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배로 사 - 24
어쩌면 제가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다른 사람에게 공감을 잘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상대방의 생각과 기분에 쉽게 젖어드는 건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복지관에서 이용자들과 만나다 보니 그런 성향으로 바뀐 것도 한몫했습니다. 선천적인 요인에 후천적인 상황이 더해지다 보니 저는 적당한 선을 넘어 공감과잉증후군 증세를 보일 때가 가끔 있습니다.
공감 과잉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공감 자체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간혹 공감(共感)은 동감(同感)과 혼돈되어 사용되기도 합니다. 동감은 이해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납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럴 수 있겠구나' 싶으면 동감한 것입니다. 반면 공감은 상대의 감정을 함께 느끼는 것입니다. 상대의 기쁜 일에 같이 몸서리칠 수 있는 것은 이해를 넘어서는 감정입니다. 덮어 놓고 함께 흔들리는 건 모정이나 가능한 것입니다. 우선 이해가 되어야 공명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동감 유전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건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수니까요. 그리고 동감은 공부로도 가능합니다. 미처 알지 못한 상황에서 앎이 수반되면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고 상대방을 위한 배려까지 할 수 있으니까요.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거나 전철에서 교통약자석을 지켜주는 것은 동감에서 비롯된 사회적 배려입니다.
공감은 상대의 기쁨과 슬픔이 나에게 전달됩니다. 마치 내 일처럼요. 그러한 공감은 사회복지사에게 좋은 자질이 될 수 있습니다. 이용자의 어려움과 고단함을 알아준다는 건 때로 전문적인 복지제도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할 때가 있거든요. 장애아동을 양육하고 있는 부모들에게 저의 이런 점은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아이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모습으로 보였나 봅니다. 그래서 상담을 요청하는 일도 잦았습니다. 그날은 A의 어머니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A는 지적장애아동이었고 복지관은 그해 처음 이용하는 아이라 기본 정보는 서류에 적힌 것이 다였습니다. 서류는 특별한 것이 없었습니다. 보통 가정의 평범한 아이였습니다.
A의 어머니와 마주 보고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A에 관한 일인가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어머니는 말끝을 흐렸습니다. 이내 고개를 숙이시더니 어깨가 조그맣게 흔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이후 나눈 이야기는 가정 불화에 관한 고민이었습니다. 화목하지 못한 분위기 때문에 A를 잘 돌보지 못하는 것 같아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그 어머니와 함께 울었습니다. 속으로는 참아야지 참아야지 했는데 그게 어디 마음먹은 대로 되나요. 휴지를 뽑고 또 뽑으며 눈물을 닦았습니다.
상담으로 해결된 건 없었습니다. 오히려 마음만 어지러웠습니다. A를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사랑해 줄 수 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았지만 마땅한 비책이 떠오르지 않아 팀장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이런 상황인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라고 물었더니 팀장님은 정색을 하시며 사람이 왜 그러냐고 오히려 질책을 하셨습니다.
요는 이렇습니다. 사회복지사라면 사회복지사의 일을 해야지 정 넘치는 옆집 아줌마처럼 그렇게 대응하면 어떻게 하냐는 말씀이셨습니다. 아... 저는 그랬습니다. 사정이 너무 딱하여 어떻게 해주고 싶었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다가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라고 따끔한 지적을 받았습니다. 그 일 이후로 저는 몇 번 더 그렇게 과하게 흔들렸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복지관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전향하고서는 그런 사례를 만나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복지관 사회복지사로 근무할 때는 그 거리를 유지하기 어려웠습니다. 심리적으로 이용자와 너무 밀착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상태는 사회복지사로서 자격미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사회복지 서비스 체계가 어지러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엄연히 공식적인 자원을 활용하여 사회적 욕구를 해결하는 복지서비스입니다. 객관성을 유지했어야 했는데 저는 이 점을 간과했던 것입니다.
A 어머니가 제 손을 잡으며 눈물을 흘리실 때 그분께 위로와 공감하는 것까지는 맞았습니다. 그 뒤 전문적인 상담이 필요하신지 묻고 적당한 수순을 밟았어야 했습니다. 제가 A를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 전전긍긍했던 모습은 공감과잉증후군이 발동된 것입니다. 한마디로 오버했던 것이지요. 이용자에게 나의 이성과 감정을 적절하게 꺼내는 것이 사회복지사로서의 전문성입니다. 전문가일수록 그 균형은 잘 맞아질 것입니다. 저는 자격미달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두 배로 사'라는 제목은 저의 딸아이가 의사, 변호사, 판사가 좋은 직업이라면 사회복지사는 '사'가 두 번이나 들어가므로 두 배는 더 좋은 직업이라고 하면서 사회복지사 엄마에게 지어준 이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