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난 남자야. 쓰레기 같은 남자야.
난 남자야:I'm a man(박지윤)
* 너는 간호사가 딱이야.
아버지가 말했다.
"요즘은 남자 간호사가 필요하다더라. 취업 걱정은 없어. 너도 착하고 봉사정신이 있으니 잘 맞을 거야."
그때 나는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느낌이 필요했다. 남의 궂은일이라도 도울 수 있다면, 내 존재 가치가 증명된다는 생각이었다. 여자들이 많다는간호학과는, 아픈 사람을 정성으로 대해야한다는 그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매력적인 곳으로 다가왔다.
*남자 간호사도 남자다워야 한다.
나는 남자다움을 보여주지 못했다. 여자들 앞에서 위축되는 나를 보며 사람들은 비웃었다. 특히 숙련된 간호사들의 강한 눈빛은 나를 더욱 작게 만들었다. 올드들의 강렬한 눈빛에서 어린 나에게 윽박지르던 둘째 고모가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녀들 앞에서 항상 움츠러들었고, 남자답지않게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하곤 했다.
* 이 새끼, 아다래.
"여자가 무섭대? 병신 새끼."
그들의 조롱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학교에 들어와 어른이 된 것 같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잘 들어. 내가 이제 니 성교육 선생님이야. 여자 친군 있다고 했지? 여자가 무서운데 여자 친구는 어떻게 만들어. 다 개 구라지. 그냥 여자 친구는. 만들었는데, 떡 치자 곤 못하겠다. 이거 아니야. 난 딱 보면 알지. 핸드폰 줘봐. 비번 풀어. 내가 해결해 줄게. "
"아.. 그런 거 아니야. "
나는 대학교 올라와 조금 친해진 이 아이들이 조금 무서웠다. 나와 다르게 운동도 좋아하고 덩치가 있는 아이가 내 핸드폰을 빼앗아갔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날 바로 떡칠 수 있어. 나만 믿어. 형만 믿어. 다 돼. 다들 이렇게 섹스하는 거야. 여자들 은근히 이렇게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니까?"
그 아이는 나의 핸드폰으로 여자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야, 씨발 오늘 나 졸라 꼴리니까. 섹스하자.>
나는 너무나 당황해서 얼굴이 하얘졌다. 여자 친구는 이 문자를 받고 무슨 생각을 할까. 내가 이 상황에서 뭐라고 둘러대야 할까. 스팸... 그래 스팸이라 하자.
"아, 뭐 하는 거야. 빨리 돌려줘."
"씁. 어허. 가만히 있어. 형이 다 알아서 해줄게. "
나는 돌려주지 않을 것처럼 장난치는 아이에게 정색을 하고 달려들어 핸드폰을 다시 되찾았다.
여자 친구에게 미안 다고 전화를 걸었다.
"병신 새끼. 줘도 못 먹을 새끼야 저 새끼는. 재미없다." 절절매는 목소리로 통화하는 나를 보며 그 아이는 혀를 찼다.
*상담사의 위로와 내 불신
어느 날부터, 상담사 이예은의 말이 차갑게 느껴졌다. 그녀가 내 말을 들어주고 나의 편이라 했지만, 나는 그녀의 가식적인 위로가 거북하게 느껴졌다. '힘들었겠구나' 같은 말은 내 감정에 닿지 않았다. 그녀의 말은 그저 공허하게 들릴 뿐, 내가 가진 고통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나는 심리 상담이라는 이름 아래 오히려 더 큰 좌절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상담이 끝나가고 있다는 불안은 나를 더 강하게 붙잡았다.
상담이 끝난 후, 내 안에 억눌려 있던 성적 충동이 터져 나왔다. 상담사가 더 이상 나를 돕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그녀를 상담사로서가 아닌 한 명의 여자로 보기 시작했다. 마치 내 불안을 달랠 유일한 존재처럼 느껴졌고, 나의 혼란은 걷잡을 수 없었다.
*난 유머 있는 애들이 좋더라.
"김진철 선생님 좋지 않니? 일하는 스타일이 깔끔해. 시원시원해서 좋아. 남자답고... 난 저런 애들이 좋더라고."
"선생님, 근데 그거 알아요? 저 사람 의대 때부터 진짜 쓰레기로 유명했어요. 여기서도 아이씨유 간호사랑 의국 숙소 화장실에서 같이 씻고 나오는 걸 누가 본 적이 있다고 했어요."
"그래? 그 간호사애는 잘 다니고?"
"네 그 소문 이후에도 둘이 친하게 지내고 인사하고 그런다더라고요. 사귀는 건 아니래요."
"역시 요즘 애들은 다르네. 근데 나이를 먹으니까 있잖니. 나랑은 상관없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그런 바람기 있는 애들이 재밌고 좋더라. 말도 얼마나 유머 있게 잘하는지. 난 어찌 됐든 김진철 선생님 팬이야. 남자가 좀 그럴 수도 있지 안 그래?"
"김진철 선생님 유명한 일화가 있잖아요. 술자리에서 좌우명 얘기가 나왔던 적이 있었는데, 뭐라고 한지 아세요? 자기는 사랑보다는 우정이 먼저고, 우정보다는 떡정이 먼저래요. 여자애들도 다 있었는데... 대박이죠?"
"떡정이 뭐야? 아... 그거? 재밌네. 위트 있는 거 맞네. 멋지다. 나도 그렇다 얘~호호호"
"헐, 선생님!"
항상 위축되어 있던 나의 모습과 반대되는 남자들이 항상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학교 다닐 때는 그래도 쓰레기다 뭐 다해서 사생활이 좋지 못하면 도태되었는데, 사회 나가서 보니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특히 의료계는 더욱 일 잘하는 게 먼저였다. 일을 잘하면 면죄부를 받고 일을 못하면 죄를 받는 곳이 사회였다. 나는 좀 더 적극적이면서 분명하게, 남자다운 모습을 보여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고, 그래서 여자들과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 여자 상담사에게 욕정을 느꼈다.
정부 지원 상담이 막바지에 들어갈수록, 내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상담이 끝난 후에는 내가 혼자서 이 불안을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에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불안은 점점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방식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상담사가 더 이상 나를 도와줄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이 강하게 다가왔다. 그 순간부터 나는 그녀를 상담사로서가 아닌, 한 명의 여자로 보기 시작했다.
상담이 끝나고, 내 안에서 억눌려왔던 성적 충동이 터져 나왔다. 다음주가 마지막이라고 그녀가 나를 쳐다보며 말하는 모습 속에서 나는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 그녀를 범하는 상상을 했다. 상담실이 있는 같은 층 화장실에서, 나는 내 상상대로 그녀를 마음대로 유린했다. 이것은 내가 불안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바지를 내리고, 손을 무릎 위로 올렸다, 그리고 상상에 따라 나는 내 몸을 위로했다. 그녀가 그 사실을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더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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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기록 08
상담사는 내가 쓴 일기를 조심스럽게 읽었다. 그녀의 얼굴이 점점 굳어지는 것을 보며, 나는 불안해졌다.
"열성 씨, 일기에서 성적 충동이 갑작스럽게 표출된 부분이 있군요. 이런 감정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지만, 상담이라는 과정에서 느껴진다는 것은 위험한 신호에요."
그녀는 나를 조심스럽게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내 마음이 잘못되었는지, 그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성적 충동과 불안을 분리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열성 씨가 느낀 충동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상황을 보면 주의가 필요하죠."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내 감정이 통제되지 않는다는 두려움을 더욱 느꼈다.
"이 감정이 통제되지 않으면 더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어요. 성범죄의 약 60%가 충동적으로 발생하고, 그중 많은 경우가 정신적 불안 상태에 놓인 이들이 가해자가 되고 말아요. 재범률 역시 높아요. 지금 이 순간의 충동을 관리하지 않으면 열성 씨는 그 위험을 피할 수 없어요."
그녀의 말에 나는 더 이상 말할 수 없었다. 나의 충동이 단순한 불안의 결과일 뿐이라 생각했지만, 그 결과가 얼마나 심각할 수 있는지 깨달았다.
"열성 씨, 불임수술이나 성욕 제거술과 같은 방법도 고려해 보셔야 해요. 이는 열성 씨와 주변 사람들을 보호하는 예방적 조치일 수 있으니까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느낀 감정이 단순한 불안의 결과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통제되지 않으면 더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뿐만 아니라, 정신질환과 성적 충동의 상관관계도 고려해야 해요. 특히 열성씨처럼 불안감이 높고 충동 조절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성적 충동이 잘못된 방식으로 표출될 가능성이 더 커지기 마련이에요. 심지어 이런 성적 충동은 유전적으로 자녀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연구에 따르면, 정신질환을 가진 부모의 자녀가 같은 정신질환을 가질 확률이 약 50%에 달한다고 해요. 만약 열성씨가 지금의 상태를 방치하고 아이를 갖게 된다면, 그 아이 역시 같은 문제를 겪을 확률이 높아지는 거라구요."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생각에 잠겼다. 내가 단순히 불안과 성적 충동을 경험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이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 그리고 나아가 나의 아이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이미 아이에게도 나의 이러한 성향이 이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이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선생님, 저는 이미 아이가 있습니다. 제 아이도 이런 성향이 대물림되었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네요. 그런 상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조기에 증상을 발견하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해요. 학교에서 심리검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또다른 이유이기도 하구요."
"우리나라 저출산 국가잖아요. 그래서 아이를 많이 낳으면 칭찬을 받을 줄 알았어요. 그래서 낳았는데... 이런 문제가 있을 줄은 몰랐어요. 아이들에게도 너무 미안해요."
"남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출산을 하는 것은 건강하지 못한 일이에요. 임신과 출산이라는 숭고한 가치가 건강한 정신을 가지고 있지 못한 분들에 의해서 훼손되고 있어요. 그래서 예방적인 차원에서 불임수술과 같은 방법을 고려할 필요가 있죠. 열성씨 같은 경우, 성적 충동을 통제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추가적인 아이를 갖는다면, 이미 태어난 자녀에게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추가적으로 부여될 가능성이 높고, 자녀들에게 부정적인 환경에 노출되어 정신과적 문제가 발현될 가능성이 더 커질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불임수술은 그 자체로 열성씨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어야 할 필수 의제가 되어야 해요."
나는 잠시 침묵했다. 불임수술이 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일 수 있다는 생각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상담사의 말은 분명했다. 내가 지금 이 충동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까지 위험해질 수 있었다. 성경에도 쓰여있었다. 네 팔과 다리가 천국으로 가는데 장애물이 된다면 잘라야 되고, 네 눈이 너를 천국으로 인도하는데 걸림돌이 된다면 뽑아버리라 했다. 내가 나의 충동을 제어할 수 없다면 욕망의 덩어리를 제거하는 것이 옳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알겠습니다. 정신과 상담을 받아볼게요. 그리고 불임수술 및 성욕제거수술도 고려해 보겠습니다." 나는 결심했다.
상담사는 나를 안심시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선택하셨어요, 열성씨. 정신과 상담을 통해 적절한 치료를 받고, 충동을 관리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불임수술 및 성욕제거수술도 본인과 주변 사람들을 보호하는 예방적인 방법일 수 있으니 신중하게 고려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