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게 멍든 종이
사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게 더 좋다.
심지어 누드 자화상을 혼자 그려본 적도 있다.
마치 프리다 칼로나 조안 세멜처럼. 그것도 어린 나이에 꽤나 과감하게. 몇 번이나.
그만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 편하게 느껴졌을까.
반면, 글로는 도무지 쓸 수 없고 주저하게 되는 이야기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그런데도 왜 나는 여전히 글쓰기에 집착하는 걸까.
작가가 된다는 꿈이 정말로 내 것이 맞을까.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 걸까.
소통이라는 게 정말 내가 바라는 게 맞나.
무척 이상한 이야기로 들릴 테지만, 글을 쓸 때 종종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독자가 아니라, 이미 작고한 내가 존경하는 작가들에게 보내는 헌사나 편지쯤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얼마나 다행인가.
그분들이 내 글을 읽을 가능성은 제로니까.
부디 독자를 무시하거나 의식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존경하는 작가들과 같은 국적, 같은 시민이 되고 싶은 마음이 이렇게 간절할 따름이다.
이렇게 쓰는 글은, 그 즉시 과거지사가 된다.
이런 나의 행위는 저 멀리 ‘글의 나라’를 향해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 사실 이 책의 제목을 <종이비행기를 날리다>라고 할까도 고민했었다. 그리고 다음 에세이는 꼭 이 제목으로 쓰려고 한다-
미래를 향해 보내는 글이란, 내게는 영 자신 없는 일이기도 하다. 비판적인 말이 더 가치를 인정받는 이때, 디스토피아를 외치는 대열에 굳이 뒤따라가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과거는 당사자 포함, 누구도 건드릴 수 없다. 그래서 더 단단한 진실로 남는다. 나는 오늘도 그곳을 향한다. 닿을지 아닐지 알 수는 없지만 이렇게 종이비행기를 한 장 더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