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해방의 틈

하얗게 멍든 종이

by 완다

언니와 다른 중학교에 배정받자, 나는 해방감을 느꼈다.


점차 초등학교 때처럼 모든 일에 정말 죽을힘을 다하던 강박도 내려놓게 되었다. 5학년 때 60명 가까운 반 전체 아이들을 위해 크리스마스 카드를 모두 다르게 만들어 돌렸던, 그런 미친 짓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공부를 아예 놓은 것은 아니었다. 대신 어떻게 하면 가장 적게 노력하면서도 최상의 결과를 낼 수 있을지를 고민했고, 벼락치기야말로 최고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시각적으로 예민하고 감각도 있던 나는, 교과서를 한 장 한 장 사진 찍듯 기억해 통째로 외웠다. 나중에 범위가 너무 방대해져서 소용 없어지기 전까지는 그 방식이 잘 통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영어 교과서를 받고 알파벳을 배웠다. 문법 따위도 전혀 몰랐다. 그러나 영수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하고 온 아이들을 제치고 처음 1년은 줄곧 반에서 1등을 했다. 그러든지 말든지 부모님께서는 여전히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다. 어떻게 보면 이런 결과를 꺼리시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나 역시 공부로 언니를 앞서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2학년이 되면서부터는 굳이 1등을 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어차피 부모님께서 나를 자꾸만 글짓기 쪽으로 유도하시는 듯 보였다. 학부모 면담에서 부모님의 입김이 작용했는지, 담임 선생님들마다 그 방면으로 유심히 지켜보시는 듯한 인상을 느꼈다. 여전히 나도 글을 잘 쓴다는 착각에 우쭐해 있어서, 아직 제대로 된 평가도 받기 전인데도 그런 기대가 당연하다고 여겼다.

한 번은 각 중, 고등학교에서 국어 특기 학생들을 모아 수업을 듣게 하고 마지막에 작문 대회를 치른 적이 있었는데, 아직 두각을 나타내지도 못했던 내가 우리 학교 대표로 뽑히기도 했다. 그러나 불성실한 태도로 수업도 수시로 빠졌고 무관으로 끝나버렸다. 이후 교내 대회에서 글짓기 상을 받기도 했지만, 예전의 장원만큼 임팩트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 아직도 인상 깊었던 일화 하나가 떠오른다.


작문 시간에 ‘미래’에 관한 주제로 글짓기 발표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무렵 나는 공지영, 공선옥, 신경숙 등 사회 부조리와 가부장제를 비판하던 여성 작가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었다. 나는 미래에 여성학자가 되어 겪게 되는 부조리한 하루를 고발하는 글을 썼다. 어느 날 학창 시절 친하게 지냈던 친구에게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는데, 그녀가 남편에게 학대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친구를 위해 아는 척을 할지 말지 고민하는 이야기였다. 애초에 지루하고 인기가 없을 거라 예상했는데, 발표 도중 아이들이 중간중간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이야기가 통쾌하게 전개되면 좋았겠지만, 그런 결말은 현실성이 없어 호소력이 떨어질 것 같았다. 무엇보다 문학적으로도 (그놈의) ‘여운’이 없지 않은가. 그래서 결국 모호하게 끝을 맺을 수밖에 없었는데, 아이들이 좀 아쉬워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반면 같은 반 다른 아이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미래를 그려냈다. 이른바 공상과학소설을 쓴 것이다. 어느 실험실에서 쥐 한 마리가 탈출하여 지금의 팬데믹 같은 사태가 벌어지고, 끝내 본인의 이름을 딴 여성 영웅이 나타나 그 사태를 완벽히 제압하며 온 세계를 구한다는 사이다 결말이었다. 반 아이들이 열광한 것은 당연했다.


나는 내심 장르가 다르니 굳이 비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스스로도 좀 유치하고 치사하다 느꼈다. 흥미와 재미만으로 소설을 쓴다는 발상은 해본 적이 없었다. 해 질 녘 노을처럼 우울한 정서가 인격의 바탕이 된 나는 그렇게 할 수조차 없었다. 대신 어디까지나 ‘수준 높은 소설‘이란 묵묵히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고 부조리를 고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정말 힘겨운 사춘기를 보내던 시절이었다.

나도 방에 틀어박혔다. 이제는 내 쪽에서 먼저 강하게 대화를 거부했다. 알고 보니 이건 나를 지키기 위한 정말 좋은 전략이었다. 수치심과 거절받는 두려움을 피하는데 이보다 더 확실하고 손쉬운 방법은 없었다. 인정받기 위해, 투명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더 이상 죽을힘을 다해 강박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들의 얼굴을 찾아다니려고 애쓰는 대신 나도 내 얼굴을 감추기로 했다.


부모님에 대한 반항, 기성 사회에 대한 분노가 점점 극에 달했고,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한 대회나 상 따위에 글로써 부응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대신 내 일기장만큼은 매일 산불이 타오르듯 맹렬했다. 그리고 남모를 눈물을 홍수같이 쏟아 그 불을 간신히 꺼트린 곳도 바로 그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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