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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칼라책방 Aug 20. 2023

복지관 사람들이 먹는 것

오늘은 후원물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돈이나 개인의 노력이 아닌 후원 목적으로 복지관에 접수되는 물품은 없는 것 빼고 다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물품은 취향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품목의 차이는 거의 없으니까요. 복지관에 근무할 당시 후원 물품에 대한 기억을 의, 식, 주와 관련하여 떠올려 본 것입니다.


먼저 의(衣).

이용인들이 입고 신을 수 있는 물품은 취향도 취향이지만 워낙 종류가 방대하여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품목입니다. 남, 녀, 노, 소를 모두 따져 이용자들에게 제공할 때도 있었고 우리 기관에서 소화하기 어려운 것은 다른 기관으로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그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은 물품은 구명조끼였습니다. 마침 더위가 시작되기 직전에 접수되었고 거의 모든 실에서 물놀이를 계획하고 있었기에 눈독 들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구명조끼에 대한 소문은 복지관에 금방 퍼졌습니다. 담당 사회복지사들이 '좋은 게 있다는 얘기 듣고 왔다'면서 사무실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습니다. 평범한 윗도리와 아랫도리였다면 그러려니 하면서 넘겼을 테지만 이건 특별한 기회였으니 어떻게 하면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모든 프로그램에서 공평하게 조끼를 이용했으면 좋았겠지만 결국 A팀에서 단독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첫 번째 이유는 사이즈가 다양하지 않았으며, 두 번째 이유는 물놀이를 하는 장소에 따라 조끼 이용 여부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다른 팀에서 아쉬워하는 마음이 컸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A팀은 복지관 마당에서 물총놀이를 하면서도 번쩍이는 주황색 조끼를 입었습니다. 마음껏 뽐내며 물총을 쏘아댔습니다. 그 구명조끼는 다른 팀에서 쏘아대는 부러움의 눈총까지도 잘 막아냈습니다.


다음으로 주(住).

집에서 사용되는 물품뿐만 아니라 도배지와 보일러를 후원을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지역사회팀이 더 바빠졌습니다. 도배와 보일러 수리가 필요하신 이용자를 찾아야 했으니까요. 상황에 따라 먼저 해야 할 분과 그렇지 않은 분들을 가리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기술자들의 재능기부와 함께 이루어진 이 후원은 원래는 일회성이었으나 한 번 두 번 진행하면서 정기 활동으로 자리 잡은 선례가 되었습니다. 후원 물품으로 시작한 인연이 정식 사업으로 자리를 잡으며 주거와 관련한 다른 활동들을 개발할 수 있었던 좋은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식(食).

복지관에 접수되는 물품 중에서 제일 많은 것이 먹을 것입니다. 음료수, 쌀, 과일, 등 다양한 식재료가 접수됩니다. 이중에 잊을 수 없었던 것은 김치를 후원받았을 때였습니다. 물론 다른 때도 김치 후원은 여러 번 있었지만 제가 떠올린 것은 B식당에서 후원했던 김치입니다. B식당은 복지관 직원들이 종종 드나들며 동태찌개를 자주 먹던 곳이었고, 그날따라 사장님이 김장을 하시려는지 배추를 쌓아 놓고 다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쌀쌀한 날씨에 뜨끈한 국물을 먹자며 여느 때처럼 동태찌개를 주문했습니다.


사장님은 복지관 구내식당에서 김치도 먹냐고 물으시면서 식당에서 먹으려고 담근 김치가 있는데 복지관에 후원을 해도 되냐고 하셨습니다. 안 될 것이 없고 오히려 감사하다고 인사까지 했습니다. 며칠 후 식당 조리사님께 B식당에서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며 김치 후원 들어온 것이 있냐고 여쭈었더니 조리사님은 싫은 티를 내시며 다음부터는 '그런 거 받아오지 말라'라고 화를 내셨습니다. 알고 보니 B 식당에서 후원을 한답시고 가지고 온 김치는 담근 지 몇 년이 지났는지도 알 수 없는 시어 빠진 것이었고 양도 어마어마해서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리는 데만 많은 시간과 돈이 들었던 것입니다.


장애인복지관에서 근무하다 보면 이런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조금 허름하고 지저분한 것이라도 장애인이니까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가져오시는 물품들 때문에 당황하기도 합니다. 복지관 사람들이 먹는 것이라고 해서 특별한 건 없는데 말이죠. 누구나 입고 먹고 즐기는 것이라면 복지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지금은 사회적 시선이 많이 개선되어 이런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때 이후로 우리는 B식당에 발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서 말씀을 드릴까 생각도 했지만 조리사님의 당부도 있었고 무엇보다 지역사회 상인들과 복지관의 관계도 염두에 두어야 했기에 그럴 수 없었습니다. 대신 후원 물품에 대한 사전 확인을 더 꼼꼼하게 했습니다.


후원(後援)의 의미는 '뒤에서 도와준다'입니다. 뒷받침해 준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뒷받침이 되려면 단단하고 꼼꼼해야 합니다. 또한 내가 좋다면 남에게도 좋을 것이고 내가 싫다면 남도 그럴 수 있습니다. 나의 뒷받침이 되었던 것을 떠올리면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두 배로 사'라는 제목은 저의 딸아이가 의사, 변호사, 판사가 좋은 직업이라면 회복지는 '사'가 두 번이나 들어가므로 두 배는 더 좋은 직업이라고 하면서 사회복지사 엄마에게 지어준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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