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이 잦아진 날이면 목욕탕에 갔다.
이 정도면 되었다고 어깨를 으쓱했다가
다음 날 와장창 박살 나는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니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아무튼, 목욕탕> 정혜덕
출근을 앞두고 있는 월요일 아침. 오늘도 어김없이 출근해야 하는 나에게도 ‘목욕탕 같은 공간’이 필요하다. <아무튼, 목욕탕>의 저자가 좌충우돌이 잦아진 날 찾는 목욕탕 같은 공간이 나에게도 있다. 혼자만의 아지트 겸 작업실이다. 들국화 1집 LP를 꺼내서 가장 좋아하는 곡 [그것만이 내 세상]을 들으며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고, 과일과 빵으로 든든하게 아침을 먹기만 해도 채워지는 공간. 아이러니하게도 이 곳을 유지할 수 있도록 경제적 안정감을 주는 것이 회사다. 나를 돌보지 못하고, 다른 이들을 위해 일하며 에너지를 다 쏟아버리고는 그렇게 번 돈으로 작업실을 유지한다. 저자가 목욕탕에 가는 일 처럼, 나는 작업실을 꾸리는 일으로, 죽을 때까지 매일 균형을 맞춰나가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우울과 무기력을 떨치고 요동치는 마음을 다독이면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지옥의 9호선 환승 길,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이 흘러나왔다. 작업실에서 나를 위로해주던 노래가 이 순간에 목을 조른다. 호흡이 가빠지고, 숨을 쉬는 일이 버거워진다. 습관처럼 찾아오는 공황장애로 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내 세상은 지금 가는 방향에 없을 것 같았다. 어디를 향해 억울해야 했을까.
시간이 흘러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공황장애와 공생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자 모자를 쓰지 않아도 지하철을 타고 회의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예고 없이 찾아오는 무기력은 순식간에 나를 잠식시켰다.
‘꼼짝하기 싫은 기분이 다시 발목을 꽁꽁 싸매는 날도 왕왕 있다.’
왕왕 있다는 표현을 쓰는 또 한 사람을 알게 되어 반가운 마음 반, 역시 무기력은 발목에 강하구나 무거운 공감 반. 저자가 목욕탕에 가기 위해 애쓴 만큼, 나도 더 자주 작업실에 오기 위해 애쓰려고 한다. 아무튼 시리즈를 읽고 나면 ISBN이 있는 진짜 마지막 페이지, 가장 위에 있는 문장에 코스모스처럼 마음이 흔들린다. 나를 만든 세계, 내가 만든 세계 ‘아무튼’은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이다. 언젠가 아무튼 무언가로 나의 글도 책이 될 수 있을까, 구름 같은 꿈을 꾸며 내가 쓰고 싶은 아무튼 시리즈를 적어보며 책을 덮고, 출근을 한다. 힘들면 돌아올 나의 세계에게 인사를 하고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