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일기장

하얗게 멍든 종이

by 완다

언니와의 비교의식, 열등감 때문에 자격지심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냥 삶 자체였다.

차라리 부모님 눈에 들기 위해 강박적으로 애썼던 어렸을 때가 나았다.

사춘기가 되자, 평가받던 대상에서 부모님을 평가하는 주체가 되니 마음이 더욱 힘들어졌다.

언니한테는 이렇게 하는데, 나한테는 왜 이렇게 대하느냐.

온통 거기에만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그리고 교육자 집안이라고 믿었던 부모님의 모습 속에서도 자꾸 속물근성, 내로남불, 위선적인 면들만 눈에 보였다.

선생님이면서 소위, 스승으로서의 모습이 없다고 느껴졌다.


그 시절은 교육 시스템에 대한 한계와 비난이 극에 달하던 때였다.

선생들은 아이들을 돈이나 성적에 따른 차별 대우, 폭력, 성추행 등으로 상처 입혔고, 아이들은 선생들을 욕하고 반항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싫었다. 그러나 벗어날 방법도 딱히 없었다.

오히려 부모님이자 선생님이기까지 한 두 분을 비판할수록, 폐륜이라는 수치심과 죄책감에 더욱 옭아매였다.


나 스스로 애정 결핍이란 걸 알았다. 그때는 이 표현 밖에 몰랐다. 지금에 와서 보면 ‘애착 장애‘라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나는 벗어나길 바라고 또 바라면서도,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표면과 달리 자꾸만 갈구하고, 또 갈구할 뿐이었다.


이런 괴로움과 슬픔을 토로할 곳은 일기장뿐이었다.

매일매일 그곳에서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하며 희망을 쌓았다. 가짜 자존감을 세워보려고 위로도 해보고 긍정적인 말도 많이 써보았다.


한편, 일기장은 거대한 실험장이기도 했다.

어떤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고 마음대로 썼다.

위대한 시인이 되기 위해 시를 썼다.

그러다 질리면 그림도 그렸다. 재미로.


무엇보다 일기장은 배설구였다.

이성에 대한 짝사랑의 감정,

가족에 대한 원망과 분노, 욕,

정의롭지 않은 사회와 기성세대의 위선 등

온갖 더미를,

그러나 대상을 직접적으로 지칭하지 않고 이니셜 또는 대명사로 분출했다.


오래전부터 아빠가 내 일기를 몰래 훔쳐보고 계신다는 걸 알았다.

어리석게도 일기장을 감출 수 있는 수단을 몰랐다.

지킬 곳도, 숨을 곳도 없었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신, <이 일기를 몰래 읽는 인간은 죽어라>고, 일기장에 시뻘건 사인펜으로 저주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진학하며 언니와 잠시 함께 자취하게 됐는데, 아빠가 내 일기를 인용한 편지를 언니에게 보낸 것을 뒤늦게 발견하기도 했다.


언니는 어디를 향해 있는 걸까. 몸은 함께 있지만, 마음과 뜻은 먼 곳에 있는 것만 같아.


언니를 질투하면서도, 동시에 우상으로 생각했던 내 일기 한토막을 훔쳐내서, 그걸 서울에 먼저 가있던 언니를 위로하기 위해 당당히 편지로 써 보내신 것이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빠는 왜 나의 괴로움을 ‘열매‘로 거두시는 걸까.

정작 나는 열매 따위를 위해 이런 괴로움을 견디느니 그냥 메말라버리고 싶은데.

오랫동안 죽고 싶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나에게 죽음이란 단어는 죄였다.

대신 그냥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에 줄곧 사로잡히곤 했다.


가끔 첫째 아이가 외로워 보여 둘째를 낳겠다는 사람들을 본다.

둘째는 첫째를 위한 존재처럼 들린다.

나 역시 그런 존재일 뿐인가.

이렇게 버려둘 거면, 도대체 왜 나를 낳으신 걸까.

사춘기라면 한 번쯤 겪게 되는 그런 의문들.

신에게도 던지는 질문이기도 했다.

아담의 창조 후에 아담이 혼자 있는 게 좋지 않아 갈빗대를 하나 뽑아, 돕는 베필인 하와를 창조한 하나님에게 묻듯이.


아이를 낳고 보니 알 것 같다. 아이가 좋기 때문일 것이다.

그 아이 입장에서, 부모자식의 상하관계가 아닌, 상호 동등한 관계를 맺어주고 싶은 것이다.


언니와 나는 이름부터 매우 다르다.

언니의 이름은 지금도 부모들이 여자아이들에게 종종 붙이곤 하는 이름이다. 남자들에게는 쓰지 않지만 그래도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추구되는 미덕 가운데 하나를 뜻한다.

반면, 내 이름은 매우 특이하다. 내가 필명을 쓰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예전에도 그렇지만 지금도 결코 이름으로 쓰이지 않을 법한 것이다. 한자 뜻도 딱 떨어지지 않는다.

오죽하면 사람들도 이름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다. 부모님께 직접 물어본 적이 몇 번 있는데, 그때마다 뜻도 붙인 이유도 달라지곤 했다.


그래서 나 혼자 그냥 짐작해 보기로, 개똥이, 소똥이 처럼 (그렇게 험한 정도는 아니지만) 귀신이나 악운이 피해 가도록, 혹은 다음 아이는 아들을 낳기 위해 지은 이름이 아닐까 싶다. 혹은 인큐베이터에 들어갈 뻔할 정도로 작게 태어났기 때문에 곧 죽을지도 몰라 정을 떼려고 막 지은 이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나는 출생 신고가 두 달이나 늦다. 거의 죽었다가 살아났을지도 모르는, 그 두 달 사이에 내 인생의 모든 풀리지 않는 비밀이 담겨있진 않을까.


시골에 내려가면 어르신들로부터 어린애라고 “저건 고추를 달고 나왔어야 하는데”라는 말을 수시로 듣곤 했다. 장손이었던 아빠에게 대를 이을 남자로 태어나지 못한 나의 죄였다. 그리고 거기에는 아들을 낳지 못한 엄마의 죄도 있었다.

부모님으로서는 평생 아쉬움이 크셨을 것 같다. 남자애라는 보장은 없지만 차라리 셋째라도 낳았으면 상황이 더 나아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부모님은 딸 둘을 아들 부럽지 않게 잘 키우겠다고 단단히 결심하셨다.

언니는 그 기대에 부응한 셈이다. 거기에 맏이에게 무한 지원하던 전통에 따랐고, 엄마는 당신 공부에 대한 못다 한 아쉬움도 보태신 듯하다.


어쨌든 동생들이 줄줄이 있던 부모님은 내 어리광이 싫으셨던 것 같다. 게다가 초등학교, 중학교 선생님으로 지내시며 아이들에게 지쳐, 막상 나에게까지 신경 쓸 힘이 남아있지 않으셨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나는 정말 아들처럼 언니에게 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유분방하게 키우고 싶어 하셨으리라. 나를 자꾸 밀어내고 혼자 서게 하셨다.


나는 원래 정도 많고 말도 많은 명랑한 여자아이였다.

하지만 나를 지키기 위해, 또 반항심 때문에, 뒤늦게 그 반대로 성격을 바꾸었다.

그러나 내가 반항하고 어긋날수록 부모님은 그걸 마치 내 천성 탓으로 돌렸다.


언니는 골든 차일드였고, 나는 희생양이었다.

이런 집이야 이론이 성립되어 있을 만큼 특별히 유별난 것도 아니다. 부모님의 부족함도, 그 인생을 돌아보며 인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집에는 어김없이 한 가지 특징이 있다. 가장 억울한 부분이기도 한데, 끝까지 최선을 다해 사랑한 것처럼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조금의 부족함도, 약간의 잘못도 인정하지 않는다.


가끔 오은영의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다 보면, 희미하게 과거의 그림자가 떠오르는 것 같다.


왜 아이들이 떼를 쓰는가

왜 그 고집을 꺾을 수가 없는가.


그 아이들은 말 그대로 죽음을 불사하는 것이다.

이 싸움에서 지면 내 존재가 끝장난다는 두려움이 있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다.

아이는 부모가 두려워한다는 걸 안다. 부모가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부모 역시 내심 아이의 고집을 꺾고 싶지 않다. 자신들의 문제를 아이의 몫으로 남겨두기 원한다.

아이의 문제가 사라지고 나면, 이제 앞으로 누구 탓을 하며 남은 생을 살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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