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복지관 사회재활팀에서 근무할 때, 저는 방과 후 교실을 담당했었습니다. 다른 업무도 있었지만 주된 업무는 초등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복지관으로 등원하는 아이들과 방과 후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하교 후 이용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건 공부방과 비슷한 점이지만 활동 내용이 조금 달랐습니다. 공부보다는 각자 장애의 특성에 맞게 일상생활이나 기초학습을 진행합니다. 여기서 굳이 공부가 아니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일반적인 교과 커리큘럼이 아니라 아이들의 원활한 일상생활을 위한 모든 것을 지원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름과 전화번호를 아는 것, 물건을 사는 것, 상황에 따른 인사법, 친구들과 의사소통하는 법, 계절의 변화와 관련된 것, 공공예절 등 보통의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을 구체적으로 반복하여 조금씩 바꿔가며 학습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하교 후 복지관에 들렀다가 가정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학교 선생님과 저와 부모님은 '학교 - 복지관 - 가정'의 틀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정기적 소통은 물론이고 특별한 날에는 더 자주 연락을 취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여름과 겨울에 방학을 하면 이 삼각형의 균형이 흔들립니다. 특히 가정 보육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아이들의 안전이 우려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기에 특별프로그램을 기획하였습니다. 방학에만 진행하는 단기 프로그램으로 아침부터 오후까지 종일 운영하는 여름학교 또는 겨울학교였습니다.
반일로 진행되던 방과 후 프로그램이 종일로 바뀌면 담당 선생님들의 업무와 프로그램 진행 공간, 차량, 활동비 등 많은 변수들이 생깁니다. 예상 가능한 상황을 준비하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는 방학 두 달 전부터 회의와 답사를 합니다. 프로그램 진행 계획까지 모두 마련한 뒤 방학 직전에 대상자를 선발합니다. 방과 후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아이들 전부가 그대로 옮겨와도 좋았겠지만 그럴 만한 여건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복지관 대상자는 시민 전체였으므로 범위를 방과 후 이용자로 한정하는 것도 무리였습니다.
방학 특별 프로그램이 잘 알려지기 전 그러니까 제가 입사하기 전에는 선착순으로 받았다고도 했지만 그건 그야말로 옛날 말이었습니다. 방학 프로그램을 기다리는 대상자가 정말 많았거든요. 이유가 제각각이었지만 여하튼 욕구에 비해 이용할 수 있는 대상자는 일부라 진행자로서 늘 송구했습니다. 신청서를 작성한 인원 중 우리가 '선발'해야 했으니까요.
선발 기준이 도마에 오르지 않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팀장님과 저는 머리를 맞대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여 최대한 검증된 검사 도구들을 차용했습니다. 일상생활, 인지, 사회, 신체 등의 영역으로 구분하여 보건사회연구원이나 다른 장애인복지관에서 활용하고 있는 항목들을 면밀히 살펴 적당한 조합으로 완성하였습니다. 신청서를 작성하는 부모님들께도 이러한 점을 강조하여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아이에 대해 솔직하게 작성하시길 권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소변 처리가 되지 않는데 된다고 하면 안 된다는 식이었습니다.
부모님이 특별 프로그램을 신청하시면서 그 자리에서 검사 항목에 체크를 하셨습니다. 그걸 모아 우리는 채점을 했습니다. 맞고 틀리고가 아니라 점수가 높고 낮음을 가늠하는 것이었습니다. A, B 두 개 반이었으므로 약 30여 명이 점수 순으로 선발되었습니다. 점수 집계와 대상자가 확실해지면 이제 부모님들께 알려드릴 차례였습니다. 부모님께 통보하는 것은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프로그램을 기획, 홍보, 신청, 검사지 설명, 체크된 검사지 합산과 평가하는 모든 과정의 강도를 합쳐도 부모님들과의 전화 통화 압박보다는 덜했습니다.
합격이면 다행인데 불합격이라면 부모님들의 속상함이 저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졌거든요. 특히 불합격을 전하는 저에게 한 어머님이 "선생님. 다시 봐주세요. 네?" 라고 했던 순간은 아직도 명징하게 기억납니다. 이 통화는 프로그램을 마친 후 평가회에서 개인적인 아쉬움이라고 밝혔습니다. 저의 말을 들은 팀장님은 그렇게 스트레스가 크다면 다음부터는 통보하는 방법을 달리해 보자고 제안하셨습니다. 그리고 채택된 방법은 불합격 전화는 팀장님이, 합격 전화는 제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어머님들 사이에서는 복지관에서 전화하는 사람이 남자라면 불합격이고, 여자라면 합격이라는 소문이 났다고 합니다. 팀장님은 남자였고 저는 여자였으니 "안녕하세요, 장애인복..." 앞부분 인사만 들어도 그 여부를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웃고 넘겼는데 지금 떠올려 보니 이용자 부모님들 입장에서 남자 목소리를 얼마나 피하고 싶었을지, 여자 목소리를 얼마나 기다렸을지 그 간절함이 같은 부모의 마음으로 새삼 느껴집니다.
제가 가졌던 조그만 권한이 누군가에게는 다시 봐서라도 꼭 동그라미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만큼의 책임감을 가지고 일했는지 되돌아보고 있습니다. 또한 지금 이 순간도 미래 어느 때에 과거라고 되짚으며 최선을 다했는지 돌아보게 되겠지요. 언제 어디서나 진심을 다했고, 지금도 역시 진심으로 다시 살필 수 있는 저이기를 바랍니다.
'두 배로 사'라는 제목은 저의 딸아이가 의사, 변호사, 판사가 좋은 직업이라면 사회복지사는 '사'가 두 번이나 들어가므로 두 배는 더 좋은 직업이라고 하면서 사회복지사 엄마에게 지어준 이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