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게 멍든 종이
우리는 커다란 둥근 접이식 상을 펴놓고 그림을 그리곤 했다. 공놀이, 인형놀이, 병원놀이 같은 것도 재미있었지만, 결국엔 둥근 상 앞에 앉아서 한참을 조용히 그림을 그리는 데로 돌아왔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두 살 위 언니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나무 팔걸이가 달린 소파로 가 앉더니 책을 펼쳤다. 점점 그렇게 책만 쳐다보고 있었다. 심지어 어느 날은 아예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후로 우리가 나란히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일은, 다시 오지 않았다.
교사였던 부모님은 늘 언니에게 무언가를 소개했다. 좋은 책들도 그중 하나였다. 모두 맏이이신 부모님께서는 항상 나를 어리게만 생각하셔서 그런지, 나에겐 그런 기회가 거의 없었다. 나도 그들 틈에 끼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책이 궁금해졌다.
어느 날, 어린이 키에 맞춘 낮은 원목 중고 책꽂이가 거실 한켠에 놓이더니 거기에 딱 맞는 크기의 위인전 전집이 꽂혔다. 그리고 반짝이는 두꺼운 표지의 컬러 대백과사전. 아마 그 시절 ‘국민학생’이 있는 가정이라면 웬만하면 집집마다 있었을 법한 책들이다. 그때까지도 책을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풍부한 삽화와 사진 덕분에 그림을 좋아하던 나도 재미있게 읽었다.
몇몇 인물과 주제는 반복해서 읽다 표지가 닳아 해지고, 뽑아 당기느라 책등 윗부분이 떨어져 나가 덜렁이기도 했다. 관심 없는 내용도 결국은 순서대로 읽어, 빈틈없이 채워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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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두 번은 동네 서점에 따라갔다. 아빠가 매달 월간지를 구입하셨는데, 그때마다 언니와 나를 데리고 가서 우리도 책을 고르게 하셨기 때문이다. 키가 부쩍 큰 언니는 손이 닿는 데까지 다양한 책을 고를 수 있었고, 때로는 어른 책을 집어 들기도 했다. 그에 비해 또래보다도 키가 작은 나는, 신체적 한계와 낮은 시야 안에서 책을 골랐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언제나 그림이 풍성한 그림책이었지만, 우리 집에서 그런 책을 읽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렇게 뭘 살지 망설이다 보면, 결국 내가 고르는 것은 늘 한국 전래동화집 시리즈였다. 효녀 이야기, 효자 이야기, 호랑이 이야기, 도깨비 이야기, 귀신 이야기 등등, 매번 고만고만한 내용이 반복됐다. 지역별로 구전되어 내려오는 전설이나 이야기를 편집해 묶은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용이 짧고, 재미있는 삽화가 많이 들어 있었다. 줄거리를 압축하거나 결정적인 대목을 그림으로 풀어놓은 삽화는 매우 해학적이고 한국 전통의 맛이 났다. 글을 읽을 때면 어떤 삽화를 만날까 기다려졌다. 그걸 미리 보는 건 스포일러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절대로 넘겨보지 않았다.
그래도 언니가 좋아했던 책 중에 아이답다고 느껴지는 건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시리즈였으니, 두 살 차이 치고는 수준 차이가 얼마나 났는지, 아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