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고통: 외전(8)
이어령 선생은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에 깃든 탁월한 정신에 대해서 자주 언급했다. 그중에서도 서양과 동양의 줄타기 문화를 비교하는 내용은 교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전문성’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특히 서양과 동양의 ‘외줄 타기’ 문화에 대한 그의 설명은, 교사가 추구해야 할 전학공의 본질에 이를 수 있는 저류지이다.
서양의 줄타기는 목숨을 걸고 한다. 일단 거대한 절벽의 양 끝에 외줄을 걸어놓고, 줄에 최대치의 긴장을 부여한다. 그 긴장 위를 기다란 봉을 든 전문가가 위태로이 걷는다. 줄이 그토록 높이 걸려있으니 구경꾼들은 말 그대로 구경꾼에 머문다. 줄타기 꾼의 목적은 오로지 반대편에 도착하는 것이다. 뒤로 물러서거나 줄 위를 뛰거나 그 위에 잠시 앉은 여유는 허락되지 않는다. 그런 멈춤과 되돌림은 그 자체로 ‘실패’로 간주될 뿐 아니라, 신나게 하늘로 솟아올랐다가는 곧바로 저세상에 착지를 해야 하는 불안을 감수해야 한다. 대중과 거리 두고, 오로지 목표만을 위해 전진하는 ‘고립된 전문가’, 이것이 서양이 추구하는 전문성이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줄타기는 그냥 일상이다. 마당에 낮은 솟대를 설치하고 거기에 줄을 건다. 관중은 줄타기꾼 바로 아래에서 그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울고 웃는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줄타기꾼은 줄 위에서 점프도 하고, 뒤로도 간다. 반대편은 목적지가 아니라 줄타기꾼이 늘어놓는 서사의 장치일 뿐이다. 우리나라의 줄타기는 대중과 소통하며 일상의 행위이며, 그러하기에 우리의 전통적 전문성은 일상과 얼마나 잘 연결될 수 있으며, 자신의 메시지가 대중에게 얼마나 잘 스며들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지금의 교육청에서 요구하는 ‘전문적학습공동체’의 ‘전문적’은 서양의 전문성이다. 맹목적이며, 결과 지향적이며, 일상을 소거한다. 이것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에는 적용될 수 있으나 ‘이유’를 추구하는 교사에게 적용해서는 안 된다.
이제 ‘전문적’이라는 말은 나를 둘러싼 공동체와 연결될 수 있는 힘, 자신의 서사를 연결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힘, 그리하여 교사로서의 정체성과 일상의 나를 부드럽게 연결할 수 있는 힘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장학사들이 유명한 강사를 불러서 교사들에게 ‘수업 전문성’, ‘에듀테크 전문성’, ‘미래교육 전문성’을 말하면 말할수록 교사의 삶은 낮은 솟대가 아닌 절벽에 매달리게 된다. 교사의 전문성을 기대한다면, 교사들이 자신들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나누고, 그 안에 녹아있는 무수한 ‘멈춤과 나아감’, ‘개입과 지켜봄’, ‘가르침과 배움’의 순간을 자신만의 언어로 해석할 수 있도록 믿고 지지하면 된다.
나는 종교를 믿지 않지만, 전학공 관련 공문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기도한다.
일상이 개념에 가려지지 않기를.
설렘이 긴장에 물러나지 않기를.
장학사 자신들도 제발 좀 전학공을 치열하게 해 보기를.
아무래도 마지막 기도는 닿지 않을 것 같다. 종교를 믿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