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좀 나아졌냐 묻는다면 내 대답은 전혀
전혀(빈첸,feat. 우원재)
이제 일한 지도 꽤 됐는데, 할만하지? 내 대답은 "전혀."
사람 하는 일이 다 거기서 거기야.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 일이라는 게 다 그래. 다 똑같아. 지나고 나면 아무 일도 아니라고.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라는 말이 괜히 있겠어?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산이 없듯이 계속하다 보면 짬밥도 생기고 그러는 거야. 요즘 애들 문제가 끈기가 없다는 거잖아. 조금만 못하면 '전 안 되겠어요.' 하고 도망가고. 그게 문제거든."
나는 그 말을 믿었다. 그래서 끈기 있게 버텼다. 그런데 왜 나는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일을 못할까. 사필귀정이라고, 결과는 언제나 원인에서 비롯된다. 내가 일을 못하게 된 것은 아마도 안정된 가정에서 자라지 못하고 언제 주양육자가 바뀔지 모르는 불확실한 환경에서 자란 탓일 것이다.
왜 이렇게 어리바리하냐는 말을 계속 듣고 있으니,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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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에 대하여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편 51편 5절)
누군가 내 행동의 이유를 물으면 나는 마치 방어기제처럼 옛이야기를 시작한다.
"저는 어렸을 때 이혼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어린 나이에 엄마와 헤어졌고, 지금까지 연락도 안 되고 있습니다. 할머니가 저를 키우셨고, 할머니는 아들 하나밖에 없었기에 저를 유독 편애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고모는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고모는 어린 저에게 '콩가루 집안에서 태어났다'며 폭언을 퍼부었고, 할머니와 다툼이 있을 때는 할머니를 때렸습니다. 그렇게 노인 폭력이 일상이 된 집에서 자랐고, 점차 제 성격은 소심해졌습니다. 학교에서는 그 소심한 성격이 학교폭력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어리바리하게 행동하는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더는 어찌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저의 원죄입니다. 저는 지금 그 벌을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상대방은 인상을 찌푸리고 한숨을 쉰 후 곧 나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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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받는 불행이 부러웠다
오체불만족의 오토다케 히로타다와 닉 부이치치가 부러웠다. 차라리 나도 그들처럼 장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박수를 받는 그들이 부러웠다. 그저 일상생활을 하는 것뿐인데 사람들은 그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내가 단 한 번도 받지 못한 따뜻한 시선을 그들이 받는 것이 질투났다. 사지 멀쩡한 내가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고 있는 이 현실이 너무 슬펐다. 나도 장애가 있었으면 지금보다 행복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결국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생각한 대로 소원이 이루어진 것처럼, 사람들은 나를 병신이라고 불렀다. 나는 사람들의 동정을 받고 싶었다. 나의 불행은 충분히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나보다 더 안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것을 인정하기 싫었다. 나보다 더 동정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나에게 참기 힘든 기다림을 안겨주었다. 불행 배틀에서 나만 동정받을 수는 없을까. 나만 사랑받을 수는 없을까. 그러나 곧 실패한 인생들의 사연 대회에서 몇 등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니, 나는 우울해졌다. 일상 속 작은 행복을 찾지 못하고, 남들이라면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애매한 불행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하고 역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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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관의 삶
고문관의 삶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같았다. 터널 맨 끝에서 달리는 마라토너.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지만 중간그룹조차 따라잡지 못하는 쓸쓸한 존재였다. 완주를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차라리 부상을 핑계로 중도에 포기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7년을 붙잡았는데도 안 되는 거라면, 진짜 안 되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놓아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언젠가는 나도 인정받을 것이다.'라는 희망고문 때문에 얼마나 전전긍긍했는가. 일을 잘하고 인정을 받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와 달리 일을 잘하고 인정받는 사람들은 오히려 '더러운 꼴 더 보기 전에 나간다.'고 말하곤 했다. 나는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그만두고 싶다."라고 말하면, 곧바로 "그래, 나가라."라는 말을 들을 게 뻔했다. 어딘가에는 나에게 꼭 맞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생각해본 적도 있다. 그러나 자신이 없었다. 어떤 일을 하든지 어리바리하게 행동할 게 뻔했다. 해오던 일을 하는 것이 그나마 나을 것 같았다. 지난 시절을 버티며 애썼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이 모든 노력이 헛된 것이 아닐까. 안 될 놈은 안 되는 것이다. 100명의 사람을 일을 잘하는 순서대로 세운다면 나는 아마 90번대에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100번째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일을 못하는 사람이 나일지도 모른다. 매번 일이 밀렸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못했다. 급하게 일을 처리하다가 사고가 났고, 그 책임을 회피하려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넌 왜 그러니"라는 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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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사람이 융통성이 없어
정상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라지 못한 탓일까. 남들은 이 정도 시간이 지나면 한 사람 몫은 할 텐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융통성이 없었고, 순발력도 없었다. 내가 하는 일은 쓸데없는 짓으로 평가되었고, 중구난방으로 일을 벌이다 보니 차라리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들었다. 독단적으로 일을 진행하다 사고를 쳤고, 매뉴얼에 맞지 않게 일했다. 사람들이 하는 방식대로 한 것 같은데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내가 신경 써서 한 일들은 모두 어리석은 짓이었다. 상식적이라고 생각했던 행동이 결국 비상식적이었다. 그래서일까. 누군가 나에게 "좀 나아졌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전혀."라고 답할 것이다. "난 사랑받지 못했고, 단 한 번도 인정받은 적이 없어. 그래서 모든 게 서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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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기록 02
"조열성 씨의 사연을 들어보니 정말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겪으신 일들이 자존감에 큰 영향을 주었고, 가정환경에서 비롯된 상처가 현재의 상황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네요. 중요한 것은, 이런 상황에서 많은 분들이 가까운 사람들의 공감을 기대하지만, 사실 전문적인 상담이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상담사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실제로,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가까운 지인에게만 의지할 때, 문제 해결로 이어지는 경우는 30% 미만이라는 통계가 있어요. 반면, 전문가의 상담을 받은 경우에는 70% 이상의 긍정적인 변화를 보인다고 합니다. 이는 단순히 위로나 공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깊은 내면의 상처를 다루기 때문입니다."
나는 상담사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었다.
"많은 분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이해받을 것이라 기대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주위 사람들은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을 주거나, 오히려 자신의 힘든 경험을 이야기하죠. 이런 접근이 효과가 있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오히려 상처를 깊게 만들기도 해요. 특히,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분들 중에서 제대로 된 공감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와의 상담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상담사는 따뜻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신건강 전문가의 상담은 단순히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내면의 문제를 다루는 과정이에요. 연구에 따르면, 상담을 받은 사람들 중 80%가 감정의 안정과 삶의 질 향상을 경험했다고 해요. 조열성 씨도 상담을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예요."
상담사의 말은 나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깊은 위로를 주었다. 전문가의 상담이 필요한 이유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