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니 엄마는 이미 떠났어!
래퍼들이 헤어지는 방법Part.2(데프콘,with. 걸스데이 민아)
엄마는 날 떠났어. 모두가 날 버렸어. 이제 차가운 눈물을 닦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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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동의 천사마저 나를 포기했다.
어느 직장에서나 착한 사람은 있기 마련이었다. 그 사람도 그랬다. 남의 일까지 도맡아 하며 책임감 있게 일하고, 당연히 평판도 좋았다. 나처럼 어리버리한 사람도 친절하게 도와줬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욕해도 그는 나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그가 나를 조용히 불러냈다.
"저 진짜 다른 사람한테 싫은 소리 잘 안 해요. 선생님도 아시죠? 제가 이렇게 말하는 건 처음인데, 선생님 너무한 것 같아요. 이러다가 사람들 선생님 안 도와줘요. 그러면 안 돼요. 제발 이러지 좀 말아요. 다 선생님을 위해서 하는 말이니까 집에 가서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어리버리한 행동은 바뀌지 않았다. 나를 조금 신경 쓰는 듯하던 사람들도 결국 하나둘씩 떠나갔다. 병동의 천사마저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끝내 포기하며 나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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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의 겨울은 너무나 추웠다.
"그 정신 나간 여자가 네 아빠의 모든 걸 빼앗았다. 네 아빠가 어디 그럴 사람이니? 그년이 마귀가 씌어서 바람이 났다고 거짓말을 퍼트려서 아파트까지 뺏겼다니, 세상에…"
할머니는 아버지의 이혼 재판 결과를 듣고, 갓 7살이 된 내 어깨를 부여잡으며 말했다.
"그 여자가 내 생일에 고기 사서 고깃국이라도 해준 거 본 적 있니? 그 여자가 성경을 숨기질 않나, 찢어버리질 않나, 미친년이야."
그날 할머니는 울었다. 평소 강인하고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던 철의 여인이던 할머니가 눈물을 흘렸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할머니를 위로하고 싶었지만, 입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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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찾아왔다.
초등학생이 되어 맞이한 첫 번째 생일날, 엄마가 찾아왔다. 나는 할머니에게 '엄마는 나쁜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기에 엄마 앞에서 불편했다. 그래서 쭈뼛거리다 엄마는 이내 가버렸다. 엄마와의 추억은 항상 아쉬움으로 남는다. 어렸을 적에 좀 더 엄마에게 붙잡았다면 어땠을까? 지금 곁에 엄마가 있었을까? 가슴 한구석이 아려온다. 하지만 엄마와의 관계에 대한 모든 상상은 부질없다. 지난 이십 년간 연락 한 번 없는 엄마가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그럼에도 왜 나는 미련하게 엄마를 붙잡고 있을까? 차라리 엄마가 모질게 말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널 낳은 걸 후회해. 네가 내 인생을 망쳤어."
이렇게 말했다면, 나는 엄마를 잊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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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진짜 쳐 맞아야 돼.
엄마의 사랑이 사라진 그 자리는 폭력으로 채워졌다. 내 우울한 모습은 누군가에게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이유가 됐다.
"너는 진짜 내가 줘 패서라도 인간 만들어줄게."
초점 없는 눈빛과 의욕 없는 몸짓은 사람들을 거슬리게 했다. 그래서 나를 보면 때려서라도 사람 만들겠다는 사람이 많았다. 나는 점차 구타유발자가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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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려서라도 공부습관을 만들어야지.
체벌이 가능하던 학원에서 나는 공부를 못한다고 맞았다. 수업에 집중하지 못해 성적이 떨어지면 매를 맞았다. 나는 떠들지 않았지만, 잡생각이 많아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 여섯 시간 동안 매 맞는 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너무 무서웠다. 그렇게 나는 학교와 학원에서 맞았지만, 달라지지 못했다. 모두 나를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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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오해하지 말고 들어.
"진짜 오해하지 말고 들어… 간호사 말고 다른 일 찾아보는 게 어때?"
사람들의 진심 어린 걱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꼬인 성격 때문일까? 결국 또 한 명이 나를 포기했다. 나는 버티고 버티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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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기록 03
"엄마라는 절대적 존재가 떠났다는 아픈 기억, 그리고 그 엄마를 스스로 부정해야 했던 현실이 조열성 씨를 많이 힘들게 했군요."
"네… 사실 제가 눈치를 엄청 보거든요."
"맞아요. 양육자가 자주 바뀌면, 눈치를 많이 보게 돼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신기하게도 다른 사람의 시그널을 잘 눈치채지 못한다고 평가받아요. 왜 그럴까요?"
"저도 그게 너무 답답해요… 저는 일머리가 없나 봐요."
"자책할 필요 없어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그래서 조열성 씨처럼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을 통해 상담을 받는 경우가 많죠. 이 프로그램은 우울증, 불안장애 같은 정서적 어려움을 조기 발견하고, 국가의 지원을 통해 전문가와 함께 해결해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어요. 이 지원사업을 통해 1:1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는데, 상담을 받은 사람들 중 70% 이상이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했다고 해요."
"정말 그런가요…"
"그럼요. 조열성 씨가 이런 상황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뜻이에요. 그리고 이 상담도 대한민국이 제공하는 이 사업 덕분에 가능한 겁니다. 국가가 조열성 씨를 믿고 지켜준다는 증거예요."
상담사는 따뜻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부모님을 잃은 아이들이 더 올바르게 자란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실제로 2020년 연구에 따르면, 부모님 한쪽을 잃은 아이들의 청소년기 탈선 확률이 일반 아이들보다 15% 낮다고 해요. 헌신적인 부모는 하늘에서라도 아이를 지켜주는 큰 힘이 되는 거죠."
상담사의 말은 나에게 위로가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는 깊은 상처를 느꼈다. 그러자 상담사는 덧붙였다.
"살아서 지켜주지 못하는 부모 밑에서 큰 아이들은 하늘에서 지켜주는 부모 밑에서 큰 아이들을 이길 수가 없어요. 그만큼 나를 믿어주는 부모가 없다는 사실은 아이에게 큰 상처로 남고 말죠. 조열성 씨에게도 믿고 의지할 사람이 필요해요. 그게 바로 지금 대한민국이 저를 보낸 이유입니다. 이제부터는 저와 함께 조열성 씨를 지켜나가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