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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스민 Oct 15. 2021

비행ㅣ저스틴 라빈스

세심한 저스틴 라빈스 시그니쳐 데코레이션 

크루 리스트가 적혀있는 명단에서는 아는 사람의 얼굴은 그려지지 않는데 막상 브리핑에 들어가는 아는 얼굴이 보인다. 그의 이름이 생각나고, 아이스크림도 떠오른다. 


 '아이스크림? 그럼 미국 비행이겠네.'


 아이스크림이 식사 서비스 중간에 나오는 유일한 비행은 울트라 롱 플라이트(ultra long flight), 주로 미국으로 넘어가는 노선이다. 그가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는 장면도 곧 떠오른다. 아이스크림과 커피의 조합, 성심성의껏 음료를 만들어 내보인다. 


 "진짜 맛있을테니 마셔봐." 


 자신있게 만든 음료를 권하던 '그'이자 '그녀', 저스틴이다. 찬 아이스크림과 따뜻한 커피와의 조화, 그가 보장하는 맛이다.

 
 "너 배스킨 라빈스 알지?" 내가 확인한다.  

 "당연하지~"

 "오늘부터 '저스틴 라빈스' 해라."

 작명센스 돋게ㅋㅋㅋ그의 이름으로 샵 이름 하나 내어준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비행일 거 같다.  




 "저스틴, 뭐하려고?"

 말투는 여성스럽지 않은 그,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소근거린다. 

 "저기 쉘린 생일이라 기념해주려고 뭣 좀 만들거야." 

 "쉘린? 생일 오늘이야?" 

 "2일 전이긴 한데, 부 사무장이 축하해주고 싶다며 나한테 부탁한거야." 

 "좋아. 내가 지켜볼게."


 입사하기 전, 쿠킹 관련 클래스를 섭렵한 이유인지 같은 음식이라도 어떻게 더 먹음직스럽게 장식할 수 있는지 알고 있고, 그가 구워낸 초코칩의 바삭거리는 정도는 기존의 어떤 쿠키와도 다르다. 기내에서는 반죽이 되어 나온 쿠키를 직접 오븐에 구워 내어놓는다. 그가 겉은 바삭하면서도 안은 씹히는 맛을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온도와 시간을 알려준다.


 1. 오븐을 약 5분간 150도에서 예열시킨다..

 2. 반죽 쿠키를 넣고 6분간 100도에서 굽는다.

 3. 반죽이 막 부불어 오르는 걸 확인하면, 약 3분간 100도에서 더 굽는다.





우리네 준비물은 초코 푸딩, 장식용 과일로 쓰이는 블루베리 하나, 딸기 반조각, 초코렛 파우더, 꿀 약간, 모서리가 있는 봉투, 고디바(Godiva) 초코렛 2알이다. 준비작업으로 그가 섞고 있는 건 초코렛 파우더와 꿀 약간, 물도 조금 넣어 가루가 섞이게 하면서 꿀까지 들어가 물처럼 그냥 흐르지 않으면서 끈기가 있게 저어낸다. 


"플라스틱 봉투 하나 내줄래?"

 구경이라도 하고 있자니 공짜는 없다. 자연히 어시스트(assist)가 되어버린 나, 무엇을 위해 필요한지는 당장 말하지 않는다. 


"봉투는 모서리에 각이 잡혀야해."


세심하다.    


준비된 초코렛 시럽은 각 잡힌 봉투에 넣고 그건 베이커리 수업에서 볼 수 있을 듯 싶은, 케이크를 만들때 없어서는 안되는 도구로 변신한다. 케이크 테두리에 크림 장식을 하거나 글씨를 새겨 넣을 때 유용하게 쓰이는 것처럼. 


일단 접시를 마름모형태로 두고 가운데 초코렛 푸딩을 넣고 딸기를 위 아래로 배치하면 준비작업은 끝, 여기에 만들어 놓은 초코렛 시럽을 손이 가는대로 테둘러준다. 그리고 고디바 초코렛을 나머지 두 모서리쯤에 대칭으로 놓아주면 저스틴 라빈스 표 축하케잌이 완성된다.


쉘린의 지난 생일축하가 이어진다. 

"쉘린, 이거 쉐프 메뉴야. 쉐프 이름은 저스틴, 그의 시그니쳐(signature) 메뉴지."

작지만 사람 기분을 좋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비행한지 2개월, 자메이카 출신 쉘린이야." 

 그녀의 간단한 소개에 사무장 크리스가 묻는다. 

 "비행은 어때?"


 "좋은 날도 있고 아닌 날도 있어." 

 보통 안부 묻는 선에서 그칠테지만, 크리스는 조금 더 궁금한가보다. 

 "무슨 일인데?" 

"나 생일날 턴 비행 다녀오니 이미 자정을 넘기더라고. 베이루트 비행 알지? 쉴 틈 없이 일하고, 생일인 것도 모르고 지나간게 슬프더라." 

자기 생일만큼은 특별할 거 같은데 평범한 일상에 그치고 마니 실망어린 지난 생일, 어느 순간 감정이 무뎌진다는 건 씁쓸했나보다.
 

"그런 일은 너만 있는 건 아닐거야. 우리 의지대로 일을 하려고 이 곳에 온 거면, 다른 사람이 쉬는 날이나 축제의 날에도 일을 할 수도 있어. 여기 있는 크루들도 비슷한 경험 있을거야. 속상해하지말고 늦지만 생일 다시 한 번 축하해." 

훈훈하게 간단한 대화가 오고 가는가 싶더니, 기내 쉐프인 저스틴 라빈스의 도움을 받아ㅋㅋㅋ 마음이 전달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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