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시인

하얗게 멍든 종이

by 완다

나는 ‘위대한 작가’가 되기로 했다.

책을 좋아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셈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긴 책을 읽는 게 버거웠다. 삽화가 많은 책을 좋아하는 것도 그대로였다. 어떻게든 그림을 책 속에 끼워 보려는 핑계였는지도 모르겠다.

짧은 글과 그림.

이 둘을 조합하면, 예상하다시피 시가 가장 가까웠다.

나는 ‘위대한 시인’이 되기로 했다.


그리고, 내 방에도 오롯이 나만을 위한 전집이 들어왔다.

<윤석중 동시집>이었다. 나는 그 시리즈를 빠짐없이 읽었다. 그러면서 동시는 재치와 여운이 핵심적인 장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아이에게 동시 전집을 사주는 경우가 많을까 싶다. 부모님께서는 나를 늘 특이하다고 여기셨는데, 그런 시선이 불편하고 싫었다. 그것이 타고난 성향 때문이었는지, 교육 방식 때문이었지는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님이 현명한 판단을 내리실 것을 믿는다. 지금 나이에는 원인이 무엇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고, 주어진 삶을 스스로 책임져 나가야 한다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책임을 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솔직해지는 일이다. 그리고 책임을 회피하게 만드는 주범이 바로 수치심과 두려움이다. 이 두 감정에 압도당해 오랜 시간을 무책임과 회피 속에 살았던 당사자로서 당당히 증언할 수 있다. 이 두 감정에게서 도망칠 수만 있다면, 어리석은 선택을 한 채, 아주 열심히 살아갈 수 있다고. 그러면서 겉으로는 자신이 얼마나 자발적으로 그리고 도전적으로 살고 있나 가장할 수도 있다. 진짜 나를 외면하면서 말이다. 가장 본질적이고 익숙한 감정인, 수치심과 두려움 따위는 알지 못한다는 듯이.


아직도 나는 그 감정들을 직면하는 데 서툴다. 일주일에 한 번 이 글을 연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유튜브, SNS, 드라마, 게임 앞에 허비하고 있는지 모른다. 갑자기 훌륭한 도서들을 찾아내고 읽다가 글을 쓰려는 의지를 잃거나 잊어버린 날들이 또 얼마이던가.

자전적 소설에 매달리는 것 역시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소설’은 대표적인 현실 도피의 수단이다. 그럼에도 동시에 그 도피와 정면으로 맞서기 위해 ‘자전적’이라는 장치를 쓴다. 이 모순이 나를 혼란스럽게 하고 헷갈리게 만든다. 지금은 어쩔 수 없다. 당장 그 방법 말고 더 있을까.



초등학교 고학년에 접어들자, 비로소 단편 소설에 맛을 알게 되었다.

특히 한국단편소설문집이나 이상문학상 작품집 등에 실린 한국 단편 소설 한 편, 한 편을 읽을 때면, 온몸이 저릿하고 머리가 띵하게 전율이 올 정도로 재미있었다. 아마 그 무렵 접할 수 있는 단편이란 단편은 모조리 찾아 읽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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