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처음 겪는 공포와 두려움으로 심리상담을 시작했다. 첫 상담에서 선생님은 추가적인 검사를 진행해보자고 말씀하셨다. 내가 진행한 검사는 두 가지였다. 미네소타 다면적 인성검사(Minnesota Multiphasic Personality Inventory, MMPI), 문장완성검사(SCT)** 결과를 듣고 나는 왠지 웃음이 나왔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첫 문단을 옮겨보자면, 내담자는 임상적인 수준에 해당하는 정도의 불안감과 우울감을 경험하고 있으며 정서적 불안정성이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었다. 이와 더불어 건강에 대한 염려가 높은 상태로 드러나고 있는 등 정서적인 혼란감을 경험하고 있겠다. (hs=69t, d=68t, hy=60t, pt=69t, sc=63t, ma=69t) 이러한 현재의 심리적인 상태에 대한 주관적인 고통감이 큰 것으로 여겨지며, 불만족스러운 삶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소망이 큰 것으로 생각된다. (fbs=70t) 마음이 편치 못하고 혼란스러운 상태겠다. 여러 가지 수치가 있는데 35~60 사이가 정상적인 수치라고 한다. 기준에서 넘어가면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 A4용지 2장 반을 가득 채운 문장에 긍정적인 이야기는 한 줄도 없었다. 심지어 불안 점수는 92점이었고 '불안감도 극도로 상승되어 있는 상태로 보이며,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에 압도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이 덧붙여 있었다. 이 부분에서 선생님은 공황장애라는 단어를 정확하게 사용하셨다. 최근 심장 두근거림, 가슴 답답함, 소화기 장애 등 모호한 양상의 신체적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부분까지 정확하게 진단받았다. 이런 문장에 나보다 공감해주는 선생님 앞에서 마냥 편안했다. 현 상황을 분명히 마주하는 것은 썩 나쁘지 않았다. 그동안 너무 괜찮다고 스스로를 속였으니까. 이제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심각하게 불안정하고, 우울하고, 힘들다. 그럼에도 약을 먹는 것은 두렵다. 정서적 불안정성 및 신체적인 증상으로 인해 일상생활이 어려울 경우 약물 복용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는 마지막 문장에서 한참을 멈춰서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멈춰서 있다.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MMPI : 성인의 성격과 정신병리의 표준화된 심리측정 도구
**SCT : 심리학에서 미완성의 문장에 적절한 말을 추가하여 완전한 문장을 만들게 하는 검사. 사용한 단어를 보고 그 사람의 특성을 이해하는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