서 나를 쪼이는 막이 느슨해진 것은 확실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