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관계의 독서록

하얗게 멍든 종이

by 완다

다시 한번, 언니와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예비 소집일 날, 나는 교감 선생님께 언니의 동생이라는 이유로 불려 갔다.

이미 언니는 문과 1등으로 유명인사였다.

나는 그런 언니 없이도 충분히 중학교에서 내 존재를 증명했었다. 다방면에 재능이 많은 것과 친구들 사이의 인기로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일개 공부 잘하는 언니의 동생으로 돌아왔다. 다시 부담감이 슬슬 몰려왔다.


여전히 벼락치기로 근근이 학업을 유지하는 중이었다. 뾰족한 방법 없이 수업 시간에 집중하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하버드 대학생들도 선행 학습을 한다는 이야기를 최근에 들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수업 시간에 배우는 지식이 처음이라 매우 집중해서 뭐든 스펀지처럼 빨아들일 수 있었고, 수업이 그렇게 지루하지 않았다. 아마 나만큼 눈을 반짝이며 학교 수업을 듣는 학생은 그다지 많지 않았을 거다.


나는 여전히 글을 잘 쓴다는 착각 속에 살았다.

그러나 고작 일기장만이 나의 전부였다.


한편, 일찍이 한국 전래동화를 보아왔던 영향인지, 그 시절에도 국내소설을 좋아했다. 젊은 여성 작가 전성기가 쭉 이어져 왔는데, 그것대로 좋았지만 멘토로까지 생각했던 분은 단연 박완서 선생님이었다.

선생님께는 여러 훌륭한 작품이 많으나 <나목>만큼 생생한 감동을 준 것이 있을까. 6·25 전쟁통 가운데 겪은 오빠의 갑작스러운 죽음, 생존을 위해 내몰린 험한 생업의 전선, 그리고 그 속에서 운명같이 조우하게 된 박수근 화가와의 인연.

아찔한 극한 상황의 경험을 문학적으로 새롭게 구성해서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특히 1992년 6월 24일, 6·25 특집 드라마까지 만들어져서 텔레비전에 방영되기도 했는데, 김희애 님의 열연까지 더해져 마음에 큰 감동과 여운으로 아직까지 남아있다.


그렇게 우리 문학을 참 좋아했더랬지만, 언니를 따라 외국작품의 세계로 서서히 눈을 돌리게 되었다. 좋아했던 소설로는 펄 벅의 <대지>,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 또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 등이 있었다. 지금 떠올려봐도 마음이 뭉클할 정도의 느낌이 남아있는 훌륭한 작품들이다.


그 무렵에는 나는 시를 접고 소설가가 될까 생각했다.

그렇게 마음을 움직인 작가는 아마 헤르만 헤세가 아닌가 싶다.


1학년 때 일이다.

문제집을 빌려줬는데 우연히 그 속에 끼워둔 내 짧은 글을 읽고, 한 친구가 감동하며 갑자기 나를 좋아한다고 고백하였다.

여고였으니 당연히 여학생이었는데, 그 아이는 마침 커트머리를 한 선머슴 같은 중성적인 느낌을 주는 아이였다. 남자친구도 사귀었던 아이였고 평소 감성이 매우 풍부하고 솔직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또 이미 여중을 나왔기 때문에 성장기에 잠깐 스쳐가는 그 미묘한 감정은 나도 충분히 이해했다. 그러나 이성에게만큼은 아니지만 뭔가 짜릿함, 금단의 감정을 살짝 느낀 것도 사실이었다.


여름이면 분지에 갇힌 뜨거운 대기가 올라가, 모이고 모이다 한꺼번에 소나기가 되어 쏴쏴 하고 쏟아지곤 하는 게 일상인 곳에 살았고, 그 감상을 휘갈겨 쓴 내용이었다. (이후 상경해 장마철의 꿉꿉함을 난생처음 맛보았을 때, 그리고 그게 우연이 아니라 매년 반복된다는 걸 깨달았을 때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나는 소낙비가 걱정되지 않는다. 소낙비는 잠시 잠깐이니까.
지금처럼 미친 듯 퍼붓는 거센 소낙비도 쏴~하고 한차례 지나가고 나면,
다시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활짝 개니까.
빗방울에 후두려 맞던 바닥도 금세 말라 산뜻해지잖아.
처마 밑에서 기다리다 도저히 못 참고 뛰어가다가 흠뻑 젖더라도.
그때도 괜찮아.
울고 싶었던 마음도 그 덕에 빗방울 속에 같이 풀고, 눈물도 감추고.
다시 맑아지면 옷이 마르듯 마음도 마르겠지.
지금 당장 그런 소낙비가 지나갔으면 좋겠어.


잠시 동안이었다. 그 아이는 다시 원래 친했던 친구에게로 돌아갔다.

딱히 뭐 어떻게 지내려는 생각도 없었다. 그 아이가 먼저 접근했었고, 그전에도 그 후에도 나는 그냥 제자리에 가만히 있었으니까.

그러나 커다란 상실감, 버림받음, 어찌할 수 없는 관계의 한계를 느낀 것도 사실이다.


그때 읽고 있던 소설이 바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었다.

아직 소년이었던 싱클레어에게 불현듯 다가와 큰 파란을 일으키고는, 또 갑자기 멀어져 버린 신비스러운 친구 데미안.

이렇듯 점차 폐쇄적인 성격으로 변해가던 나에게, 다가오는 친구들은 모두 그런 데미안 같은 존재로 느껴졌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노트에도, 일기장에도 아브락사스의 이 명문장을 따라 썼다.


2학년,

언니는 서울대로 진학했다.

그렇게 훌쩍 떠나버리자, 온 가족이 한순간에 허무해졌다.

특히 엄마는 진이 다 빠져 우울해지셨다. 번아웃에 더불어 갱년기까지 찾아왔다.

모두가 바라던 법대는 못 들어갔다. 평소보다 “시험을 망쳤다.”

그걸 또 당신 탓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다시 잠깐의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여전히 학교에서는 더 열심히 하기를 원했지만 나는 상위권 정도로 만족했다.

물론 나도 언니처럼 “가장 좋은 학교”으로 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는 나대로 서울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서울 소재의 명문사립대 신방과를 가는 것이 목표였다. 그렇게 아빠의 어릴 적 한마디가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그리고 바로 곁에서 지켜본 바, 영재에다 수재가 되는 길은 정말 만만치 않은 역사가 필요한 작업이자, 가히 가업이라 할 만했다.

무엇보다 나는 정말 공부가 하기 싫었다. 심한 애정결핍, 애착 장애가 있는 나에게는 오히려 '관계'가, 그 당시에는 친구 관계가 훨씬 중요한 문제였다.


그 무렵 정말 절친이라고 생각했던 친구와 한순간에 멀어짐으로, 실연이라 할 만큼 큰 상처를 입었다.

우리는 함께 독일에 유학 가자고 약속까지 했더랬다. 부모님이 진지하게 들어주시지도 않으셨지만.


그때 나는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었다.

절망 가운데 가느다란 희망의 끈을 던져준 인생의 책이었다.

홀든의 마음처럼, 이미 나는 망했지만 (죽지는 못하니) 앞으로 순수한 아이들을 지켜주는 파수꾼이 되고 싶었다. 몸과 마음이 지쳐있는데 아무도 모른다! 나도 홀든처럼 요양원에라도 들어갔으면 좋으련만.


3학년이 되었다.

나는 진지한 모습으로 부모님께 면담을 요청했다. 미대에 가고 싶다고.

중학교 때 친구 하나가 예고로 진학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때는 나와는 전혀 다른 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아이와 처음에 짝으로 만났는데, 둘 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나란히 앉아 노트 모퉁이에 예쁜 여자를 만화로 그리곤 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예체능을 준비하는 아이들을 보면 그 시절이 문득문득 떠올라 한참 멍해지고는 했다. 누구에게 잘 보이려는 것도 누구에게 의지하려는 것도 없이, 그냥 순수하게 나 자신만 떼어놓고 생각해 보는 게 정말 낯설었다. 후회 없이 마지막으로 한 번쯤 도전해보고 싶었다.


부모님은 우리 형편으로는 지원할 수가 없다고 하셨다.


나는 종종 언니의 빈 방에 들어가 보았다.

얼핏 보면 성인 남자의 서재처럼 컴컴하게 생긴, 기다랗게 넓고 햇볕이 바로 들지 않는 어둡고 서늘한 곳.

언니의 커다란 책장, 거기에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와 조정래 선생님의 <태백산맥>이 길게 꽂혀있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장편소설의 매력을 잘 알지 못했고 집중력이 떨어져 도전하기에 어려운 상태였다.


유년 시절 이후 친근하게 지낸 적도 없는 언니가 그리웠다.

뭔가 나를 달래줄 것이 필요했던 것 같다. 부모님 하에서 얼마 남지 않은 숨 막히는 날들을 침묵으로 묵묵히 견디는 동안.

그렇게 자연스레 장편소설로 스며들었다.

두 대하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즈음에는 나도 조금은 달라져 있었을까.


그 후 나는 자포자기로 그냥 감흥 없이 공부를 이어갔다.

원하던 대학 신방과 가기에는 성적이 부족했다. 그렇지만 다른 과로 갈 수 있는 성적이었다. 하지만 낯선 것들이 무서웠다.

나는 그냥 여대 국문학과로 갔다. 정해진 운명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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