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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스민 Oct 20. 2021

여행ㅣ따까이따이의 메아리

구압빠

이코노미 크루 시절에 거의 매달 가는 비행 중 하나로 마닐라를 꼽는다. 스탠바이 때에도 심심찮게 불릴 정도이니 그 당시만해도 나에게 마닐라 비행은 적당선을 넘어선다.  


 '내가 필리핀인이라면 너무 좋지만, 한국인이잖아요.' 


 그 최종 목적지가 인천이 아니라는 사실과 한국과는 시차가 한 시간, 마닐라에서의 시간이 마치 한국의 시간을 따라 흐르는 것만 같다. 그 혹독한 마닐라 비행의 색안경을 바꿔준 계기가 생긴다. 따까이따이로의 등반이다. 나이로비를 다녀오신 한 목사님 부부, 비행시간이 워낙 지리하다보니 목사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혹시라도 기내에 한국크루가 탑승한지 물어온다. 


 "저 한국인이에요."


 도하를 경유해서 마닐라행에 한국분이 계실거라 생각을 못한 터라 깜짝스런 한국인 크루 호출에 단비를 만난 것 같고, 이어지는 한국어 대화에 비행시간은 엄두가 날 정도로 짧아지는 듯 하다. 따까이따이 활화산에 가기 위해서는 따알 호수에서 보트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마침 따알 호수 근처에 살고 계시는 목사님의 도움으로 막연하게 그리는 활화산으로의 등정은 가능해진다.    









 이 곳에서 태어나고 사는 사람들은 말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 보인다. 관광객을 위해 말을 훈련시키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발이 되어준다. 보통 말이 주변으로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으려고 눈 옆에 가리개를 하는데 이 곳에서는 그런 가리개가 따로 없다.


 "워낙 말이 어렸을 때부터 오가는 길을 걸어서 그래요." 

 능수능란하게 말을 타고 내려오는 아이들의 솜씨, 오돌도돌 올라온 돌 지형이 배경인 곳에서는 말을 타고 내려오는 아이들의 모습이 무협영화에 나올법한 장면같기도 하다.








 정상에 오르면, 코코넛 음료를 맛볼 수 있다. 코코넛 음료도 처음 먹어보지만, 그 양이 엄청나다. 0.75리터 정도 될까? 


 "다 마시고 나서는 코코넛 안에 있는 과육을 먹을 수도 있어요." 작은 숟가락을 나에게 건넨다.

 처음 먹어본 나는 어쩐지 단맛 빠진 젤리를 씹고 있는 듯 하다.  


 "구압빠." 사진 속의 여자아이가 나에게 말한다. 

 "구압빠." 나도 인사한다. 


 "저 아이 사진 찍어줘요." 이번에는 초록색 옷을 입은 아이가 나에게 말을 건다. 

 어떤 의미로든 한장 담기고 싶어한다. 


 "그럼 우리 같이 찍을까?"


 자르고 있는 코코넛 칼을 내려두고 얼굴 표정 가득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바로 인화해서 보여줄 수도 없으니 이럴 때는 바로 필름으로 확인할 수 있는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절실하다. 아이들에게 기념이 될 사진을 남겨주고 싶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우리가 같이 찍힌 한 장의 사진을 보여줄 뿐이다.  


 "필리핀 말 할 줄 알아요?"


 "네?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아까 무슨 말인지 알고 대답한 거에요?" 나에게 묻는다.


 "무슨 대답이요?"


 "아까 여자아이가 구압빠라고 할 때 말이에요."


 "아, 처음 보는 사람한테 하는 인사겠죠."


 "그래요?"


 "네. 그래서 저도 구압빠라고 대답한걸요?"


 "구압빠는 현지말로 예쁘다는 말이에요."


 '예.쁘.다.고?'


 피곤함에 윗 입술에 입술물집은 올라온 상태며, 예정에 없는 따까이따이 등반이다보니 맞는 옷도 챙겨오지 못해 나는 사모님 청바지를 빌려입고 있다. 말을 탄다고 해도 먼지가 입으로 올라올 수 있다며 목사님이 마스크 용도로 건네주신 마스크, 색상을 고르거나 할 선택은 없다. 그래서 완성된 따까이따이표 스타일, 다른 말로 적어내자면, 빨,노,초,파 크레용 스타일, 크레용 팝의 빠빠빠가 아닌 크레용의 구압빠라고 제목을 붙여도 손색이 없을 거다. 따까이따이표 스타일로 돌아가, 내가 촉이 좋아서 이런 깜짝 일정을 예상이라도 하고 최상의 모습을 선보인 날이라면 그 말 그대로 인정하겠고, 물론 아이들이 외적인 것만으로 예쁘다, 아니다 판단한 게 아니라는 것도 안다.  


 '지금 너네들이 순수하고 예쁜 나이야.' 


 아이러니하게 구압빠라는 말이 슬프게 들린다. 활화산을 등지고 그들의 장난감은 말과 코코넛이 전부인 아이들, 세상에는 더 봐야 할 아름다운 것들이 있는데 이 섬의 아이들은 활화산을 보러 오는 관광객이 그들의 일상을 조금 넓혀줄 뿐이다. 당연히 구압빠로 표현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이 처한 환경과 다른 사람에 대해 나오는 한 마디, 구압빠는 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을 표현하는 말로 들린다.  


 spread your wings!  

사진 한 장에 담아보내고 싶다. 

구압빠로 말할 수 있는 더 많은 세상을 만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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