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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밭의 정선생 Oct 08. 2024

b. 나를 울릴 뻔한 트레이너

잊고 있던 ‘현재의 나’

O는 덩치에 비해 발소리가 매우 작았다. 특수부대 출신이라 그런지 조용하게 다닌다. 아무 생각 없이 러닝머신을 뛰고 있다가, 갑자기 다가선 그에게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더 놀란 것은 그가 나에게 건네는 처음 말은 언제나 같다는 사실이었다. O는 언제나 나에게 “오늘 컨디선 어때요?”라고 물으며 운동을 시작한다.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때 조금 어색했다. 교사에게 ‘오늘’과 ‘컨디션’은 아주 낯선 단어이기 때문이다. 교사의 삶에서 가장 먼저 빼앗기는 말이 ‘오늘’과 ‘나의 상태’이다. 학교는 삶과 성장을 위한 공간이어야 하지만, 학교에는 이를 돌보는 문화가 전혀 없다. 아이와 관리자를 돌보는 문화는 있으나 교사를 돌보는 문화는 아리도록 없다. 학교는 삶보다 업무가 우선되는 공간이자 성장보다 경쟁이 지배하는 곳이다. 학교가 업무와 경쟁을 지속하는 동안 교사의 삶은 현재에 머물지 못하고 ‘과거’과 ‘미래’를 정신 없이 오간다. 


학교를 지배하는 관료적 문화는 현재의 결핍을 극복하는 새로운 시도를 억누르기 위해서 ‘과거의 방식’을 강요한다. 그 방식들은 구성원들이 숙의하여 만들어낸 문화가 아니라 ‘업무’를 더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도달한 강압적 문화가 대부분이다. ‘과거’를 바꾸지 않으려는 오묘한 문화속에서 교사는 현재 자신의 고통을 꺼내놓기 힘들게 되었고, 그렇게 교사는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굴레〉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과거의 굴레에 갇혀 현재의 상처를 덮는다.


학교가 교사의 현재를 질식시키는 방식은 교육 정책마다 붙어다니는 ‘미래’라는 단어 속에도 녹아 있다. 교육청과 학교는 오랜 시간 ‘낡은 것’을 재활용해왔다는 서글픈 ‘현실’을 덮기 위해서 교사의 현재에 ‘미래’라는 말을 강박적으로 섞어버린다. 손에 잡히지도 않는 ‘미래교육’을 하달하는 시간 동안, 교사들이 지금 겪고 있는 결핍은 배부른 소리가 되어버린다.


이런 문화 속에서 교사가 지닌 저마다의 ‘나의 상태’는 누구도 묻지 않는 영역의 것이자 쉽게 꺼내서는 안 될 것이 무언가가 되었다. 교사는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수 없고,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할 수 없으며, 마음이 헛헛해도 그 허무를 꿀꺽 소리내어 삼키는 존재로 산다.




그렇게 ‘현재의 나’를 오랜 시간 잊어버리고 살아온 나에게 O가 물어준 그 말은 나의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했다. 살짝 눈물이 고이고 감정을 끌어올리려던 시점에 O는 자비 없는 스트레칭을 선사했다. 매트로의 하강을 거부하는 나의 상체를 O는 큼직한 손으로 꾸욱 소리를 내며 눌러주었는데, 그 아픔에 잠시 고여있던 눈물은 소리 없이 사라지고 비명이 흘러나왔다.


운동을 하면서 O가 매일 나의 컨디션을 물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는 나의 컨디션에 따라 그날의 운동 코스를 조금씩 바꾸었다. 어깨가 아픈 날이면 어깨에 무리가 가지 않는 기구를 선택했고, 허리가 아픈 날에는 허리가 굽지 않는 운동 위주로 수업을 진행했다. O는 언제나 나의 컨디션에 맞게 운동 상황을 미세하게 조정해나갔고, 나는 그 미세한 변화에 기대어 현재의 나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는 눈앞에 있는 존재인 나에게 완전히 집중해주었고, 과거와 미래의 시간에 지배당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는 눈빛으로 수업을 이어나갔다.


O가 매일 건네는 담백한 물음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바뀌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은 새로운 변화를 긍정하는 삶의 태도이자 삶에 깃든 과거를 외면하지 않는 태도라는 것을 배웠다. 동시에 변화에 깃든 가능성을 조금씩 모아서 나만의 미래를 그려 나가는 담백한 기술이라는 것을 배웠다. 결국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은 과거에게 보내는 겸손한 악수이자 미래와 하는 수줍은 포옹이었다.


헬스장을 나오면서 나를 울릴 뻔한 O의 말을 잊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그가 건넸던 말을 동료 교사들에게도 자주 건네기로 마음먹었다. 내 말은 들은 선생님이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좋다. 현재를 빼앗긴 교사의 삶에 ‘오늘’이라는 말을 돌려줄 수 있다면, 그 말은 차곡 차곡 쌓여서 반드시 ‘현재의 삶’이 되리라 믿는다. 교사가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교사는 진정 소리 내어 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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