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46일, 첫 감기
네 살(34개월) 짜리 큰 아이가 고열로 시작해 기침, 콧물, 가래로 꼬박 일주일을 고생했다. 추석 연휴가 끼어 일주일 동안 어린이집도 못 가고 집콕.
큰 아이는 자주 아프지 않기도 했고 아파도 경미한 증상 정도로 지나가서 그런 적이 없었는데 이번엔 컨디션이 영 안 좋은지 처음으로 입맛 없어하며 밥도 그 좋아하는 간식도 거부했다. 좀 쉬어야겠다며 자기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더니 혼자 스르르 잠들어 낮잠을 세 시간씩 자고 심지어 두 번 자기까지 했다. (어린이집에서는 낮잠 시간에 한 시간 좀 더 되게 자지만 집에 있는 날엔 낮잠을 건너뛰거나 놀다가 지쳐 저녁시간에 기절하듯 잠들어 한 시간 겨우 자는 아이인데..^^;)
큰 아이가 아픈 것도 속상하고 힘든데 자기 동생이라며 작은 아이를 끌어안고 뽀뽀하고 비벼댄다. 감기가 옮는다는 개념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동생은 아끼고 사랑해야 할 대상으로 배워 알고 있는 아이에게 ‘지금은 감기 걸렸으니 가까이 가지 말라’고 해야 한다는 게 나도 참 뭐했다. 그래도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 설명하며 물리적으로 떨어뜨려놓으려 애쓰긴 했지만 같이 집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다 보니 결국 작은 아이도 옮았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열은 나지 않지만 콧물과 기침이 문제였다. 코가 막히니 젖 먹는 것도 힘들어하고 코가 기도로 넘어가면서 가래가 끼는데 뺄 줄을 모르니 답답해하며 낑낑거리다가 기침하다가 울다가를 반복했다. 숨소리가 거칠고 기침할 때마다 소리를 듣고 있으면 너무 안쓰러웠다.
동네 소아과에 갔는데 아기가 아직 너무 어려서 컨디션이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폐렴으로 발전할 수도 있기 때문에 큰 병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라며 의뢰서를 써주셨다.
곧장 옆 동네에 있는 어린이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가는 동안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어제 그렁그렁하는 소리가 들릴 때 바로 병원에 가볼걸. 50일도 안된 아가인데 너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나? 이 작은 몸으로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고 당황스러울까. 그래도 입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엄마로서 아이의 증상을 (내 맘대로) 가벼운 감기 정도로 여기고 대처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죄책감이 밀려왔다. 혹시라도 아이 상태가 많이 안 좋다고 하거나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병원에 도착해 엑스레이를 찍고 진료를 받았는데 다행히 입원할 정도의 상태는 아니라고 해서 일단 한 시름 놓았다. 약을 처방받고 주말 동안 먹여보며 상태를 지켜보고 혹시 상태가 더 나빠지거나 아이가 잘 먹지 않고 처지는 증상을 보이면 대형병원으로 가라는 안내를 받았다.
이렇게 아이는 인생 47일 차에 처음으로 모유가 아닌 ‘약’을 맛보게 되었다. 이런 건 이렇게 빨리 맛보지 않아도 되는데… 마음이 좋지 않다. 그래도 이만한 게 다행이고 또 다행이다.
첫째 임신 중에 초음파로 태아의 심장소리를 듣는데 약간 엇박이라는 소견이 있었다. 막상 태어나면 괜찮은 경우가 대부분이라고는 했지만 굉장히 신경 쓰였다. 다른 것도 아닌 심장에 문제가 있으면 어쩌나… 걱정됐다.
둘째 임신 중에는 정밀초음파 때 태아의 오른쪽 네 번째 발가락에 이상 소견이 있었다. 혹시 몰라 대학병원까지 가서 검진을 받았는데 이상 소견이 있다 해도 당장 손 쓸 방법이 없고 태어나서 직접 보는 게 가장 정확하다는 이야기만 듣고 돌아왔다. 또, 임신 후기에는 태아에게서 신우 확장 증세가 보이기도 했다. 콩팥(신장)에서 소변을 모으는 부분이 정상보다 확장, 즉 늘어나 있는 것. 이 증상 또한 흔히 발견되는 소견이고 출산이 임박해오면서 대부분 정상범위로 들어오고 태어나서 확인해보면 괜찮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이상 소견이고 지켜봐야 하는 것이니 신경이 안 쓰였다면 거짓말이겠지.
결과적으로 모두 괜찮아졌고 이상이 없다. 휴…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큰 아이는 잔병치레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아기 체온 정상범위도 몰랐고 해열제 먹이는 법도 몰랐다. 그런데 돌 즈음해서 돌발진이 왔고 30개월 때쯤 바이러스성 폐렴으로 입원한 적이 있다. 두 번 모두 40도를 웃도는 고열에 불덩이처럼 뜨거워진 아이를 안고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해열제를 먹이고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며 기다리는 것 외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뻔하지만 내가 대신 아파주고 싶다는 생각이 제일 많이 들었다.
누구나 아프면 힘들고 괴롭다. 하지만 아기가 아프면 그 정도는 급이 달라진다.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모든 게 낯선 아이인데 (본능이긴 하지만) 겨우 익숙해진 코로 숨쉬기가 안 되니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똑같이 재채기를, 기침을 한 번 해도 온몸으로 있는 힘껏 하다 보니 얼굴이 시뻘게지고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아 두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다.
이만하면 경미한 증상이고 또 상대적으로 별거 아닌 감기 수준인데도 어미 마음이 이런데… 대학병원에, 그것도 중환자실에 입원하거나 큰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로 많이 아픈 아이를 돌보는 부모 마음은 어떨까 싶다. 감히 상상도 못 하겠다.
그래서일까. 최근에 종영한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유독 소아과와 산부인과 이야기에 눈물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유산 경험자이고 또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어보니 임신과 출산 과정도 큰 이벤트 없이 무탈하게 지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고 또 아이가 건강한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어른들이 하던 이 말이 뻔한 말 같지만 진심이 담긴 말이라는 걸 부모가 되어보니 알겠다. 아이가 아프면 부모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일과 외부활동은 물론이고 모든 게 올스톱이다. 당연한 것 같지만 결코 당연하지 않은 게 건강이고 건강을 잃었을 때 한 없이 무너지는 게 부모더라. 그러니 아이가 건강한 것만으로도 아이와 부모, 온 가족이 참 많은 걸 누릴 수 있는 셈이다.
내가 건강하고 싶다고 해서 건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은 없다. 내게, 그리고 내 가족에게 허락된 건강에 감사하고 이 건강을 지키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리고 나와 내 가족, 내가 아끼는 모든 이들이 건강한 몸과 마음과 영으로 하루하루 감사와 기쁨으로 채워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