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05월 서울 오픈데이
도하도착
5월 29일 인천국제공항 출발해서 6월 1일 도하국제공항 도착하니, 트레이닝 수업의 연속입니다. 6월이 이틀 남았습니다. 로스터(비행 스케줄) 확인, 여권과 회사 ID 카드 수령 및 지문인식, 내일은 A320 시험이 있습니다다. 점점 유니폼을 입을 고지가 보이는 듯 싶습니다.
운칠기삼
'운이 따른 거겠지.'
네 명의 면접관 중 가장 친근하게 느낀 면접관이 있어서 대기하면서도 그녀에게만 시선을 두었습니다. 한 줄씩, 한 칸씩 면접관 앞으로 나아갑니다. 대기를 하다가 자신의 순서에 불러주는 면접관에게 다가가면 되는데, 제 앞에 있던 친구가 제가 친근하게 느낀 면접관에게 다가갑니다. 이대로라면 저는 영국출신의 면접관에게 불려갈 거 같습니다. 영국 면접관은 발음이나 억양 때문일지 제가 대하기 어려울 거 같습니다. 영국 면접관 쪽은 어쩐지 눈길이 잘 가지 않았는데, 그 면접관에서 가 있던 지원자가 자기소개서를 수십 페이지로 정성껏 준비를 해오다보니, 스몰토크 시간이 길어지는 사이에 제 앞의 지원자는 이미 스몰토크를 마친 상황이었습니다.
"Come here."
제가 대기를 하면서 한없이 시선을 주었던 그 면접관이 저를 부른 것이었습니다. 흠칫 놀라지만 그 면접관도 느낀 거 같습니다.
저 친구는 내가 합격을 시켜줘야겠다?
제가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그 면접관도 느꼈을 거 같고,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두번째 면접
유선상 통보로 두번째 면접의 날짜와 시간만을 듣고 새로이 일러준 지원번호는 미처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현장에서 확인하려 했는데, 1차 스몰토크 때 저를 합격 시켜준 그 면접관만 보이지 않습니다. 다시 봤다면 고맙고 반갑게 인사했겠지만, 다른 한편 전략적인 생각이 떠오릅니다.
'아랍인사로 다시 어필해도 되겠다.'
1차 스몰토크(small talk)때 아랍인사 하면서 저를 어필하며, 아랍식 레스토랑에서 일한 경험을 백분 활용할 기회가 되어 합격점을 받은 이유이겠지만, 2차 면접인 암리치(arm-reach) 재면서 그 짧은 순간에 다시 같은 방식으로 저를 어필한다고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두번이나 아랍 인사를 할 수는 없었을테니까요. 그런 생각이 드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집니다.
필기시험에서 독해는 탈락의 고배를 맛본 벽과 같았지만, 이번에는 통과하여 2차 디스커션 면접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도하에서 어려울 것 같은(challenging) 10가지 일을 고르시오."
"날씨가 더우니 더위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할 거야." 시작은 무난했습니다.
"그래. 맞아. 우리 선크림 챙겨가자."
정황상 맞는 말인데, 이 말로 인해 저희 팀의 주제는 바뀌어 버렸습니다. 바로 도하에 가져가야 할 10가지 아이템으로 말입니다. 정정하는 사람이 없으니, 탄력 스타킹, 덤벨까지 나왔습니다.
2차 디스커션의 또 다른 주제는 상황별 대처방법을 찾는 거였습니다.
룸메이트가 너무 시끄러운데 비행다녀와서 피곤하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2차 주제는 무난하게 시간 안에 완료되었고, 그룹토론을 할 때 저는 적어내는(writer) 역할을 맡았습니다. 토론 중간중간 정리해야 하는 말들이 있기에 상대적으로 발언권과 발언분량이 많아질 수 있어, 행여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기회를 덜 주지는 않았을까 싶었고 그 점이 조심스럽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첫번째 주제의 방향이 어긋난 건 아닌지 걱정을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디스커션 주제를 이탈한 경우 팀 전체가 탈락된 경우가 있다고 들었기에 긴장하며 결과를 기다렸고, 2명을 제외하고 모두 통과하니 한시름 놓았습니다. 다만 탈락한 2명은 예상 외 였는데, 영어도 유창하고 자신의 의견 표현도 잘했었는데, 결과적으로 탈락이 된 걸 보니 팀 면접관 입장에서 자신의 말만 했다는 인상을 받았던 거 같습니다. 다른 사람도 배려해가면서 전체적인 디스커션 흐름에 몰입하는 게 그룹 디스커션의 합격팁일 거 같습니다.
3차 파이널 인터뷰
짧게나마 여러 질문을 받았는데 기억을 해내려 하니 누락된 부분이 있어서 아쉽습니다. 초반 면접 분위기와 가장 기억에 남는 일관련 경험을 적고 특이경험에 대해 언급한 게 기억이 납니다. 저는 아침 시간대를 예약했고, 한시간 일찍 도착했었습니다. 순번은 10시 30분 이건만, 면접장 분위기라도 느껴볼 수 있을까 싶어 조금 일찍 올라가 보았습니다. 마침 10시 지원자가 도착하지 않은 상황이라, 면접관이 말해줍니다.
"지금 우리는 준비되어 있으니 너 준비되면 노크해."
파이널 서류를 손에 쥐고 작지만 면접관들 요기 하라고 준비한 스낵을 한 손에 쥐고 들어가려 합니다.
"너 짐이 많으면 짐을 다 들고 들어와도 좋아."
보통은 파이널 인터뷰 방에 들어가면 복장, 네일, 향수 등 마음을 편하게 해 주려고 칭찬일색으로 가득하다해서 저도 신경을 썼습니다. 카타르 항공사 유니폼 색상인 버건디 치마, 분홍색 블라우스, 버건디에서 분홍색으로 이어지는 네일까지, 가볍게 얘기해줄 거라는 기대는 면접관의 돌직구에 잠시 당황했습니다.
"너 몸에 흉터나 태어날 때 생긴 흔적은 없니?"
긴장이 되기는 하지만 손 앞으로 펴 내보였습니다.
"나 흉터는 없어."
자리에 앉고 보니 제가 신고 온 신발은 아이보리 구두, 면접장에는 검은색을 바꿔 신고 들어가야지 싶다가 급한 마음에 그냥 들어온 거였죠.
"나 긴장되나봐. 신발 갈아신어야 하는데."
"괜찮아. 오히려 지금 입고 있는 옷이랑 색이 더 어울려."
"그래? 고마워."
마음이 한결 놓입니다.
"자, 이제부터 너를 더 알아보기 위해 우리가 질문을 할거야. 나는 너에게 질문할거고 옆에 있는 이 친구는 나와 너가 말한 내용을 적을거야. 준비됐니?"
"Yes!"
파이널 서류를 훑어보면서 하나둘씩 짚어가며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너 최근에 한 일은 스페인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 한 거 있네. 기억나는 일이 있니?"
"나 그곳에서 일한 건 맞는데 일한지는 채 몇 주 되지 않았어. 대신 그 전에도 비슷한 아르바이트를 한 적 있는데 아랍 레스토랑이야. 3 개월 일을 했는데 그 곳의 경험에 대해서 말해도 될까?"
"응. 그래 당연하지. 아랍레스토랑 꽤 이색적이다."
"그래? 나도 아랍 문화 경험해보려고 일한 거였는데 사장은 이라크 사람. 여자친구는 알제리. 주방장들은 시리아 출신이었어. 꽤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있었지?"
"와. 한국에 그런 곳이 있다는 거니?"
"응. 이태원이인데, 다음에 시간이 되면 한번 가봐. 거기에는 외국 레스토랑이며 바가 많아서 네가 가도 한국이 아닌 외국 분위기를 충분히 느낄거야."
"응. 그래. 그럼, 일을 하면서 실수한 적 있니?"
생각하는 듯 시간을 벌지만 정말 자주 나오는 질문이기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생각해 둔게 있었습니다.
"응. 있었어. 우리 메뉴중에 치킨 브리야니와 램 브리야니가 있었어. 내가 치킨 브리야니를 주문받고 대문자 C라고 적어서 주방에 전달하는데 음식이 나오고 보니 램 브리야니인거야. 내가 쓴 대문자 C를 주방장은 L로 본거지."
"그래서 어떻게 했니?"
"손님한테 사과 말씀을 드리고 그렇게 오래 걸리는 음식이 아니었기에 다시 만들어서 서비스했어.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치킨은 CH로 램은 L로 통일해서 쓰기로 했어."
"응. 잘했어. 그럼 아랍 레스토랑에 있으면서 문화적으로 다르게 느낀 건 뭐가 있었니?"
역시 자주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이지만, 조금 당황했습니다.
"아랍 사람들은 차 문화가 상당히 발달되어 있는 거 같아. 메인 식사가 모두 마치고 나서는 차를 주문해서 더 남은 이야기를 나누는 게 우리문화와는 조금 달랐어."
답변이 조금 허술했었나봅니다.
"혹시 다른 예를 들어줄 수 있니?"
당황했지만 전에 최정화 한불 동시통역가께서 신문 칼럼란에 동양과 서양의 식문화 차이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생각났습니다.
"응. 아랍의 식문화는 시간 순으로 이뤄지고 한국의 식문화는 공간 순으로 이뤄지는 듯 싶어. 이 곳에서 일하면서 메뉴판을 봐도 애피타이저-메인메뉴-디저트 순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요리가 끝나면 접시를 치우는 동시에 음식을 내놓았어. 하지만 한국에서는 한 상에 차려서 먹는 문화라서 동시에 식사를 시작해서 끝내지."
대답이 크게 주제를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대답을 하고 나서야 가장 큰 문화적 특징 중 기억에 남는 건 할랄 문화였다는 걸 언급했다면 더 많은 점수를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랄문화는 이슬람 방식으로 육류를 도축하는 것을 말하는데, 도살하기 전에 코란을 읽는 절차로 그들의 규정대로 엄격하게 진행되며 피는 모조리 뺀다고 들었는데, 마침 제가 일하던 레스토랑은 할랄 인증서를 가지고 있기도 했지만, 실제로 일하면서 한 손님이 생선만 드신다며 가게를 나가셔서 더 기억에 있었습니다. 그 때 할랄이라는 단어에 대해 처음 접했으니 분명 이 소재는 저에게나 듣는 면접관에게나 참신한 소재였을 거라는 생각이 면접을 마치고서야 들었습니다.
"너 독일에서도 1년 있었구나?"
"응. 교환학생으로 간 거였는데 같은 반에 친구들도 참 다국적이었어. 독일어 공부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정말 기억에 남는 1년이었어."
"다국적이었다고? 어디 출신들이었니?"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권도 있었고 일본. 중국. 한국 아시아 국가도 있었고 브라질에서 온 친구도 있었어."
"좋은 경험했구나."
"여기까지 인터뷰는 끝났어. 혹시 하고 싶은 말 있니?"
"나 이 곳에 인터뷰 보러 온거 너무 감사해. 이거는 견과류 스낵인데, 인터뷰 하는 동안 먹으면 좋을 거 같아서 준비했어. 몸에 좋은 견과류와 꿀로 만든거니 한 번 먹어봐."
"응. 고마워."
인터뷰 방을 빠져나왔습니다. 인터뷰 마치고 일주일 동안은 면접장면을 떨쳐낼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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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해볼 걸.'
'아이컨택 가능한 계속 유지할 걸.'
기억을 떠올린다며 눈이 돌리는 건 자연스러운 건데, 행여 그 어떤 거라도 진솔하게 보이지 않았을까봐 아쉬운 부분만 머릿 속을 채웠습니다.
그렇게 12일 후
5월 19일, 합격메일을 확인하니, 그간의 고생이 눈물로 흐릅니다. 마음고생하며 밤에 잠 못 든적도 있는데 합격 통지 받은 오늘만큼은 잠에 안들어도 좋을 거 같습니다. 도하에 가져갈 수 있는 최대 120kg 짐을 꾸리고 29일 도착한 도하, 교육이 힘들고 성향이 다른 플랫메이트와 같이 공간을 공유하며 살아가야 하는 게 어렵기도 하지만, 제가 원하던 삶이기에 그 삶대로 살기 위해 트레이닝 기간은 필요한 이유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