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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왓슨주 Sep 03. 2023

04.산산이 부서지는 눈부신 우리의 날들이

홍연(안예은)

* 너만 아니면, 나 이런 사람 아니야.


 병신 같다는 말도 질릴 지경이었다. 왜 나한테만 그렇게 구는 걸까 잠시 궁금했지만, '나만 병신이니까.'라는 너무나 명확한 답이 있는 질문이었기에 질문을 속으로 삼켰다. 나를 향한 올드의 독설에 나는 점점 더 위축되어 갔다. 그가 나에게는 심하게 화를 내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인 것처럼 대하는 모습을 볼 때면, 나는 내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때문에 그가 이런 괴물로 변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매일 조금씩 더 작아지는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 엄마는 따뜻한 믹스커피와 에이스를 준비했었다.


엄마는 나를 식탁에 앉혀놓고 자신이 겪은 힘든 일들을 나에게 쏟아냈다. 아버지와의 싸움, 가정을 내팽개치는 아버지, 그리고 외로움.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그저 앞에 있는 믹스커피와 에이스에만 관심이 갔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엄마에게 나는 친구이자, 유일한 말동무였다는 것을....


* 엄마는 대구의 공주님이었다.


엄마는 대구에서 사랑받는 막내딸이었고, 오빠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하지만 서울로 시집와서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할머니와의 갈등, 외로움, 아버지의 무관심. 그런 엄마의 고통을 이제야 조금씩 이해할 수 있다. 어렸을 때는 그저 할머니 말만 듣고 엄마를 원망했지만, 이제는 엄마의 아픔을 조금은 알 것 같다.


* 아들 쟁탈전은 대를 이어 치러졌다.


맞벌이를 하던 부모님 덕분에 나는 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자연스럽게 엄마보다는 할머니를 더 따랐다. 엄마는 그런 내 모습에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엄마는 나와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게 나 역시 엄마와의 이별을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같다.


*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고, 결혼이 있으면 이혼이 있는 법.


엄마는 아버지에게 의지했지만, 그 의지가 의심으로 바뀌며 갈등이 시작되었다. 결국 부모님은 이혼했고, 나는 그 이혼의 이유를 아버지에게서도, 엄마에게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이혼이라는 결과만 남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결혼을 한다면 아내를 절대 외롭게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 엄마 찾아 떠날 거야.


수능이 끝나고 아버지는 나에게 엄마를 찾아보라고 했다. 나는 동사무소에 가서 엄마의 연락처를 물었지만, 법적으로 연락처를 받을 수 없었다. 동사무소에서 먼저 엄마에게 연락을 해주었고, 곧바로 엄마와 통화할 수 있었다. 떨리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울컥했다. "엄마도 나를 찾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 딸 같은 아들이 될 거야.


엄마와의 재회는 나에게 새로운 시작이었다. 마치 연인처럼 엄마와 데이트를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건대입구에서 엄마와 손을 잡고 걷는 순간, 나는 엄마와의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그 관계는 또다시 금방 깨지고 말았다.


*우편배달부와 결혼한 여인을 아시나요?

옛날에 들었던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떤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해서 매일같이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그 여자는 정작 편지를 써준 남자가 아닌, 그 편지를 매일 배달해주던 우편배달부와 결혼했다는 이야기다.

엄마와 아빠의 관계도 그랬다. 아빠는 엄마를 찾아 다시 만나려 했지만, 결국 엄마는 아빠를 만나주지 않았다. 그리고 아빠는 엄마에게 아빠를 소개해준 사람, 바로 지금의 새엄마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엄마가 자신을 받아주지 않자 아빠는 결국 새엄마와 재혼했다. 마치 그 우편배달부와 결혼한 여인처럼, 아빠는 결국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던 새엄마와 결혼했다.


엄마는 결국 아버지와의 재혼 사실을 알고 분노했다. 나에게 더 이상 연락하지 말라며, 다시 나와의 관계를 끊어버렸다. 나는 엄마와의 관계가 남편에 대한 복수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했다. 내가 원했던 엄마와의 새로운 추억은 그렇게 산산이 부서졌다.


* 나는 폐비 윤씨의 아들이다.


엄마와 아버지의 이혼을 통해 나는 연산군처럼 모두를 버리고 말았다. 결국 나도 그들의 아들일 뿐,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었다.


* 엄마, 잘 살고 있어?


시간이 흘러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지만, 엄마와의 관계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다시 동사무소에 연락을 해봤지만, 이제는 개인정보 보호가 강화되어 엄마와의 연락이 더 어려워졌다. 나는 더 이상 엄마를 찾으려 하지 않고 있다. 그저 의무감으로 엄마의 소식을 알고 싶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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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상담기록 04

"혹시 어머니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무엇을 같이 해보고 싶으세요?" 상담 선생님의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저는 이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을 알려주고, 심리상담을 같이 진행하고 싶어요. 아무리 친아들이라고 해도, 전문적인 상담 기술이 없으니까 오히려 상처 주는 말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제가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말이죠."

"정말 좋은 생각이에요. 이건 엄마와 재회를 한 경험을 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인 것 같네요. 실수를 두 번 반복하면 안 되죠. 맞아요, 열성 씨가 어머니에게 기대하는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한가득 있겠지만, 그것이 받아들여지려면 어머님에게도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해요. 그 여유가 없을 때는 어떤 메시지가 들어와도 잘못 해석해서 오해가 쌓이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죠. 어머니는 저를 볼 때마다 자꾸 아버지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게 너무 싫었어요. 저는 그냥 아들인데, 자꾸 아버지 이야기만 하시니까 이해가 안 됐어요."

"그럴 수 있어요. 열성씨도 마음의 여유가 부족했고, 어머님도 그렇고, 함께 일하는 동료분도 여유가 없어 보여요. 그런 분들께는 심리 상담이 꼭 필요하죠."

"제가 문제 있다는 건 알겠지만, 그분들까지 받아야 하나요?"

"당연하죠. 함께 일하는 사람과 소통 문제가 생기고 있다면, 그건 업무의 능률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상담이 필요해요. 저는 열성씨가 빨리 건강을 회복해서 심리상담의 전도사가 되길 바랍니다. 좋아졌다는 것을 계속 알리는 거죠."

'심리상담 전도사'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내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상담 선생님의 격려 덕분에, 나는 조금씩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이 이렇게 큰 힘이 될 줄은 몰랐다. 이 지원사업을 통해 나와 같은 사람들이 전문 상담을 통해 회복할 수 있다는 게 정말 큰 위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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