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덤벼라 건방진 세상아.
나의 노래(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 간호사들 수(sue) 많이 걸려.
학생 시절부터 자주 들었던 말이었다. 그때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간호사 생활을 하면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암환자들을 주로 대하는 나로서는, 작은 실수를 해도 환자와 보호자들이 나를 이해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덕분에 법적 분쟁에 휘말릴 일은 없었다.
* 법적 분쟁이 없었던 이유
나는 일을 못하는 간호사였지만, 주변 사람들이 나를 끝내 포기하지 않았기에 간신히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 내가 실수할 때마다 동료들이 그 빈틈을 메워줬다. 그들은 내게 모진 말을 했지만, 동시에 나를 지켜줬다. 환자의 안전이 걸린 문제였기에 내가 우울감에 빠질 틈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이겨내야 했다. 나에게 미안하고, 그들에게도 미안했다.
#유는 살아있는 시크릿의 증거요, 대한민국 평균 이하 고문관들의 희망입니다.
끌어당김의 법칙
론다 번은 그의 책 시크릿에서 말하길, "간절히 소망하고, 이미 이루어졌다고 믿으면, 우주의 힘이 그것을 끌어온다"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말을 믿을 수 없었다. 현실은 시궁창이었고, 헛된 희망을 강요하는 사람들은 사기꾼 같았다. 나는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했다. 누군가 나를 불쌍하게 여겨 구원해주길 바랐다.
그러던 어느 날, 유재석의 "말하는 대로, 생각한 대로"라는 노래가 내 머릿속을 스쳤다. 그는 대한민국 방송계의 일인자가 되었고, 그의 말처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나를 변화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일어서겠다고 결심했다.
결국 태움도 한순간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를 괴롭히던 레지던트는 4년 수련을 마치고 병원을 떠났다. 새로 온 레지던트는 조금 더 부드러웠고, 나를 존중해줬다. 혼나는 횟수도 줄어들었고, 점차 내 자리를 찾아갔다.
* 어느덧 세 아이의 아빠
나는 8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했고, 어느덧 세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결혼 생활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고 있다. 세 아이가 우리 가족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래! 열성이야! 이거지!
어느 날, 레지던트가 나에게 말했다.
"그래! 열성이야, 이렇게 하자. 오늘처럼만 하자."
늘 욕만 먹던 내가 처음으로 인정을 받았다. 물론 내일이면 또 욕을 먹겠지만, 그날만큼은 칭찬을 받았다.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나타나면서, 나는 조금씩 성장했다.
"네가 휴가 갔을 때, 네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어."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이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어리바리한 나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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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동 입원일지 07
드디어 퇴원을 앞두고 있었다. 오랜 시간 이곳에 갇혀있던 나는 이제 세상으로 나갈 준비가 되었다. 그동안 겪었던 수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간호사 선생님은 퇴원 서류를 준비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조열성 씨, 이제 퇴원이네요. 축하드려요. 그동안 참 힘드셨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의 고통과 혼란이 한순간에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저 퇴원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는 문제들과 싸워야 했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성충동이었다.
병동에 있을 때, 나는 나의 충동을 억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완벽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성충동을 완전히 억제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거세 수술을 받겠다고. 이는 내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다.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이었고, 그만큼 어려운 결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아무도 해보지 않은 일이니 내가 해봐야죠,"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는 이 결정을 통해, 나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들고, 더 이상 성충동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이는 단지 성충동 억제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나 자신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과정이었다.
퇴원을 하며 나는 병동 밖 세상으로 다시 발을 내디뎠다. 이번에는, 과거의 나와는 달랐다. 이제 나는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고, 정신방역운동을 이끌 결심도 더 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