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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밭의 정선생 Oct 19. 2024

3. 동그랗게 웃는 사람들

희망은 몸으로 전해진다.

J와 K는 나에게 곧장 걸어왔다.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곧은 걸음이 둘의 공통점이다. K가 잠시 머리를 쓸어 올리는 사이 J는 우리 학년 연구실에 가보자고 했다. 갑자기 왜 연구실을 보자고 하시지?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멍해져 있는 사이, 문득 텅 비어있던 연구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뭔가 이상했다. 연구실에 책상과 의자를 비롯하여 아무런 집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J는 연구실로 걸어가는 동안에 겨울방학을 이용해서 3학년과 4학년 연구실 ‘리모델링’을 하고 있는데 그 공간을 어떻게 채우면 좋을지 교사들의 의견이 궁금하다고 했다. K는 3학년 소속이고, 나는 4학년 소속이기에 연구실에서 직접 이야기를 나누자는 것이었다. J는 커다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그동안 우리가 보아왔던 ‘삭막한 연구실’은 제발 잊어버리라고 말했다.


  ‘삭막한 연구실’이라. 그러고 보니 그랬다. 그곳은 다양한 회의와 학년의 일들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자 교사의 삶이 모이는 곳이다. 그러나 내가 보아왔던 학년 연구실은 모두 삭막했다.  연구실은 학교에서 가장 예산을 쓰지 않는 곳이자, 가장 관심을 가지지 않는 공간이다. 연구실의 집기는 폐기처분 하려고 모아두었던 테이블과 의자로 채워졌고, 어두컴컴한 조명과 잘 닫히지 않는 창문으로 채워진 연구실은 ‘방치된 교사의 삶’을 그대로 투영하는 공간이다.




  내가 디뎌온 연구실을 떠올리고 있던 사이 J는 따뜻한 연구실, 오고 싶은 연구실, 따뜻한 연구실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했다. 연구실 공간 구성을 그림으로 그려주면 행정실장과 의논하여 최대한 그렇게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며 환하게 웃으셨다. J의 얼굴에 퍼지는 동그란 웃음을 지켜보며 그가 건넨 어색한 단어들을 떠올려보았다. ‘편안한, 오고 싶은, 따뜻한’이라는 말은 교사에게 매우 낯선 단어였다. 그리고 내가 살아갈 공간을 구성할 가구와 공간 배치, 심지어는 공간의 톤과 느낌까지 오로지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권리이자 상식이었는데, 나는 교사로 14년을 산 이후에야 이 상식에 겨우 닿을 수 있었다.


  J는 K와 상의하여 공간 배치도와 가구의 종류를 함께 정하라고 하고, 자리를 떠났다. K는 개인 옷장과 싱크대는 꼭 있으면 좋겠다고 말해주었다. 옷장 하단에는 교사들이 가방을 넣어둘 수 있는 작은 사물함도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학년 선생님과 미리 상의한 내용을 자세히 말해주었다. K와 나는 연구실에 놓일 편안한 쇼파와 학습 준비물을 정리할 공간을 함께 이야기 나누며 텅 빈 연구실을 구석구석 살폈고, 그 사이 K는 교방에서 연구실이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설명해 주었다. 남은 이야기는 내일 하기로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다음날이었다. 오전에 이전 학교에 가서 업무 인수인계를 하고 있었는데 다급하게 전화벨이 울렸다. 받아보니 K였다. J가 공사 관계자를 학교로 불렀으니 어제까지 협의한 내용이 실제로 구현 가능한지 함께 회의를 진행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나는 인수인계를 한참 하고 있던 중이라 선뜻 가겠다고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K는 그 망설임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마침 집이 학교 근처라 심심해서 학교에 나왔던 차였고, 마침 연구실을 둘러보는 중이었으며, 마침 어제 이야기 나누던 학습 준비물 수납공간에 대한 학년 선생님들의 의견을 정리하던 중이었으며, 마침 3학년과 4학년 연구실의 공간이 비슷하니, 우리 연구실까지 같이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새학년맞이 세미나로 정신이 없었을 텐데, 이전 학교 일을 천천히 마무리하고 오라며 따뜻하게 마음을 다독여주었다. K의 화법은 무언가 달랐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의 말은 입이 아닌 몸에서 나온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유 없이 따뜻했고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학교에서 누군가의 말을 듣고 마음이 편해진 경험을 처음이었다. 참으로 이상했다.




  다음날 학교에 가니 K도 있었다. 나는 K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했다. 그러자 K는 머리를 쓸어 올리며 환하게 웃을 뿐 별 말을 건네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K는 어제 줄자를 가지고 우리 연구실에 와서 나와 함께 이야기 나누었던 가구와 쇼파의 배치, 그리고 싱크대가 들어갈 공간에 대한 배치가 가능한지를 업체 관계자와 직접 체크한 것이었다. K의 배려에 기대어 우리는 공간 구상을 이어 나갔고 드디어 최종 공간 배치도를 완성했다. 그렇게 나는 맞춤형 소파와 맞춤형 옷장, 그리고 맞춤형 수납장이 있는 연구실에서 따뜻한 교방 살이를 시작할 수 있었다.


  리모델링 대첩을 계기로 나는 K의 교실에 자주 찾아가게 되었다. 궁금한 것이 있어도 가장 먼저 물었고,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때도 K를 먼저 찾았다. 그럴 때마다 K는 언제나 말이 아닌 몸을 먼저 움직여주었고, 자신의 경험과 기록들은 아낌없이 나누어주었다. 그가 건넨 기록과 이야기들에는 작은 꾸밈도 없었는데, 그것은 말이 아니라 모두 ‘몸으로 만들어낸 온기’였다. 나는 K의 몸에 기대어 낯선 결정들이 주는 차가움을 비껴갈 수 있었으며, 그렇게 교방에서의 내일이 기다려졌다. 교사가 학교에서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것은 정책 때문도 아니고 점수 때문도 아니고 성과급 때문도 아니다. 교사는 사람에 기대어 희망을 노래할 수 있고, 사람의 온기에 닿아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삶의 본질을 가장 적나라하게 그려내는 감독인 조나단 글레이저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도 희망은 사람의 온기에서 나온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모든 불이 꺼지고 세계가 어둠에 잠길 때, 한 소녀가 등장하여 수용소 노동자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그들이 일하는 곳에 숨기는 장면일 것이다. 감독은 이 장면을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했다.


  이동진 평론가는 이 소녀의 모습을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되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치가 지배한 세상, 어둠이 내린 일상, 그리하여 희망을 소거된 시대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는가? 이 영화는 그것을 ‘사람의 온기’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희망은 거창한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온기를 전하는 일에서 오는데, 영화는 이 온기를 온몸으로 뿜어내는 소녀의 존재를 담기 위해서 ‘열화상 카메라’를 사용한 것이다. 밤이 아닌 낮에 표현할 수 있는 온기도 결국 몸에서 나올 것인데, 우리는 그것을 ‘웃음’이라고 부른다.


  교방에서 지내면 유독 이곳의 교사들은 웃음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교방 사람들의 무수한 미소를 지켜보면서 내린 결론은, ‘그들의 웃음은 동그랗다’이다. 자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교방 사람들은 그냥 동그랗게 웃었다. 그 웃음은 상대보다 먼저 나서는 웃음도 아니고, 겉만 웃는 텅 빈 웃음도 아니며, 대가를 바라는 웃음도 아니었다. 그들은 나와 함께 웃었고, 얼굴이 아닌 몸으로 웃었으며, 따뜻하게 웃었다. 함께, 그리고 온기가 더해진 웃음은 그 자체로 동그랗게 보였다. 동그랗게 웃는 사람, 나는 교방에 와서 삶의 목표가 이걸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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