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장원급제

하얗게 멍든 종이

by 완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다. 아닌가? 4학년 때인가.

그날따라 공기가 조금 달랐다. 특별활동 시간에 늘 하던 학급회의 대신 전교생을 대상으로 글짓기 대회가 열렸다. 선생님이 칠판에 큼지막하게 ‘글짓기 대회’라고 쓰시고, 글짓기가 무엇인지 간단히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주제는 세 가지 정도로 한정되었던 것 같다.


그 가운데 내 눈에 딱 들어온 단어가 있었는데, 바로 ‘꽃밭’이었다. 마침 내가 살던 아파트 이름에도 ‘꽃’이 들어가 있었다. 지금도 그 5층짜리 단층 아파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내 애환과 희망이 동시에 싹 틔운 눈물겨운 그곳…


나는 ‘꽃밭’을 주제로 삼아, 나눠준 원고지에 거침없이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냥 동화처럼 쓰면 되는 거 아닌가? 전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옛날 옛날 어느 마을에 아름다운 꽃밭이 있었습니다. 거기엔 많은 꽃과 나비, 벌, 작은 동물들이 함께 모여 살았어요.
“ 장미야, 안녕?”
“ 나비야, 안녕? 꿀벌아, 안녕?”
“ 토끼야, 강아지야, 모두 모두 안녕 안녕?”
모두가 행복하고 평화롭게 지냈답니다.


그렇게 스스로 펼친 이야기 속에 빠져있는 동안, 주변에서는 한숨 소리, 발 떠는소리, 지우개로 박박 지우는 소리 등이 간간이 들려왔다. 내 책상 위에서는 쉴 새 없이 똑똑똑 나무 책상 위를 두드리는 연필 소리로 가득했다. 이미 종이 한바탕을 채우고도 계속 계속 멈추지 않았다.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걸 보자, 손놀림은 더더욱 빨라져, 마치 메트로놈 신호가 알레그로에서 프레스토로, 다시 프레스티시모로 또도도도도독하고 바뀌는 것 같았다.

나중에 선생님이 “이제 그만” 하시며 원고지를 거두시기 직전에야 간신히 글을 마무리했는데, 결말이 어색하거나 급작스럽게 마무리되지 않으려고 애썼던 기억이 또렷하다.

뒷자리 아이들의 원고지가 내 자리로 넘어올 때 겨우 한 두장 남짓인 것을 보고서야, 내 글은 거의 7, 8장이 넘어간다는 차이를 깨닫고 스스로도 놀랐다.


일단 안심이었다. 나는 글짓기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시험공부, 숙제, 그림, 줄넘기, 반장선거, 심지어 인기투표까지- 그 무엇이든 늘 최선을 다했다.

그때는 그래야만 되는지 알았다. 아니면 정말 큰일 나는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상을 받긴 받겠지 싶으면서도, 무슨 상을 받을지에 대해서는 평소보다 오히려 자신이 없었다. 시험처럼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림 대회처럼 한눈에 비교가 되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냥 어린 마음에, 다른 애들보다 몇 배는 더 많이 써냈으니 분명히 노력상 이상은 받았을 거라 믿었다. 마치 대학교 무제한 리포트나 주관식 시험 때처럼 말이다.


어느 날, 조회 시간이었다. 갑자기 교단 위에서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아무리 성적우등상, 대회상을 많이 받았어도, 전교생 앞에서 대표로 불리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보통 그런 자리엔 고학년들이 섰다. 그중에서 우리 언니야말로 성적 우등상에, 모범상에 수시로 불려 나갔고, 심지어는 전교생 대표로 사회도 보고 시상도 하는 주역이었다. 그런 언니와 항상 비교되니 같은 우등생이지만, 나는 뭔가 ‘으뜸’이 아닌 ‘버금’의 느낌이었다.


그런데 정말 그날만큼은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다.

나는 1학년에서 6학년까지, 전교생을 대상으로 하여 글짓기 대회에서 당당히 전체 1등, 장원상을 거머쥐었던 것이다. 담임 선생님은 물론이고, 심지어 교장선생님께서도 마이크 뒤 가까이에서 “정말 잘했다”라고 칭찬해 주시며 등을 두들겨 주셨다. 그 후 한동안 다른 반 선생님들께서도 칭찬이 자자했다. 아마 그만큼 내 작품이 센세이션 했던 모양이다.


그날 이후로 부모님께서도 나에 대한 대도가 달라지셨다. 평소 언니와는 닫힌 문 너머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많이 나누셨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문제집도 수시로 넣어주시고, 책도 많이 사주시고… 심지어 직업이나 진학에 대한 이야기도 벌써부터 많이 하신 듯하다. 이미 어른아이가 다된 언니 역시 나를 상대 안 해준 지 한참 되었다. 언니 방으로 출입을 할 수 없었기에 실은 그 안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전혀 모른다. 그냥 짐작만 할 뿐.


그에 반해, 나는 거의 방임에 가까웠다. 숙제도, 공부도 알려주는 사람 없이 인도해 주는 사람 없이 그냥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에만 의지해 나갔다. 다른 아이들은 이미 보습 학원에 다녔지만, 나는 유일하게 다니던 피아노 학원마저 그만두었다. 대신 집에서, 또는 동네에서 하루 종일 쏘다니면서 신나게 놀았다. 그래도 시험이랑 숙제, 대회 등에서는 언니의 명성에 먹칠을 하지 않도록, 그리고 ‘교육자 집안’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했다. 그래서 성적표에는 늘 모든 과목에서 수를 받았다. 단 한번 5학년 때 산수에서 ’ 우’를 받았던 것 빼고. 언니는 당연히 전 학년 전 과목이 올 수다.


그런데 갑자기 아빠가 나에게도 장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신 것이다. “너는 신문기자가 돼서, 유명한 작가가 되어라”라고. 내가 받아온 장원상을 엄청 기뻐하셨다. 정말 이름값처럼 ‘장원급제’라도 한 분위기였다.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그림대회상, 심지어 언니 따라 성적우수상을 가져다 드려도 나에게 그렇게 기대와 관심을 보이신 적이 없었는데. 왜냐하면 나보다 항상 앞서서, 더 많은 상을 받아온 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상은 온전히 내 실력만으로, 유일하게 언니를 제친 것이다. 그것도 월등히!


비로소 나는 나만의 캐릭터와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이다. 투명인간에 가까웠던 자신이 이 세상에 실재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방에 들어가서 더 이상 보지 못하는 언니의 얼굴, 피곤한 모습으로 부엌에서 돌아서있던 엄마의 얼굴, 일찍 퇴근하셔도 바닥에 깔린 신문을 보고 있던 아빠의 얼굴...

그들의 얼굴이 일시에 나를 향해 마주하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꽃밭이 사라진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꽃밭이 있는 자리 바로 위로, 큰 길이 지나가게 된 것이래요. 모두들 걱정하고 슬퍼하기 시작했어요. 꽃들은 울고, 풀과 나무도 떨고, 심지어 말라가기 시작했어요. 살 곳을 잃게 되니 벌레도, 동물도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지요.


이런 변화를 눈치챈 동네 사람들은, 이 계획을 전부 취소하기로 했어요. 꽃들도, 풀들도 생기를 되찾게 되었고, 나무도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어요. 나비와 벌도, 작은 동물들도 다시 일어나 뛰어놀기 시작했습니다.
“ 안녕, 장미야!”
“ 안녕, 나비야! 안녕, 꿀벌아!”
“ 토끼야, 강아지야, 모두 모두 안녕! 안녕!”
아름다운 꽃밭 위로 또다시 노을이 집니다.


대충 이런 내용으로 기억한다.

나름 기승전결이 있고 희로애락이 있다. 특히 어른들, 그리고 아빠가 칭찬하신 건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고 끝나지 않고, ‘노을’이 저무는 풍경이라는 여운을 남긴 것이라 했다. 아련하기도 멜랑콜리하기도 한.


사실 나로서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옮겨 적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 아파트에는 꽃밭이 많았고 거기서 엄청 뛰어놀았다. 꽃이랑 풀이랑 나무가 진짜 내 동무들이었다. 거기서 개미랑 나비랑 벌레들이랑 얼마나 재미있게 놀았던지.

그때의 하늘은 또 얼마나 넓고 환하게 보였던가. 심지어 무지개도 풍경에 가려서 막히는 곳 없이 온전하게 다 보였으니까. 그리고 저녁노을은 매일 또 얼마나 붉게 타오르는지. 그걸 볼 때마다 나는 스스로 작아짐과 외로움을 몸소리치도록 느꼈다. 아, 멜랑콜리여!


또한 이 모두는 진짜 친구들에 대한 은유이기도 했다.

절대로 빨리 들어가선 안된다는 굳센 우정의 맹세를 나누며 한 패로 똘똘 뭉쳐있던 아이들이, 막상 저녁이 되자 하나둘 씩 집에 불려 들어가는데, 나는 거의 끝까지 홀로 남았다. 그제야 마지못해 집에 터덜터덜 들어가 현관문을 열면, 언니방, 안방에서만 닫힌 문 틈 사이로 불이 가늘게 새어 나왔다. 나를 불러주기는커녕 기다려주거나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거실에는 항상 불이 꺼져있었고, 그 어둠을 뚫고 내 방까지 가는 게 너무 무서워 후다닥 뛰어들어가 곧장 불을 켰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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