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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왓슨주 Sep 03. 2023

07.그래, 내가 이 세상의 새로운 똥이다.

This is the new shit(Marilyn manson)

* 니 뒷 턴 들어가면 얼마나 힘든줄 알아?똥밟은 것같애.

부서에서 나는 똥폭탄 그 자체였다. 그 누구도 내 뒷 턴으로 인계를 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친한 사람들끼리 인계주면서 희희낙낙하는 것이 너무나 부러웠다. 언젠간 나도 그자리에 껴서 들어갈 수 있겠지 생각 했지만 벌써 7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버렸다. 나와 인계를 주고 받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리고는 다른 간호사에게 찾아가 '저 인간이 얼마나 엉망으로 인계를 줬는지'에 대해서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헐진짜? 대박. 그걸 그렇게 인계 준다고?"

하는 소리가 내 귓가에 들렸다. 부서내에서 돌아다니는 나에대한 안좋은 이야기들가 하나 더 늘었다.

*화장실을 갈 수 없었다.

가정폭력을 겪은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나또한 발달이 더뎠다. 초등학교 3학년 어느날. 둘째 고모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고 평소보다 더 기분이 나빴다.


 "너 이 개새끼야. 너는 학생이 아직까지 학교도 안가고 뭐하고 있는 거야. 이 썅노무 새끼야. 티비 보면서 밥을 처먹으니까 늦는 거 아니야 이새끼야. 어휴 한심한 새끼."


 고모는 초등학생이 등교하기엔 조금 이른 시간임에도 욕을 퍼부었다. 폭언을 하는 고모를 피해서 보통은 일찍 일어나 밥먹고 화장실도 가고 난 뒤 출발하곤 했다. 하지만 그날은 나가라는 고모의 성화에 못이겨, 화장실도 못가고, 부랴부랴 집을 나왔다. 한 두시간쯤 지났을까. 2교시쯤 되어 난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나는 소심했고 수업중간에 화장실을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할 용기가 없었다. 조금씩 싸서 말리면 되겠지라는 생각에 괄약근의 힘을 약간 풀었고, 그 틈을 비집고 똥들은 튀어나왔다.


"야. 너 바지가 갈색이 됐어."

어느 아이가 내 똥싼 바지에 대해서 지적했고 나는 선생님에게 불려갔다. 그 후로 어떻게 집에 오게됐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렇게  똥쟁이가 되어버렸다.

*똥쟁이 똥싼다!

 내가 화장실에 간다는 것은 그 나이대 아이들에게 있어 큰 관심사였다. 그들의 상식에서는 똥쟁이는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바지에 똥을 싸야 정상이었다. 그렇게 바지에 똥을 싸버린 그 후, 나는 정말 조심했다. 방광염에 걸릴 정도로 소변도 참아가며 화장실을 가지 않으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참을 수가 없었던 날이 왔고, 난 정말 조심스럽게 화장실로 뛰쳐들어갔다. 아무도 모르게 화장실로 들어갔다고 생각을 했는데, 누군가에게 발각이 되고 말았다. "똥쟁이 똥싸러들어간다!" 어떤 아이의 외침에 내가 들어간 칸막이 앞으로 구름같이 아이들이 몰려들어왔다. 그리고는 "냄새난다." "역겹다."는 말을 연신 내뱉으면서 빨리 나오라고 재촉했다. 너무나 무서웠고 나갈 수가 없었다. 내가 나오지 않자 아이들은 문을 흔들기 시작했다. 혹시나 문이 열릴까봐 겁이나서 문을 꼭 붙들어 매며 버텼다. 아이들은 어디에선가 대걸레를 가져와 문과 바닥 그 틈사이로 쑤셔대기 시작했다. 언제 이 지옥이 끝이 날까. 나는 구원자가 나타나길 바랬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끝내 버티자 아이들은 공격루트를 바꿨다. 대걸레를 적셔서 문위로 물을 털었다. 대걸레의 꾸정물이 내 온몸을 적셨고 나에게는 구역질 나는 냄새가 진동했다. 그럼에도 나는 버텼다. 그리고 이내 수업종이 울렸고 선생님이 아이들을 찾자, 아이들은 아쉽다는 말을 하면서 반으로 들어갔다. 나는 도저히 반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냄새나는 몸을 이끌고 할머니 집으로갔다.

 고모는 나의 몰골을 보고 "쓰레기더미에서 뒹굴다 왔냐. 이 개새끼야. 놀지만 말고 공부나 해라."라며 나를 타박했다.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생각했다. 산다는 건 무엇인가. 죽는다는 건 무엇일까.

*너 나 무시하냐?

 중학교 아이들의 학교생활은 하나의 계급사회였다. 그 계급의 제일 밑바닥 하층민 생활을 하고 있던 나의 역할은 일찐아이들의 식판을 가져다 주는 것이었다. "야. 너는 점심시간에 축구도 안하니까 맨 꼴찌로 먹어. 니가 타온 밥은 나 주고." 가져온 식판을 몇번 뺏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식판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내가 가져다 주기 전 몇몇 성질급한 일진들은 나를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 밥을 타다 먹곤 했는데 그렇게 밥을 타 먹다가 어느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야, 근데 왜 강철이만 먼저 타주고 나는 안타주냐."

 나는 무서웠다. 어떤 대답을 해야 되는 것일까. 대답을 못하고 가만히 서있었다.

"나 무시하냐. 빨리 얘기 해."

나는 당황했고 아무말이나 내뱉었다.

"그... 그러니까...쟤는 일짱이고 너는 이짱이니까..."

그 말이 아이의 심기를 건드렸다.

"와 이새끼 말하는 거봐. 내가 이짱이래. 시바 다같은 친구 아니야?존나 사람 열받게 하네. 따라와 이 새끼야."

  아이의 컴플렉스 였을까. 나같은 찌질이의 눈에도 강철이라는 제일 잘해보인다는 그 말이 그렇게도 싫었을까. 나는 그때 많이 맞았고 또 울었다. 이 기나긴 지옥같은 학창시절이 빨리 끝나길 빌고 또 빌었다.

*우주의 먼지가 되고싶다.

 나는 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항상 자살을 생각 했다. 하지만 죽을 용기는 나지 않았다. 나는 죽더라도 그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죽은 후에 내 몸에서 풍길 악취가 너무나 역겨웠다. 시신을 수습할 119직원들이 코를 막으며 힘겨워 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어떤 방식으로 죽음을 선택하던 간에 부패한 나의 모습은 누군가에게 민폐일 수 밖에 없었다. 어차피 죽을 생각을 하는 마당에 그까짓게 뭐 그리 중요할까 싶겠지만 나는 그게 중요했다. 그리고 동시에 남겨진 이들이 나에 대해 흉을 볼까봐 두려웠다. 나의 죽음이 살아생전 내가 느꼈던 괴로움을 조금은 알아달라는 메세지로 느껴지기 보다 그저 무책임한 죽음 으로 비춰질까 무서웠다. 내가 만약 죽게된다면 나라는 인간의 존재 자체가 잊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상담기록 07


"와...  섣불리 말을 못하겠어요. 하지만 이건 확실한 것 같아요. 자기의 기분을 표현할 줄 아시는 분이라는 거에요. 사연과 맞는 노래를 찾아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열성씨가 들려준 강렬한 이야기에 걸맞는, 맵다는 표현을 절로 하게 만드는 그런 음악인 것같아요. 저는 이 뮤지션을 열성씨가 이야기 하기 전에는 몰랐거든요."


".... 제가 표현을 잘한다구요...?"


"소극적으로 표현하고 계시긴 하지만, 그 기분을 온전히 음악으로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고 있잖아요. 노래를 직접 만들어서 불러주는 것도 능력이지만, 이렇게 만들어져 있는 노래를 찾아서 들려주는 것도 대단한 능력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칭찬 받는 것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저는 언제나 열성씨 편이라고 했잖아요.^^ 사실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미 가정에서의 폭력을 경험을 하고 있는 열성씨가 학교에서만은 그래도 잘 지내길 바랬어요. 가정 폭력을 비유하자면 칼로 나무를 찌르는 것과 같아요. 흠집이 나고 지워지지 않죠. 나무가 올곧게 자라는데 영향을 끼칠 수 있지만 다소 치명적이진 않아요. 풍파와 같죠. 학교 폭력은 그 칼에 독이 묻어있는 거에요. 그래서 그 독이 묻은 부위는 안에서부터 썩어들어가는 가는 거죠. 죽어간다는 표현이 정확해요."


"가정폭력보다 학교폭력이 더 안좋은 건가요?"


"임상적으로는 그래요. 좋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좋은 교우관계를 형성한 아이와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학교에서 좋지 못한 경험을 한 아이를 비교하며 추적관찰한 연구가 있어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비록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지는 못했지만 좋은 친구를 만나 지지적인 청소년기를 보낸 아이는 어린날 가정에서 받았던 상처를 비교적 잘 극복한 어른으로 자라났어요. 하지만 좋은 가정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폭력적인 경험을 한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있어 지속적인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심한 경우에는 극단적인 행동을 보이는 양상을 보였다는 거에요."


"저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가정에서 받았던 폭력적인 경험보다는 학교에서의 일이 더 기억에 남는 것같아요."


"맞아요. 학교에서 전교생을 대상으로한 심리검사와 상담서비스가 제공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을 조기에 발견하고 피해학생의 우울증과 가해학생의 폭력적 성향 모두를 대상으로 치료가 이루어져야 열성씨가 겪은 비극을 대한민국에서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정말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네 그리고 열성씨에게 가정내에서 폭력을 행사한 둘째 고모분,.. 심리치료를 받으셔야됩니다.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이 의무로 바뀌어서, 전국민이 심리상담을 한번쯤은 받게되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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