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교사
13시간 날아오는 비행, 레스트 시간대가 주어지면 그 긴 시간을 같이 해야 하는 크루가 정해진다. 이번 나의 짝은 스테판, 영국출신이지만 스페인의 말라가라는 곳에 산다고 한다. 키는 꽤 크고, 듬직하니 브리핑에서부터 그가 신경을 쓰는 부분이 있다. 바로 승객 프로파일, 좌석마다 이름을 적어내는 건 기본이고, 성별 구분과 출신까지 깨알같이 적어낸다. 열심히 하는 모습이나, 크루 버스에서 짐을 내리는 아저씨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행동이나 비행 중 승객에게 다가가 편안하게 말을 건네고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은 좋은 거 같았다.
그는 승진한 지 4개월차, 언제 쉬는지에 따라 크루의 손이 바쁘고 아니고가 극명하게 갈린다. 나는 두 번째 레스트를 선호하는데, 지난번과 이번 모두 첫 번째 레스트로 배정된 거라 첫 서비스를 공통적으로 마치고 바로 쉬러 올라가야 한다. 3-4시간이 지나 캐빈으로 내려올 때는 승객들도 허기짐에 하나둘씩 깨기 시작하는 시간이라 손이 바빠진다. 이 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두 명이서 비지니스 클래스 3줄, 약 20명을 담당하니 한 명은 주방에서, 다른 한 명은 캐빈에서 맡는다. 그가 손이 덜 익기도 한데, 사람을 좋아하다보니 주문을 넘쳐서 받아온다.ㅋㅋㅋ 음식을 준비하는 거야 무리는 없지만, 결국 본인이 힘에 부친다.
"이전 비행에서 주방 맡은 크루는 잘 도와주던데, 너는 왜 도와주지 않아?"
"그릇 정리하는 건 몇 초 걸리는 일도 아니고, 네가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사소하지만, 한 차례 말다툼이 일어난다.ㅋㅋㅋ 작은 일에 감정소모 안하는 크루는 어떤 일이든 비행 끝나면 다시 볼 일 있겠냐며 무관심을 동반한 신경끄기 모드로 가동하지만, 부딪힐 성격이라면 부딪힌다.
잭 다니엘, 미국의 위스키를 부르는 버번이다. 내가 교육 받을 때에는 burbon으로 배운다. 그리고 내 앞에 앉아 있는 줄리아나 역시 burbon이라고 스펠링을 집어본다.
"가르쳐준 사람 누군데?"
"J 인스트럭터."
"그 사람 진짜 모르고 가르쳐 준거네. 버번은 burbon이 아니라 bourbon이 맞아."
그의 이어지는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정확히 말해 그가 선택한 단어, 그가 말하는 논리에 반감이 든다.
"그 사람은 인도 출신이고, 나는 유럽출신이잖아. 누가 맞겠니?"
그의 스펠링이 맞다는 건 집에 와서 확인하지만ㅋㅋㅋ 맞는 이야기를 하고도 동의를 못 얻는 화법은 아쉬운 거 같았다. 좋은 첫인상을 유지할 수 있는 말의 태도나 단어의 선택이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시간 안에 서비스를 마치고, 승객에게 최대한 휴식 시간을 드리는 건 공통적이지만, 일괄적인 서비스를 빠릿하게 해내야하는 이코노미 클래스보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인지, 비행 후 내가 떠올리는 소재나 기억을 더듬어봐도 달라지는 거 같다.
"오늘 같이 일한 부사무장 진짜 일 안해요."
"스페셜 밀(special meal)이 128개면 어떻게 서비스 하라는 거에요?"
"옆 크루가 가운데 줄을 서비스 안해서 제가 다 한 거 있죠."
비행 후 한국크루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이코노미 클래스 크루는 주로 부사무장이나 같이 일하는 크루가 게으르다거나 자신이 일을 많이 한 거에 대한 이야기가 70프로를 넘어간다.
비지니스 클래스에서는 이렇다할 에피소드가 있다면 전보다 더 개별적인 문제같다. 내가 맡은 구역(zone)에 더 많은 승객이 있다고 해도 그게 불만의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혹은 전반적인 승객의 프로파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보다 특정 승객, 특정 크루의 일하는 방식의 차이를 확인하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