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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하다 Mar 01. 2022

분홍 벽을 찾아서 길을 잃어버리자

퇴사준비록 027

 ‘내가 반드시 가야만 하는 곳’이 있다는 것은, 생각해보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그것을 얻기 위해 지금 당장 주저 없이 낯선 여행길에 나설 수 있는 강한 의지는 또 얼마나 듬직한가. 내 꿈을 좇고 싶다가도, 불안하거나 자신감이 없어서 쉽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게 우리네 보통 인생 아니던가. 마침내 사랑하는 그것과 한 몸으로 녹아드는 행복을 누리는 고양이 ‘하스카프’를 어떻게 부러워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고양이 ‘하스카프’를 보노라면 나도 강하고 씩씩하게 살아야지, 그리고 반드시 행복해져야지,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 몬테로소의 분홍 벽 추천사, 임경선 글


 친구의 첫 번째 연극을 보고 왔다. 같이 일도 해봤고, 비 오는 날 바다가 보고 싶다고 동쪽 바다로 떠나기도 했고, 내가 28년을 나고 자란 동네 투어를 함께하기도 했다. 꽁꽁 숨겨둔 작업실에도 초대했고, 독립하고 집들이도 초대한 친구였다. 이 정도면 서로를 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너는 우리가 알고 지낸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표정, 목소리, 움직임으로 무대에 나타났다. 조명 아래 반짝이며 연기하는 모습은 마치 분홍 벽을 찾아가는 몬테로소 같았다. 연극이 끝나고 커튼콜의 순간, 밝게 웃으며 인사를 하는 친구의 눈동자가 환하게 반짝거렸다. 그 반짝거림에 질투 한 점 없이 설레고 행복했다. 이런 마음은 참 오랜만이었다. 눈을 감고 다시 그 순간을 떠올리면, 가슴이 콩콩 뛴다. 그리고 너의 분홍 벽이 어디일지 궁금해졌다.


 연극을 보고 느낀 너의 반짝임에 답장을 보내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림책 ‘몬테로소의 분홍 벽’을 친구에게 보냈다. 너에게 연극이 어떤 길인지 모르지만, 무대는 온통 분홍빛이었으니까.


 집에 오니 한겨울의 인터뷰가 책이 되어 도착해있었다. 2022년의 나에게 해주고픈 말에 이렇게 적혀있었다. ‘올해는 더 자주 길을 잃어버리자.’ 더 많이 도전하고, 시도하고, 실패하고, 그 끝에 내가 하고 싶은 걸 찾아보자고. 그때의 나는 더 부지런히 분홍 벽을 찾고 싶었나 보다. 몇 분 후면 일요일이다. 아무 버스나 잡아 타고 떠나기 좋은 날이지. 내일은 잃어버릴 길을 찾아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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