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왓슨주 Sep 03. 2023

01. TV에 나와 노래해. 혹시 니가 볼까봐

가수가 된 이유(신용재)

"다 듣고 계세요. 하실 말 있으면 하세요."

울고 있는 보호자 앞에서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아빠를 애타게 찾는 딸 앞에서 환자는 감은 두 눈을 뜨지 못했다. 이승에 있는 건지 저승에 간 건지 분간을 할 수 있는 건, 오직 그의 옆에서 삑삑 대는 모니터뿐이었다.

"아빠, 아빠 사랑해. 고생했어. 고마워."

딸을 떠나는 아버지 귓가에 딸의 울림이 과연 들릴까. 환자는 그저 눈을 감고 있을 뿐, 살아있다는 반응은 점차 사그라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은 더 크게 소리치며 울부짖었다. 이승의 노래가 저승까지 울려 퍼지기를 딸은 눈물로 기도했다.

"간호사님, 아빠 아직 돌아가신 거 아니죠? 제발... 그렇다고 이야기 해주세요. 근데, 왜 아무 미동도 없는 거에요... 살아있는 거 맞아요?"

애타게 울부짖던 딸은 나에게 물었다.

"미약하지만 심장은 아직 뛰고 계세요. 마지막으로 닫히는 기관이 청력이래요. 아직 심장은 미약하게나마 뛰고 있으니, 좋은 얘기 많이 해주세요."

"네... 흑흑... 잘 가, 아빠... 사랑해."

죽어가는 아빠를 앞에 두고 울먹이며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그의 딸을 보며, 나는 환자에게 질투를 느꼈다.

만약 내가 오늘 죽는다면 슬퍼할 사람이 있기나 할까?

나 같은 얼빠진 인간에게 저렇게 진심으로 사랑한다 말을 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지금 죽어가는 저 환자가 부러웠다. 평생을 나처럼 찌질하게 살 바에는 저 누워있는 노인처럼 축복 속에서 죽는 것이 낫지 않을까. 나는 언제나 추한 삶보다 아름다운 죽음을 원했다. 하지만 나 같은 하층민 쓰레기가 선택할 수 있는 죽음은 아름답지 못했다. 추하게 끝날 것이 뻔했다.

그래서 오늘도 죽지 못해 살았다. 아름다운 죽음을 기다리며 노래를 들었다.


평소 나를 아니꼽게 보던 병동의 한 간호사가 팔짱을 낀 채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넌 도대체 왜 다른 사람 말을 듣질 않니?"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병동에서의 나는 산 송장과 다름없었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다. 그냥 듣기 싫었다. 그 듣기 싫은 소리를 내 앞의 간호사는 계속해서 쏟아냈다.

"사람이 말을 하면 들어야 되잖아. 근데 넌 왜 바뀌는 게 없어. 이런 얘기 들으면 자존심 상하지 않아? 왜 계속 그대로인 거야?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느낌이야."

한숨을 내쉬며 내뱉는 말이 심장을 후벼팠다.

간절해지면 사람이 바뀐다고 했던가? 자존심을 긁는 말을 들으면 절치부심해서 새사람이 되어야 하지만, 오히려 나를 깎아내리려는 말을 들을수록, 나라는 존재는 땅밑으로 끌려들어가듯한 느낌을 받았다. 결국 주저앉아버렸고, 다시 시작할 의욕조차 없었다. 모든 게 싫었다. 눈에는 초점이 없고 그저 허공만 응시했다.

물론 나도 바뀌고 싶었다. 세상 누구보다 나 자신을 싫어했고, 제발 좀 바뀌었으면 했다. 나도 잘하고 싶었다. 인정받고 싶었고, 웃으며 사람들과 인사하고 사랑받고 싶었다.

그러나 몸은 굳어 있었고, 움직여지지 않았다. 영혼 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내다가 사람들이 부르면 그제서야 허둥대며 반응했다. 그 모습을 사람들이 곱게 봐줄 리 없었다. 나는 험담의 대상이 되었다.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안 좋게 할 때, 나는 딴청을 피우곤 했다. 어느 순간, 내 주변 사람들 모두가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이 당연해졌다. 외로움과 부정적인 감정이 너무나 익숙해졌을 때, 나는 죽음을 생각했다.

이 답답한 삶이 너무나 싫었지만, 나 스스로는 깨버릴 수 없었다. 누군가가 내 삶을 구원해주길 기다렸다. 하지만 내 편은 없었다.

"괜찮아, 그럴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어떻게 너는 맨날 그러니. 진짜 문제다. 제발 그러지 마. 생각 좀 하고 행동하라고."라는 말만 들렸다.

버티고 버티다 결국 죽음의 문턱 앞에 섰다.

정말 이제 모든 걸 포기하고 죽어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간호계에서 7년째 버텼지만 나라는 코인은 여전히 떡상하지 못했다.

평생을 피해자로 살았다. 가정에서의 폭력은 학교로, 군대에서 폭발했고, 사회인이 되어서도 괴롭힘은 계속됐다. 가정폭력, 학교폭력, 군대 악폐습, 그리고 간호계 태움문화까지... 대한민국에서 경험할 수 있는 괴롭힘은 다 겪었다.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졌고, 영혼은 파멸되었다.

이번 생은 정말 답이 없었다. 누군가가 나를 죽이러 올 것 같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기로 했다. 한강을 찾았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고 생각해 이직도 했다. 두 번의 이직과 세 번의 신규 생활을 겪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나는 여전히 어리바리한 고문관이었다.

이제는 정말 죽어야겠다.

죽기 전에 저주라도 퍼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알았던 이들에게 내 죽음이 그들의 마음에 큰 울림이 되길 바랐다. 그들의 남은 생애가 지옥같기를 간절히 바랐다.

한강을 하염없이 배회했다. 솔직히 죽는 게 두려웠다. 죽음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주저했다. 귀에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가수가 되었다는 한 가수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렇게 죽으면 아무도 내가 왜 죽는지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펜을 들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끼친 모든 사람들에 대해 적어내려가기로 했다. 이 글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울려퍼지기를 눈물로 기도하며 펜을 잡았다.


---

상담기록 01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조열성 씨와 아픔을 나눌 상담사 이예은입니다. 반가워요, 조열성 씨."

상담사는 따뜻한 미소로 나를 맞이했다.

"조열성 씨, 심리 검사 결과 보이시죠? 맞아요, 조열성 씨는 지금 매우 우울한 상태예요. 그래서 심리 상담이 그 누구보다 필요해 보이네요. 그걸 조열성 씨가 가져온 이 사연 글이 다 말해주고 있어요. 이 사연 글에 대해 한 번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저는 노래 듣는 걸 좋아해요. 여러 노래를 듣기보다는 제 마음을 대변해주는 노래 하나를 계속 듣고 또 들어요. 그 노래에 당시의 기억과 감정을 담아두죠. 그러면 나중에 그 노래를 다시 들을 때 그때의 기억과 감정이 되살아나요."

"참 독특한 방법이네요. 저도 어느 정도 공감이 돼요. 지금 써주신 건 일기를 토대로 가져오신 건가요? 보통 날짜별로 정리해서 오시는데, 이 글은 그런 것 같지 않아서요. 잘 찾아오셨어요. 이 글을 보니 조열성 씨의 답답한 마음이 확 와닿네요. 상담이 진행되는 동안 그 마음을 다 털어놓으세요. 저도 잘 부탁드려요."

상담사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전 01화 프롤로그 : 마음 투자를 통해 되찾은 나의 노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